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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드 Sep 21. 2021

Moonlight/Mondschein sonata

Beethoven piano sonata No.14 Op. 27

마치 스위스 루체른 호수에 떠있는 달빛이 물결에 흔들리는 조각배 같다(루드비히 렐슈타프)


고요하고 적막감 감도는 국도변에 운문의 담수 위로 떠오른 둥근달이 물 위에 길게 흔들리는 그림자로 떨어져 별처럼 반짝거렸다. 루체른의 호수가 이와 같았을까 상상했다. 숨 막히는 적막감에 깊은 슬픔과 절망감마저 느껴졌다. 그저 이 아름다운 애가 같은 월광 소나타가 새롭게 들리고 있었다. 그곳에 나만 있었다면 그리 들렸을까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누군가가 절실했었다. 그 사람이 옆에 있었다. 그윽하게 달빛에 반사되는 그 사람의 옆얼굴에 알 수 없는 깊이와 행복감이 느껴졌다. 


줄리에타 귀차르디, 백작의 딸인 그녀가 베토벤의 세레나데를 어떻게 들었을지.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랑에 인간은 한 없이 고독하다. 뜨거운 가슴으로 고백하는 베토벤의 심장이 달빛에 차갑다. 사랑은 그렇게 불멸한다. 시간이 지나고 당사자들은 여기에 없지만 달의 분화구에 갇혀 영원한 사랑을 노래하며 사랑하는 연인들의 가슴에서 서로 다른 형태로 자라난다. 


그날 난 난생처음 달을 보는 것 같았다. 에밀 길렐스의 베토벤 소나타 14번은 난생처음 본 그달을 부드럽게 그리고 있었다. 힘 있게 내려치는 평소의 피아니시즘이 아니다. 달콤하고 나긋한 열개의 손가락이 달빛 아래 춤추고 있었다. 베토벤이 원했던 자신의 내면의 늪으로 끌어들이기에 충분했다. 


가슴 한 복판에 달이 똬리를 틀고 앉아 지나간 세월의 흔적을 더듬거리게 한다. 마치 낫지 않는 상흔처럼 가려움을 긁어댄다. 길에서 만난 여러 사람들과 그 상처를 주고받았다. 그들은 떠났고 그들은 곁에 남기도 했다. 긴 달빛에 남긴 무수한 생각들이 그들의 얼굴을 찾는다. 뭉그러져 기억조차 가물한 사람들에게서 내 존재도 그러했을까. 서서히 낡아가는 몸에 사유마저도 낡아 먼지처럼 바스락거린다. 


계획에 없었던 시간이 충동적으로 추억을 주었다. 바람을 맞는 자연의 모든 풍경들이 시간에 각인되는 것처럼 내 육신도 영도 흔들리는데 이제야 낡지 않은 새잎 같은 추억이 생긴 것이다. 아무 말도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더라도 많은 소리들이 머릿속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나서 처음 본 달빛이 그렇게 유예되었던 삶에 자극이 되었다. 그날은 또한 나서 처음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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