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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드 Feb 14. 2019

경계에서 춤추다

경계를 넘어서길 소망한다

 긴 연휴의 끝이 가을끝에 메달린 마른 낙엽하나 같이 연한 바람에 달랑거린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정말 아무것도 하지않은 것같은 허무감이 가슴을 무겁게 누른다. 도무지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 제임스 설터의 소설 "가벼운 나날"은 내 인생과 중첩되어 가볍지 만은 않았다. 입춘이 지났다.  절기를 애써 맞추려는 듯  아침햇살이 창을 뚫고 들어와 기어코 의자위에 앉힌 엉덩이를 자꾸만 밖으로 밀어 내놓으려 했다. 하지만 빛이 당기는 유혹은 생각만큼 따뜻하지 못했고, 채워지지 않는 하루의 시간은 빈것처럼 텅텅 소리가 났다. 명절 떠들석했던 조카들의 부산함이 귓속 울림이 되어 약간의 편두통처럼 따금거린다. 


빈공간이다. 이 나이에 이렇게 감상적이 되는 것이 옳은 일인지 모르겠다. 늘 옆에 있던 가족들이 예전의 다른 사람들처럼 유령같이 느껴진다. 잠이 오지 않는다. 머리는 멍하다. 책읽는 동안 무심한 잡생각들이 이리저리 끼어드는 통에 읽는 곳이 자주 생경해졌다. 다시 기억나는 곳을 찾아 지나온 문장들을 흩어 보지만 몇 페이지가 넘어 갔는지 모른다. 삶이란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살아왔지만 특별한 일없이 그져 스쳐지나가는 삶은 기억나지 않는 보통의 삶이다.


수없이 날아드는 생각의 조각들이 완벽한 문장을 만들어 주지 못한다. 머리를 스쳐가 손끝에서 완성되지 못하는 편린들은 그렇게 사그라져 가는 것인지. 무척이나 감상적이 되어버린 나는 마침 잿빛이 되어 태양을 가린 하늘을 보았다. 살아있다는 것이 갑자기 고통스럽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하다는 느낌이 흩어진 단어들에서 자주 보이고 뭉퉁한 손끝은 흙속에 섞인 사금을 분리하듯 삶의 바닥을 긁는다. 그러나 반짝이는 금빛이 아니라 우울이라는 색깔의 잿빛이었다.


생각의 폭이 넓어지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의 시야도 넓어지는 것인데 책을 읽을 수록 폭이 넓어진 만큼 진실을 가리는 손바닥이 더 크게 보인다. 재현 또는 다시 반복되지 말아야할 진실가림이 하나씩 벗겨지면 좋을 텐데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그렇게 희망적이질 못하다.


책은 지나간 시간을 되새김질 하게 한다. 격변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한국의 근현대를 살았던 또는 그 옛날 부터 있어왔던 온 세상의 목소리들, 그들의 입을 통해 듣는 당대의 탄식과 참혹한 권력의 폭력은  지금의 시대와 맞닿아 때론 갑작스런 심근경색처럼 순간순간 숨을 멎게 하고 자주 공허한 허공을 보게 했다. 가난하고 힘없는 민중이 애써 찾아야만 보이는 진실의 목소리는 어느 누가 불러 앉히고 계몽하여야만 들리고, 우리네 현실이라는 것도 그러한 노력마저 부재한 것같아 슬프다. 


언젠가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하여 "그만하면 되었지 않나 이젠 지겹다"라는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 관련하여 시민들의 서명을 받는 자리에서 지나가던 일부 시민들이 무심히 밷는 말이다. 사회분위기가 특히 유력 보수일간지의 논조와 동조하는 목소리들이라 통탄해 마지 않았다. 그들은 그것이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번쯤 해본 적이 있을까? 이제 역사적으로 규명된 5.18에 대해서도 디테일하게 계획된 2차폭력을 가하려는 세력들이 있다. 불의의 사고로 더구나 그 원인 자체를 이해할 수 없는 가족의 죽음은 그 빈자리가 채워지지 않은채로 평생을 남아 가슴을 아리게 한다. 그런 아픔, 슬픔은 폭력을 가하는 그들에겐 도무지 알수가 없는 느낌이다. 먼나라 얘기, 남의 일처럼 보이겠지만 사회의 구조적 변화가 없는 한 그들이나 그들의 가족들이 그 자리를 대신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왜 모르는지. 그들은 1년이나 2년이 지난 후 아 이만 슬퍼해야지 할 수있을까? 


시간은 언제나 흐르고 세상의 모양도 변하고 생각도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람의 간악함이다. 이 사회는 손바닥으로 가려진 하늘이 너무 크고 많다. 그것에 이용당하고 옳바른 이해없이 동조하는 어리석은 민중들은 그 진실 가림이 부메랑처럼 되돌아 거꾸로 자기자신이 희생자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험악한 말들을 쏟아내고, 악마적이기까지한 몹쓸말과 행동으로 사회를 혼란스럽게 한다. 지금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그간의 오래되고 잘못된 관행과 관습, 바로서지 않은 정의, 청산되지 못한 과거로 부터 전혀 다른 길로 가려는 예전에 없던 천우의 기회의 시작에 와있다. 그래서 그런지 겨우 그 적폐의 청산이 2년도 못된 시점이지만 새로운 나라를 상상하는 조급함이 어지러운 현실을 안타깝게 바라보게 한다. 


"경계에서 춤추다"라는 책을 읽다가 책의 내용과는 상관없는 일인 것처럼 보이는 일들이 머리속을 어지럽게 했다. 하지만 무관하다고만은 할 수없는 일들, 예컨데 작곡가 윤이상의 이름과 작가 서경식의 형제분들을 생각하면서 읽는 내내 국가의 폭력에 자신의 조국으로부터 배척되고 결국 타국에서 이방인 처럼 떠돌아야하는 디아스포라의 처절한 삶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나라는 아직도 국가로 부터 배제되어 세상을 떠도는 희생자가 너무 많은 나라다. 그들의 자리가 바로 설 수있는 정의로운 나라를 꿈꾸며 우울한 생각들을 애써 정리한다. 


*** 경계에서 춤추다는 서경식선생과 일본의 문인 타와다 요오꼬가 1년에 걸쳐 주고 받은 20편의 서간문이다. 의도하지 않은 10개의 주제를 두고 서로 주고받은 그들의 대화는 무겁지 않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세상의 이야기다. 그들의 기품있고 아름다운 문체와 문득문득 보이는 재치있는 유머는 많은 생각들을 하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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