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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드 Jun 14. 2017

책(冊)

유산으로서의 책

두툼한 인문학 관련 서적들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한편으론 문학적 소양이 뛰어나고 아름다운 시와 같은 소설이 읽고 싶어집니다. 반대로 소설을 읽다보면 이내 인문학서적을 가까이 끌어당겨 옆에 앉히고 싶어집니다. 두가지를 한꺼번에 읽고 싶지만 낡아버린 머릿속의 세포가 두가지 생각을 따라가 주지 못합니다. 연관성이 있는 것을 찾는 다면 해결책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퍼뜩 듭니다. 예컨데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을 읽는 다면 김영하의 '빛의 제국' 또한 공통적으로 흐르는 사람냄새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문학관련 책을 읽다보면 흡사 대학의 큰 강당에 앉아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한나 아렌트의 연륜에 찬 강의는 쇼스타코비치의 협주곡을 듣는 것처럼 힘차거나 때론 감미로운 소리가 나고, 계곡에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내 가슴 깊은 곳에서도 시원한 물이 흐르게 합니다. 인간의식의 역사와 인간 영혼에 대한 연구를 세상과 단절된 나만의 공간에서 숨쉬는 것처럼 흡입할 때 주위를 감싸는 모든 것이 평온해지고 자유로워집니다. 문장 하나를 곱씹으며 굵은 밑줄이라도 그을 때면 그 말들이 내 인생의 한켠에서 푸른 빛으로 빛납니다. 삶과 죽음을 고민하고 그들 지성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얻고 싶은 간절함이 책과 함께 따라가는 눈빛을 초롱하게 만듭니다. 


이에 반해 한편의 소설은 낮선 삶에 대한 공감입니다. 체험하지 못한 공간에서 그와 나의 자리를 대체한 체로 느껴지는 진지한 공감은 마치 주인공의 삶을 사는 것처럼 아슬하고 다이나믹해집니다. 하루동안의 궤적을 따라가는(빛의 제국) 나는 주인공에게서 지친 삶의 한계를 느끼게 됩니다. 어떠한 책이나 해피한 엔딩을 무작정 기대하지 는 않습니다. 오히려 비극적인 결말에서 지난한 우리의 삶을 깨우게 되고 그에게서 대상없는 폭력에 희생되는 아픔 역시 느끼게 됩니다. 


삶은 여행입니다. 여행의 동반자로서의 책들은 여정의 군데군데에 이정표를 만들고 길잃은 여행자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반가운 별과 같은 존재입니다. 언젠가  보루밀 흐라밭이라는 체코작가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있습니다. 겨우 100페이지 남짓 밖에 되지않는 장편소설 속에서 책속에 갇힌 주인공의 너무나 행복한 삶을 공감했던 적이 있습니다. 조용한 숲에서 낮게 비행하는 새소리와 자연의 부드러운 깃털같은 바람 과 함께하는 책들도 사람을 행복하게 합니다만, 의식주를 해결해야하는 노동의 현장에서 수많은 현자들의 소릴 듣는 소설속의 나는 또한 얼마나 행복했을까 생각합니다. 그는 그 속에서 지친 삶을 위로 받았고 수많은 가르침 속에서 그 또한 뒷골목의 현자가 되어가는 즐거움을 맛보았을 것입니다. 


내 서가에는 약 250권정도의 책들이 꽃혀있습니다. 삶을 마감할 때까지 천권정도를 읽을 요량입니다. 또한 그 책들을 내 아이에게 유산으로 물려주고 싶습니다. 다른 이처럼 재물을 남겨주진 못하지만 수많은 스승을 아이에게 소개하는 것으로 유산을 대신하려 하는 것입니다. 퇴근 후 방으로 들어서면 시끄러운 고독의 주인공처럼 나 또한 많은 현자들의 소리를 듣습니다. 그 소리들은 시끄럽지만 나는 이내 고독해집니다. 저녁식사 후 별일이 없다면 2시간정도를 책읽는 것에 투자합니다. 2시간의 고독은 온전히 광활한 우주에 갇힌 나만의 세계입니다. 그 세계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말을 걸고 다정다감한 애정을 건냅니다. 또한 그들은 나를 어딘가로 데리고 갑니다. 개척기 미국으로, 제국주의시대의 인도로, 계약을 파기하고 사과를 한입베어 무는 에덴동산으로, 프랑스 혁명의 시대로, 조그만 나만의 공간에서 세계로 우주로 확장되는 영혼의 자유로움은 형언할 수 없는 행복입니다.  그 즐거움의 항해를 아이와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은 크나 큰 행복입니다. 아이는 내가 죽어 한줌 먼지로 돌아가도 책과 함께 아버지를 떠올릴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남겨진 책들이 그아이의 이정표가 되고 별이되어 늘 가슴에 있을겁니다. 책과 함께하는 인생의 마지막 3부가 지나온 삶보다 더 가치있어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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