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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드 Jul 16. 2019

기다림속에서 잃어버린 시간

기다린다는 것은 지독한 고통이다. 특히나 기다림의 끝을 확신할 수 없을 때는 더욱 고통스럽다. 기다리는 그것에 대하여 반드시 도래할 것이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확신이 있다면 기다림의 고통쯤은 견딜 수 있을 테지만 그렇치 않다면 기다림은 감당할 수없는 고통속에서 인내라는 수고를 감당하여야한다.


기다림은 시간을 잠식한다. 기다림이 끝나기를 염원하더라도 기다림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다만 기다림을 위해 우리의 시간을 내어줘야 하는 것이다.  기다림은 그렇게 시간을 소비해버린다. 그것도 아주 급격하게. 과잉된 시간은 또한 기다림과 힘께 소멸된다. 목적을 상실하고 아스라하게 끄뜨머리의 여운만 남긴채 기다림은 한사람의 육체를 고갈시키고 흐믈거리는 진액으로 만들어 끝없는 늪속으로 기다리는 사람을 흡수하고 끌어당긴다.


기다림은 순환이다. 기다림은 완료된 상태로 끝이 나지않는다. 기다림이란 것자체가 완료할 수 없는 것이지만 기다리는 사람이 그 기다림을 어느 정도 수긍할 만큼의 완성이라고 결정짓더라도 기다림은 그 시점에서 다시 또 다른 기다림으로 시작된다. 그래서 사는 것은 끝없는 기다림이다. 무엇인가가 완성되어진다는 의미에서 기다림은 끝이 없는 것이다. 마침내 내게로 기다림의 실체가 온다면 기다림이 끝나는 줄 알겠지만 막상 내앞으로 현전하는 기다림의 부피와 중량은 만족할 만큼의 것이 못되는 것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기다림은 이렇게 끝맷지 못함으로 기다리는 자를 고갈시킨다. 아무것도 없어 모든게 바닥날 때까지 진을 뺀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다시 기다림의 출발점에 기다리는 자를 세워놓는다. 그러면 기다리는자는 기다렸다는 것을 잊어버린채 다시 새롭게 세워둔곳을 운명삼아 서있는다.


하루가 시작되면 기다림은 시작된다. 전철을 기다리고 사람을 기다리고 상담할 사람을 기다리고 기획서의 결과를 기다리는 일상의 소소한 기다림이 있는가하면 그런 일상적인 기다림과는 다른 기다림이 나도 모르게 삶의 구석구석에서 존재한다.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무엇이 내 삶에서 완성되어져 가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하루는 그렇게 기다림을 매일 지치게 한다. 기다리는 것을 포기하고 싶다. 모리스 블랑쇼의 "기다림망각"처럼 기다림 자체를 망각해버리고 살면 어떨까? 기다림은 기다리게 한다. 기다림 속에 기다림이 있다. 기다리는 것이 끝나면 그것은 죽음일까? 죽음뒤에는 내 존재의 기다림은 없을 테지만 누군가 또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떤이는 기다리는 그가 어느날 아침 탁자에 두고간 지독한 근시안경을 쓰고는 자신의 눈을 망가뜨린다. 그가 남겨둔 정액과 췌취를 느끼기위해 세탁을 하지 않고 넣어두었다가 그를 기다리는 것이 힘들어 질때 쯤 꺼내어 체취를 맏는다.(슬픈짐승-모니카마론) 기다리는 그사람이 내게 에이즈라도 남겨두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건강검진을 받으러간다(단순한 열정-아니에르노). 기다림은 그렇게 고통스럽다. 기다림의  끝에 기다림의 존재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기대감은 상쇄되지 않겠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기다림을 그저 운명처럼 품게된다. 그리고 무한히 고도를 기다리는 두사람이 있다. (고도를 기다리며-사뮤엘 베케트)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오지않을 고도를 기다리며 역설적이게도 도래하는 고도를 마주할까 두려워하면서 기다린다. 그들은 고도가 마침내 오는 것을 원하는 것일까 기다림 자체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의미없는 말을 주고 받음으로 기다림을 견디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기다림은 견딜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한 것이다. 온전히 기다림만으로 삶을 채우기에는 너무 고통스럽다. 소진되어가는 시간이든 소멸되어버리는 시간이든 기다림의 시간은 엄청나게 느린 속도로 내 눈앞을 지나가지만 붙잡을 수있는 것이 아니다. 기다림 자체를 듣자. 기다림이 하는 말을 듣자. 조급하지 않게 기다림을 기다리면서 삶자체도 조금쯤 덜 지겹지 않을까 싶다. 너무 염세적이기만한 기다림에 대한 생각을 조금쯤 내려놓는 것도 좋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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