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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드 Oct 29. 2019

매우 짧고 사적인 행복론

행복이란 지속적인 결핍의 상태를 벗어날 때에 느끼는 감정이다. 그것은 행복이라는 감정이 내 삶에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작용하지 않는 어떤 감정의 기억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 감정이 공허한 결핍의 공간을 채워줄 때 행복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때문에 행복은 기분 좋은 기억의 하나라고 할 수도 있다. 어느 날 무뚝뚝한 남편이 아내를 위해 된장찌개를 끓여내고는 여보 수고가 많지. 오늘은 내가 당신을 위해 된장찌개를 끓였여. 먹어봐. 된장찌개를 받아 든 아내는 행복에 겨워 눈물을 흘린다. 아내는 그것이 행복이었다고 말한다. 앞으로 매번 된장찌개를 끓이지는 않겠지만 한 번의 친절로 인해 아내는 된장찌개가 가지는 행복의 유효기간만큼 남편의 사랑을 신뢰하게 된다. 된장찌개를 끓이는 마음 하나가 아내의 결핍을 메꿔주는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겨우 이런 일로 행복하다고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른다. 행복을 느끼는 감정은 다양하다. 또한 상대적이기도 해서 타자의 모습과 비교해서 바라는 정도의 기준을 마음에 정해두곤 한다. 우리나라 국민이 느끼는 행복지수는 지난해 OECD국가 중 최하위였다. 지표상으로는 최하위. 결국 좀 살만한 나라들 중에 최하위라는 것인데 사회 내부를 들여다 보면 고개를 그떡일 수 밖에 없어 슬프다.


각자가 느끼는 행복의 감정은 그 차이가 크다. 어떤 사람은 권력, 어떤 사람은 부,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는 건강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에 있어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온한 가정일 수도 있다. 이처럼 행복은 ~라면이라는 결핍의 충족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한다. 


우리가 최하위를 기록한 행복지수의 정의를 보면 국내총생산(GDP) 등 경제적 가치뿐 아니라 삶의 만족도, 미래에 대한 기대, 실업률, 자부심, 희망, 사랑 등 인간의 행복과 삶의 질을 포괄적으로 고려해서 측정하는 지표다.  이러한 지표로 국가간 순위를 정하겠지만 최하위인 우리나라 안에서도 개개인이 느끼는 주관적인 행복의 크기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철학하는 인간 / 김광수 씀>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거기서 눈에 띄는 주목할 만한 행복지수산출법을 보았다. 행복의 크기는 성취의 크기를 행복하고자 하는 소망으로 나누는 것이라 한다.

행복지수 = 성취/소망

소망이 작은 것일수록 행복의 크기는 비례적으로 커진다. 다시 말해 작은 것에도 행복을 느끼는 삶을 산다면 행복지수는 높아지며 행복한 삶을 유지하며 살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일 수도 있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때문에 행복감은 자주 일상에 스며들수록 좋다. 행복한 감정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발생하고 소진하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너무 큰 소망을 가지고 있다면 행복을 느끼는 횟수도 작으며 행복의 크기는 비례적으로 작아지기 때문에 우리는 일상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는 행복감을 가지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다.


행복은 앞에서 말했듯 좋은 기억이 현재에 미치는 영향이기 때문에 기억 자체가 현재 진행형이 될 수 없는 단어다. 행복했던 과거의 기억으로 현재도 행복하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다. 그 행복의 감정이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미래의 행복에도 막연하지만 성취적 기대를 품게 만들며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한다. 행복이란 순간의 기억이 좀 더 오래 유지 지속되게 하는 것은 과거의 행복한 감정이 클수록 오래도록 현재를 지난다. 그리고 또 그러한 행복이 어렵지 않게 올 수 있다는 기대감을 높이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역설적으로 로또복권 정도는 당첨돼야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확률상 평생 행복해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생각해보면 슬픈 일이기도 하다.


행복한 감정을 항상 품으려고 하는 것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 삶에 비극이란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갑작스러운 비극 앞에  이러한 행복의 감정은 어쩌면 그 비극의 크기가 크더라도 행복했던 순간의 기억들은 비극을 참아내거나 견뎌낼 힘의 자양분이 된다. 그래서 얼마나 많이 오래도록 유지하는 가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 된다.  


누군가 행복한 기억을 일기처럼 적어 내게 준 적이 있다. 나와 관련된 많은 일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어서 읽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의 행복에 내가 그토록 많이 기여하고 있는지 몰랐다. 행복은 스스로 만드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타자에게서 주어지는 선물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그만 마음 씀씀이 또는 맘이 담긴 조그만 선물, 그리고 마음으로 쓴 짧은 편지들. 어떻게 보면 사소한 것이었지만 그가 느끼는 행복한 감정은 주는 사람의 마음보다 오히려 더 큰 것이 었던가보다. 부끄러워졌다. 


교환 불가능한 것을 주고받는 것은 행복이라는 감정을 한층 더 견고하게 해주는 매개체가 된다. 대부분 돈이면 다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행복이란 것조차 돈으로 살 수 있는 교환 가능한 무형의 물건쯤으로 인식한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생각처럼 행복을 주거나 받을 수 있는 수단이 있다. 선물이 그것이다. 선물은 타자가 타자에게 주는 사랑이다. 그것을 받을 만한 가치 있는 일을 하지 않았음에도 사랑에 빠진 사람은 상대방을 충분히 자격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교환의 전제가 없다. 주었지만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런 선물을 주는 나는 또한 받는 것만큼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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