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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드 Jan 13. 2019

신촌의 개들

소설 "신촌의 개들"은 그동안 잊고 지내왔던 내 인생 한때의 치열했던 청춘의 기억을 소환해 주었다. "이런 소설을 싫어할 분들을 설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좋아할 분들이 모르고 지나치는 것을 막아보기 위해 이 글을 쓴다." 는 신형철평론가의 말이 호기심을 자극했고 모르고 지나치는 우를 범하지 않기위해 고민도 없이 이 소설을 손에 쥐고 청춘의 달음질 같이 하루만에 읽어 치워버렸다. 2015년에 1980년대를 불러들여 그 때의 고뇌와 절망과 슬픔을 이야기 하는 것이 오래된 추억거리로 생각할수 있지만 읽는 내내 나에게는 청춘에 대한 근사한 레토릭처럼 들려왔다. 


"언제나 공연은 초연으로 끝나며 언제나 배우들은 초보들인데 자신이 자기무대의 유일한 관객이라는 사실을 좀체 깨닫지 못한다. 나는 다른 그 무었보다도 나 자신을 연구하는데 이것이 나의 형이 상학이요 물리학이니 나 자신이 바로 내가 다루는 물질의 왕이기에 나는 그누구에게도 변명할 필요가 없다."


삶과 인생을 논하고, 인간은 누구인가 도데체 어디서부터 존재하게 되었는가 하는 질문 따위에 더없는 허무를 느끼면서도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 주지않는 세상을 통해 오히려 훗날, 삶의 주인공은 나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인간은 그 한 사람으로 우주 그 자체이다. 인생을 고민하든 미래를 고민하든 나는 나이며 나 이외의 것에는 아무런 가치를 두지 않는다. 


 "하지만 누구나 최소한 한명씩은 자기무대에 대해서 자기 관객을 가지고 있으니 바로 자기 자신이 자신의 감독이요 출연자이며 관객임을 깨닫고 단 한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말고 기뻐할 일이다."


근사한 연극에 각본을 짜고 무대위에 올려 관객들 앞에 첫 공연을 할때 우리는 박수갈채를 받을 수 있을지 말지에 대한 고민을 한다. 내가 만들어가는 연극의 연출자는 나 자신이기에 관객의 박수소리에 연연함은 오히려 그 각본에 모호한 상투성만 남길 뿐이다. 결국 나는 나이다. 삶을 열정적으로 치열하게도 살지 못했지만 내게도 그런 청춘이 있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내가 감독이며 내가 주인공이고 그렇게 올려진 멋진 연극의 단 하나뿐인 관객이었던 나. 그러나 채10년이 지나지않아 청춘의 몰락을 실감하게되고, 지난 것들이 모두 무너지고 말았다는 존재감의 무너짐이 또한 30년이나 지난 지금, 그때의 소회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작가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한때 청춘이었던 나에게도 이 소설은 집요하게 달라붙어 떨어질줄 모르는 생활의 고민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게 해주었고 치열한 생존의 전쟁터에서 잠시 무기를 내려놓고 나만의 공간에 모든 걸 배제한 채로 집중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읽는 내내 나는 작가가 살았던 청춘과 조목조목 소통할 수 있었다. 80년대에는 누구나 그랬으니까. 그때에는 그때를 살았던 삶의 방식이 있었고, 사랑하는 방식이 있었고, 인생을 논하는 유치한 철학이 있었다. 그래야만 지옥같은 삶을 벗어날 수 있었고 그래야만 살아질 줄 알았다. 그것이 청춘의 특권이었으니까. 


“세월은 흐르고, 모였던 것들은 흩어지며, 세워진 것들은 무너지고, 아름답게 담아낸 모든 음식들의 마지막 흔적은 똥이다.” 


이 문장은 이 소설을 읽기 전 나를 심하게 끌어 당겼던 문장이며 읽고 난 후에도 늘 머릿속을 맴돌던 문장이다. 몰락하는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한 허무함. 손에 쥐고 있던 것들을 잃어버릴까 또는 가진 것을 누군가에게 빼앗길 것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 모든 것은 무너지고 한낮 똥으로만 남을 것이기에 지금의 가진 것에 연연한다면 세상의 모든 것이 똥이 되고 무너진다는 것을 알게되는 그 미래에는 도데체 어떻게 자신을 견뎌낼 것인가 생각하면 오욕의 끝 또한 터무니 없는 공허감일 것이다. 적어도 청춘의 삶은 치열하여여야한다. 적어도 청춘의 때에 옳았다고 하는 것들은 아무런 이익도 아무런 손해도 생각지 않는 것이다. 권력에 분노함이며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용감한 투쟁이 있다. 그리고 소외된 자들에 대한 심오한 연민과 불같이 타오르며 자신을 버릴줄아는 사랑의 감정이 청춘의 때에만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연한 기회에 접하게된 "신촌의 개들" 이 책의 추천자 신형철교수는 소개 말미에 이렇게 적고 있다. " 이를테면 오십 년 만에 다시 쓰인 「환상수첩」(김승옥)을 읽었다는 생각도 든다. 이상운의 다음 소설을 간과하지 않으려고 한다" 신형철교수는 역시 이 소설에서 김승옥을 읽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이 소설에 대단한 느낌을 받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아이러니칼하게도 신형철교수가 간과하지 않겠다던 이상운작가의 소설은 여기까지 였다. 이 소설은 2015년에 5월에 첫 출간되었는데 그해 11월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향년 56세였다. 그의 마지막 소설을 돌려 이전에 출간된 소설을 나는 간과하지 않으려한다. 읽어보고싶어지는 그의 글이다. 3년도 더 지났지만 그의 죽음에 애도하는 맘이 적지않다. 아직도 더 많은 아니 어쩌면 더욱 농익은 노년의 글들을 만날 수 없음이 안타깝다.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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