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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드 Sep 18. 2021

하얗고 검은 어둠 속에서

연약함을 감당할 수 없다.

"음악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가치가 없는 삶을 사는 것이다" 니체가 한 말입니다. 음악이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구체적으로 말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음악이 없는 삶은 마치 공허한 공간을 걷는 것처럼 제자리를 걷는 것 같은 느낌이지 않을까 싶어요. 음악이 내 삶에 자리 잡은 것은 어린 시절 라디오 프로그램의 DJ가 선곡해 준 레인보우의 템플 오브 더 킹이었습니다. "레인보우가 들려줍니다. 템플 오브 더킹" 똑똑하게 기억나는 DJ의 목소리는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음악이 내 삶과 영혼에 주는 명징한 첫 번째 시그널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여러 장르의 음악을 찾아 듣기도 하고 내 맘과 영혼을 흔드는 음악들에 심취하기도 했습니다. 때론 아무도 없는 자취방에서 때론 차 안에서 마이마이나 워커맨은 늘 곁에 있었고 나중에는 청계천에서 구입한 조악한 오디오 기기로 열씸히 음악을 들었습니다. 음악이 하나의 문학이 될 때가 있습니다. 철학책 한 권을 읽는 것처럼 깊은 상념에 빠지게 하기도 하고 또는 어둡고 고통 같은 순간에 위로가 되어 주기도 했습니다.


몇 달 전부터는 아마도 나이가 익어서 그런지 클래식이라는 장르가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중에서도 피아노 음악이 좋아서 CD도 피아노 독주나 협주곡이 많습니다. 마르타 아르헤리치, 엘렌 그리모, 마리아 조앙 피레스. 마우리지오 폴리니, 알프레드 브란델, 그리고 백건우. 그들의 피아노 연주를 들을 때면 작곡가들 내면의 깊은 목소리를 듣는 듯합니다. 열정적인 삶과 고통에 몸부림치던 삶의 고뇌를 공유하는 것 같아서 혼자 생각에 잠길 때가 많습니다.


베토벤 소나타 전곡집 중에는 유일하게 알프레드 브란델이 연주한 것이 있습니다. 전집이란 것이 늘 그렇듯 사두고도 좋아하는 것만 들을 때가 많습니다. 비창, 월광, 열정, 함머클라이버, 고별 등이 대표적으로 듣던 음악인데 얼마 전 조나단 비스의 "하얗고 검은 어둠 속에서" 란 책을 읽고는 전곡을 듣기도 했습니다.


이 책의 저자 조나단 비스는 1980년 생입니다. 유명한 피아니스트들에 비해선 잘 알려지지 않은 피아니스트입니다. 나이가 41세이니 젊은 축에도 나이가 든 축에도 들지 않는 나이지만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녹음이라는 제의를 받고 상당한 고민을 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던 차에 베토벤의 현악사중주곡 13번의 "배클램프"라는 지시어를 보고 소나타 전곡을 녹음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베클렘프라는 말은 '압박당하여(가슴이 답답한)' 이라는 말로 해석되는데 그가 이 음악에서 듣는 압박은 비통함이 아니라 감정이 고양된 상태(연약함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상태)에서 일어나는 숨 가쁨이라고 느꼈다고 합니다. 이 숨 가쁜  연약함으로 인해 소나타 전곡을 녹음하기로 하고 장장 9년이라는 긴 시간을 제작사에 제안했다고 합니다.


"연주자가 작곡자에 대한 무한한 경외심을 가지고 수백 번이나 연습한 곡을 듣는 청중은 그냥 귀로 듣는 아름다운 멜로디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전율하는 소리에 화답하듯 영혼의 정수까지 미치는 음률에 식은땀이 나도록 놀라야 한다"


조나단 비스는 베토벤 소나타 전곡에 대하여 고독하고 내밀하게 철저한 연습과 준비로 임하게 됩니다. 현재 전집이 발매되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가 한곡 한곡에 쏟는 준비가 듣는 청중에게 고스란히 영혼의 정수까지 파고들도록 한다 하니 피아니스트의 연주라는 것이 새롭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피와 땀과 눈물이 흐른다는 느낌이 없으면 그 연주는 결코 베토벤 연주로 들리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베토벤 소나타 32번(알프레드 브란 델 연주)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듣게 되었습니다. 그가 느낀 마지막 소나타에서의 고독감과 절망감. 베토벤은 32번을 작곡하고 5년의 삶을 더 살지만 어쩌면 베토벤에게서는 인생의 정리나 회한 같은 것이 가득한 곡이었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피아니스트가 이런 베토벤의 고뇌를 청중에게 고스란히 전달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연습과 연구가 필요할지 짐작할 수 조차 없습니다.


피아노 소나타 32번을 듣고 가슴을 울컥하게 하는 전율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아마도 조나단 비스의 해석도 있었겠지만 이곡으로 말하는 인생, 마지막 죽음이란 것도 음미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말할 수 없는 것을 음악은 조용하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죽음이란 것이 느껴지지 않는 죽음. 오히려 편안함이며 눈물을 찔끔하게 할 만큼 음악은 가슴 깊숙이 내밀하게 들어왔습니다. 음악은 절묘하게 개인적인 언어라고 합니다. 들을 준비가 된 청자에게 걸맞게 들려주는 언어들. 그 언어들이 그 어떤 수백 마디의 말이나 책 보다 더 감동을 주는 경우가 바로 이런 경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작곡자는 삶의 독백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말합니다. 그리고 연주자는 작곡자가 말하는 영혼의 음성을 듣고 그것을 듣는 청자에게 잘 전해주려고 자신의 모든 감정을 모아 연주합니다. 청자는 귀를 열고 전달자인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듣고 작곡자가 비로소 인생에 전하는 말들을 듣고 삶과 인생에 깨우침 같은 것을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한 곡의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고독이 필요한가요. 제가 아는 피아니스트들은 그렇게 하나같이 고독하다고 고백했습니다. 피아니스트가 한곡의 작품을 온전히 소화해내기 위해 바치는 열정, 그가 피아노 연주의 기교를 연습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한 곡 안에 숨은 작곡가의 내면을 고스란히 표현하기 위해 깊고 깊은 빛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음악 속 깊이 잠수하는 사람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조나단 비스의 "하얗고 깊은 어둠 속에서"를 통해 그가 말하는 연약함의 솔직한 자기 고백을 읽는 다면 아마도 피아니스트의 건반을 누르는 진지한 손짓 하나까지도 깊이 있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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