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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드 Jan 20. 2019

달에 울다

마루야마겐지의 글을 읽다보면 자유로운 영혼의 지칠줄 모르는 열정이 보이는 듯하다. 그는 그 어떤 것에도 구애됨이 없이 머리를 각성시키고 가슴을 울리는 글들을 육체밖으로 모조리 토해낸다. 그 속이 비워질때까지 토악질을 해데는 것처럼 남김없이 쏟아버린다. 그의 책 "인생따위 엿이나 먹어라"를 읽었을 때가 그랬다. 그때의 느낌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통쾌함이었다. 과연 일본 문단의 아나키스트라 불리는 그의 작품 다웠다. 독립된 인생을 향한 막힘없는 언술은 삶의 자립성과 자유함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런 그가 시소설을 썻다. 이 책을 처음 손에 쥐었을때 아 이건 뭐지? 이러고도 소설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하는 느낌조차 들었다. 그러나 각 문단은 정갈하게 정돈되어있었고, 그 문단 하나하나는 따로 떼어 놓고 봐도 한편의 시였다. 하이쿠보다는 길고 일반적인 시보다는 짧은, 형식이 없는 완벽한 서정시이며 자유시였다. 누군가는 구도적 자기 연마의 절정이라고 말했다. 한문단 속에 함축되고 절제된 글은 마음에 사무칠 만큼 서정적이었고 많은 철학적 의미를 담아내었으며 한 인간의 삶을 고스란히 생각하기에 모자람이없이 충분했다.


마치 시의 연같은 문장들을 읽으면서 묘하게도 연작시를 읽는 느낌은 분명 새로운 경험이었다. 예전부터 난 서술적 이야기로만된 소설보다는 서정적인 문장들로 가득찬 소설이 좋았다.  그러나 소설적 한계 때문인지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이렇듯 아름다운 문장으로 된 소설은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다.


"봄 폭풍우는 지금 막 가라앉았다. 산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마을은 다시 한 번 정적 속에 깊이 가라앉고, 여기저기 실개울 소리가 되살아나고 있다. 안개처럼 아래에서 피어올라오는 소리는 몇만 마리의 누에가 쉬지 않고 뽕잎을 뜯어 먹는 소리다. 하얗고 통통하게 살진 그 벌레들은 짧은 일생을 충실하게 이어가고 있다. 나는 숨을 죽이고 방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온 신경을 모은다."


인물의 감정을 이렇듯 절제되고 함축된 시적언어로 표현된 것을 보면서 그 어떤 소설보다도 소설속 인물의 감정에  더 깊이 몰두할 수 있었다. 이 소설은 아버지가 죽인 이웃집 남자의 딸을 사랑하는 한남자의 사랑이야기다. 3년간의 사랑. 사랑하는 사람은 그 어떤 결여가 내 속에 생기더라도 더 이상 고통이 되지 않는다. 40년간 딱 한번의 사랑을 한 경험을 가진 소설속 나의 사랑이 그러했다. 그는 야에코와 사랑에 빠진 동안 생긴 자기 삶의 결여를 메우려 하지 않았다.  떠나도 잊지 못하는 야에코에 대한 깊은 상념이 사과꽃냄새와 차가운 달과 서글픈 바람에 투영되어 깊게 느껴지는 듯했다.


"내가 민 것도, 문틈으로 바람이 새어 들어온 것도 아닌데, 병풍이 흔들리고, 심하게 기운다. 그리고는 맞은편으로 푹 쓰러진다.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빛도 어둠도 없고 들리는 것은 다만 내 숨소리 뿐이다. 잠시 후 무언가 보이기 시작한다. 훨씬 멀리서, 10년 후쯤 되는 지점에서, 만개한 꿏을 단 사과나무 한 그루. 아니 대여섯 그루, 아니 셀 수 없을 만큼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나는 모든 것들이 확실하게 보이기 직전에 몸을 뒤척여, 쓰러진 병풍으로부터 등을 돌린다. 조금 전까지 마을 하늘에 떠있던 달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소설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어떨때는 지나간 모든 흔적들을 지우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것은 내가 만든 실패한 인생일 수도 있고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서 작위적으로 만들어진 인생의 고통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무너지고 깨어지고 없어져서 이전과 다른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 본다. 소설의 마지막이 그러했다. 영화의 엔딩이 올라가면서 결국 불이 켜지고 마지막 흰색 스크린이 눈 앞에 있을때 새로운 영화가 상영되어지는 것을 상상하는 것처럼 이전에 보았던 달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상상했다.


"달에 울다"는 짧은 중편소설이지만 내겐 긴 여운이 남는 시처럼 느껴졌다. 굴곡진 인생을 음미하게 했고, 설명이 절제되고 함축된 언어를 보는 즐거움을 주었다. 곁에 두고 몇번이고 다시 읽고 싶어지는 글이다. 마루야마 겐지의 다른 글들 또한 읽고 싶어졌다. 서가에 그의 책이 몇권은 더해질것 같은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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