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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드 Jul 21. 2019

혼자 책 읽는 시간

매일 한권의 책읽기 프로젝트 -니나 상코비치

말은 살아있고 문학은 도피처가 된다. 그것은 삶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삶으로 들어가는 도피다.


뜻하지 않게 찾아온 상실의 슬픔이나, 급작스럽게 일어난 사고로 인해 인생은 이전과 이후로 나뉠 때가 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으로의 전환. 사람들은 때론 극복할 수 없는 상실의 고통 앞에서 모든 것을 체념해버릴 때가 있다. 그러면 인생은 급격하게 끝 모를 구덩이로 추락해버린다. 아니 이게 뭐야 하고 정신을 차릴 때쯤이면 그 구덩이에서 나올 수 있는 방법을 찾기에 너무 늦은 때가 되기도 한다. 구덩이 아래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작은 점만큼이나 좁아져 있고, 거기엔 타고 올라갈 밧줄이 아주 짧아져 있거나 내려줄 사람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예기치 못했거나 삶에 치명타를 줄 수 있는 상실의 고통은 그렇게 삶 자체를 무너뜨리기도 한다.


니나 상코비치의 "혼자 책 읽는 시간"을 읽게 되었다. 처음에는 약간의 주저하는 마음이 있었다. 어느 구매자 평에 대부분 국내에서 출판이 안 된 책이며 생소한 책들이 대부분이라 실망스럽다고 쓰여있는 것을 보았다. 나 역시 이 책을 저자가 읽은 책의 짧은 서평으로 채워져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단순히 어떤 책을 읽으셨는가 하는 맘과 어차피 구매한 책이니 후다닥 넘겨버릴 요량으로 책의 첫 페이지를 폈다. 그러나 첫 쳅터를 읽자마자 이 책 속에 깊이 빠질 것을 확신하는 마음이 들었다. 주말의 첫날을 저자처럼 하루에 다 읽어버려야 한다는 도전 같은 마음이 들었고 단숨에 읽어버렸다.


이 책은 단순한 서평이 아니었다. 달아나는 삶에서 돌아오는 삶으로의 여정이 담겨있는 그녀의 투쟁기이며, 삶이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하는 것을 읽는 책을 통해서 하나하나 깨달아가는 시간의 여행기라고도 할 수 있었다. 책은 알게 모르게 독자의 인생에 개입한다. 그리고는 읽는 사람의 인생에 있었던 수많은 기억들을 소환하고 과거와 같이 살아가게 하며 현재를 거쳐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하는 촉진제 같은 것이다. 단순한 서평이라고 생각하는 선입관은 이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하게 한다. 다 읽고 난 후에도 과연 이 책을 서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 책을 다시 읽거나 아니면 그 어떤 책도 읽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어느 날 니나 상코비치는 너무도 사랑하는 언니의 죽음을 목도하게 된다. 담도암을 선고받은 지 2년 정도 되던 해였다. 완쾌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죽어가는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모르게 하고자 했던 모든 수고들이 물거품처럼 터져 사라져 버린 날이었다. 언니는 죽었지만 저자는 그 슬픔을 안고 살아가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언니는 죽고 그녀는 살아있다는 죄책감. 그것은 살아갈 가치가 없는 삶을 살아갈 것 같은 두려움마저 들게 했다. 그러나 언제까지 두려움에 떨며 현실로부터 도피할 수만은 없었다. 그녀는 이 모든 상실의 슬픔을 이겨내어야 했다. 그것이 죽은 자를 영원히 기억하는 일이며 죽은 자가 원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그렇게 하기 위해 일 년간의 특별한 프로젝트를 계획한다. 그것이 바로 1년 동안 매일 한 권의 책을 읽고 반드시 서평을 쓰기다. 그녀는 책을 통해서 삶으로 돌아가는 특별한 출구 찾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이다.


이 책은 그녀가 읽은 책이 어떤 식으로 자신의 삶에 도움을 주었으며, 상실이라는 고통을 이겨나가는 치유의 시간이 되었는가 하는 자전적 체험의 이야기다. 그녀는 책을 읽고 소화하고 삼키고 생각했다고 했다. 책은 읽기로만 그친다면 독자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일본의 저명한 철학자 중 한 사람인 사사키 아타루는 책은 독자에게 혁명과 같은 거창한 변혁을 가져온다고 했다. 책을 읽고 내면에서 소화하면서 일으키는 생각의 변화를 위해 힘이 들더라도 삼켜내야 하고 그제야 독자는 삶에 대해서 깊이 있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삶이 변화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녀는 서평을 쓰면서 그러한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말들을 고스란히 수용하려고 노력했다.


난 일주일에 2~3권 정도의 책을 읽는다. 좀 두껍거나 읽기가 쉽지 않은 책은 좀 더 오래 걸리기도 한다. 이렇게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5년 정도 되었지 않나 싶다. 나 역시 어느 날 삶에 닥쳐온 어떤 상실의 마음을 정리하고 잊기 위해서였다. 주말이면 한두 권 정도의 책을 들고 고속버스나 시외버스를 타고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도시를 여행하는 것으로 책 읽기는 시작됐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책을 읽고 낯선 도시에 내려 걷고, 그 도시의 생소함을 느꼈고 그곳에서 하룻밤 정도를 머물며 책을 읽었다. 그로 인해 나는 인생에 찾아온 상실의 아픔을 정리할 수 있었고 이대로 아무렇게나 살아서는 안된다는 내면의 간절한 호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는 5년이 흘렀다. 그 5년 전을 기점으로 전과 후의 삶은 분명 변화가 있었다. 상실의 고통으로 인해 엉망이 되어버린 삶의 습관들이 매일매일 미묘하게나마 변했던 것이다. 매일의 작은 변화들은 느끼지 못할 수도 있었겠지만 분명 5년 전의 모습과 비교하면 엄청난 혁명과도 같은 변화가 있었다고 믿는다. 비록 책을 읽고 삼키고 소화하고 생각할 능력 같은 것은 없었을지 몰라도 책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주는 힘은 분명 거대했다.

평생 동안 책을 읽어왔다. 또 읽어야 할 필요가 가장 컷을 때 책은 내가 부탁한 모든 것과 그 이상을 주었다. 280p

책은 무너진 삶의 균형을 바로잡아주는 가장 효율적인 도구라고 생각한다. 책 속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인생이 있고 그 인생의 고통에 대한 해답이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힘들고 어려울 때 책을 찾는 것도 좋겠지만 또한 매일매일 책을 읽으면서 면역력을 키워나가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러면 어느 날 내 몸을 병들게 할 바이러스가 숨어들어와도 책이 만들어준 든든한 항체가 그 바이러스를 잡아먹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내 삶은 완벽하게 균형을 잡고 살아가고 있지 않다. 완벽한 균형이란 있을 수 없겠지만 사랑이라는 것에서 만큼은 부족한 부분이 많다. 사랑을 시작할 만큼 준비가 되어있지 않지도 모르겠다. 상실의 고통은 사라졌다고 할 수 있겠지만 시작이라는 의미에서는 아직도 기다려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많다. 선 듯 시작하지 못하는 시작은 아직도 면역력을 갖추지 못했나 보다.  더 많이 먹고 왕성하게 삼키고 소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때까지 기다려 줄지는 모르겟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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