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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드 Feb 17. 2019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박완서 산문집

어디선가 본듯한 친숙한 얼굴, 선생님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외가쪽의 누군가가 떠오른다. 그러나 딱히 꼬집어 떠오르지 않아 마치 혀끝에 메달려 생각나지 않는 누구의 이름처럼 아슴거린다. 선생님의 친근함, 포근함은 오늘 아침 늦잠을 깨우는 어머니같이 느껴진다. 그런 그의 책을 이제서야 읽어본다는 것이 죄송스럽다.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는 1977년에 초판을 찍어 세상에 나왔지만 여러 해를 거치면서 증보되고 다듬어져 1970년대에서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어디선가 연재되고 발표된 산문을 한권으로 엮은 책이다. 세상을 향해 변화를 도모하는 큰 외침은 아니지만 짧은 글들 하나하나에서 지난한 삶을 돌이켜보게하는 글이다. 어쩌면 어머니의 귀찮은 잔소리 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세상에 대해 고민하는 걱정스러움이 묻어나오는 하나같이 따뜻한 글이다. 시대가 변해 세대의 얼굴이 달라지는 그때 세대차를 좁혀보고 또 이해하고싶어 허둥허둥 따라가려는 선생님의 모습이 가식없이 그려져 웃음이 나기도 했다. 그런 책이 4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새삼 좋은 작가의 좋은 작품은 그 생명력이란 것이 참 길기도 하다고 다시한번 느끼게 된다.


"나는 그런 표정을 생전처음 보는 것처럼 느꼈다. 여직껏 그렇게 정직하게 고통스러운 얼굴을 그렇게 정직하게 고독한 얼굴을 본적이 없다. 가슴이 물클하더니 심하게 두근거렸다. 그는 20등, 30등을 초월해서 위대해 보였다. 지금 모든 환호와 영광은 우승자에게 있고, 그는 환호없이 달릴 수 있기에 위대해 보였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한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라는 산문속의 글이다. 어느날 버스를 타고가던 작가가 마라톤 대회 때문에 차가 정체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부랴부랴 버스에서 내려 1등으로 달리는 마라토너를 환호하고 응원하기위해서 달려갔으나 1등으로 달리는 선수는 지나간 지 이미 오래고 이젠 아무도 달리지 않는 도로에서 늦었음을 자책하고 있을때  꼴찌로 보이는 마라토너가 얼굴을 일그린 채로 숨을 헐떡이면서 뛰어오고 있었다. 마침 그의 고통스러운 얼굴을 보면서 느낀 감정을 표현한 글이다. 선생님은 당시 그 마라토너에게 열렬하고도 힘찬 환호와 응원을 보냈다고 한다. 이 글이 발표될 당시 꼴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전환을 가져온 글이었다하니 짧은 글이지만 사회에 던져진 의미는 상당히 컷던 글인 듯하다.


나는 이 책을 국민대학교 국문학부 교수인 정선태 교수의 오늘을 읽는 책(김용민브리핑의 한코너)으로 부터 추천 받았다. 작년 3월 방송을 듣자마자 읽어보고 싶어서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는데 자꾸만 내 구매 순위에 밀려 구매까지는 못했었다. 그러다가 거의 1년이 지나갈 설무렵 우연히 들린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이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 초판9쇄 2005년에 출간된 책이니 이 책도 12년이나 지난 책이다. 하지만 보존상태도 너무 깨끗했고 새책이라고 해도 무방할만 해서 애들처럼 기뻐했었다.


다 읽고 보니 서문에서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다. "내가 증언한 세월들이 요새 젊은이 들에게는 지나간 시대의 풍속사쯤으로 읽힐 생각을 하니 내 나이가 새삼 무안해진다" 나는 그 시대를 그 분의 아들쯤되는 나이로 살아왔다. 그러니 지금의 아이들에게는 이 책이 어떻게 읽혀질지는 모르겠지만 40년이란 세월동안 꾸준히 읽혀지는 책이 단순히 그 시대의 풍속으로만 읽히진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역사든 시대의 기억이든 증언하는 사람이 없으면 변질되고 곡해되기 마련이다. 암울한 군사정권의 시대에도 작가로서의 책임을 통감하며 살았던 선생님의 엄정함이 느껴지는 글이라 읽는 내내 가슴이 따뜻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어느 모임에 가서 들었던 생각을 적은 글이다. 세상이 많이 변해도 쓴소리는 쓰지만 결국 달기마련이다. 폭력이 신념으로 받아들여지면 얼마나 끔직하겟는가. 좀더 밝은 세상이 되길 소망해본다. 간절하게 ......


"폭력이 용기와 다르듯이 편견은 신념과 다르다. 신념은 마음을 열고 얼마든지 남의 옳은 생각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을 살찌우려 들지만 편견은 남의 옳은 생각을 두려워하는 닫힌 마음이다. 결국 폭력이나 편견이나 똑같이 허세일 뿐 진정한 힘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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