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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드 Jan 20. 2019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 문맹(文盲)

무료한 일요일 시간을 내서 중고서점에 들른 나는 우연히 한눈에 들어온 책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자전적 소설인 "문맹"이었습니다. 언젠가 누구의 소개인지는 모르지만 그 소개 이후로 문맹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던 터라 가판대 한쪽에 누어있는 이 작은 책은 보자마자 내 마음을 사로잡게 되었고 그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았던 일입니다. 저는 누군가 중간에서 가로채기라도 할 것처럼 보자마자 얼른 손에 들었습니다. 갑자기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품절이나 절판된 책은 아니지만 머릿속에 늘 넣어두고 있었던 책이라 너무나 반가웠던 것입니다.


"문맹"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자전적 소설입니다.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이라는 책으로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헝가리 태생의 작가입니다. 그는 헝가리 사람이지만 프랑스어로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어쩌다 프랑스어로 글을 쓰게 되었는지 잘 몰랐지만 "문맹"을 통해서 이제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에겐 어쩌면 아프고 힘든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읽는 독자로서는 아고타의 인생과 작품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고타는 1935년 헝가리의 작고 한적한 마을 가난한 집안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4살때부터 아고타 스스로 질병이라고 할 만큼 독서라는 깊은 세계에 빠지게 됩니다. 그녀는 신문, 광고, 벽보, 교재 등 눈에 띄는 대로 읽었으며, 가난한 소녀들이 모여 수학하는 학교의 기숙사생활을 하면서 마침내 당연하게도 글쓰기를 시작합니다. 그녀는 일기같은 비밀글을 쓰기도 하고 연극의 각본같은 것을 써서 동료학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합니다.


그러다 그녀의 인생을 뒤바꿀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세계 제2차대전입니다. 그녀는 갑자기 난민이 되었고 태어나서 한번도 본적이 없는 스위스로 피난을 가게 됩니다. 힘들고 고통스런 난민 생활에서 힘든 것은 의식주 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전에는 알지도 못했던 프랑스어로 글을 쓰고 읽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다른 언어가 존재 할 수 있다는 것을, 어떤 인간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단어를 발음할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아고타는 완벽한 미지의 언어와 맞서게 되었고 평생동안 지속될 길고 격렬한 전투가 시작된다고 고백합니다. 그녀의 나이 스물한살. 이미 성인이된 아고타에게 갑작스런 언어의 장벽에 갖혀 아무것도 쓸 수 없게 된 것은 죽음만큼이나 괴로운 것이었습니다. 마치 사막에 홀로 떨어진 것처럼 갑작스럽게 찾아온 그것은 고통이었으며 장애였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 격렬한 전투와 사막과 같은 황량함에서 끈질긴 노력끝에 프랑스어로 30년간이나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당연하게도 가장 먼저할 일은 쓰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쓰는 것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 그것이 누구의 흥미를 끌지 못할 때 조차 그것이 영원토록 누구의 흥미도 끌지 못할 것이라는 기분이 들 때조차. 원고가 서랍안에 쌓이고 우리가 다른 것들을 쓰다 그 쌓인 원고들을 잊어버리게 될 때 조차"


이 문장은 내게 큰 위안이 되는 글이었습니다. 누구에게도 흥미를 끌지 못할 때 조차, 원고가 서랍안에 쌓여도 아고타는 먼저 할일이 쓰는 것이라 했습니다. 사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지도 벌써 몇년의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글쓰는 것에 늘 목말라하면서도 관심받지 못하는 글, 아니 관심받지 못하는 부끄러운 글이 될것 같아 쓰는 것에 부담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보여지지 않고 어딘가에서 쌓여 있기만 할 지라도 쓰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것으로 인해 생각이 만들어지고 자신의 철학이 형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연수 작가는 아무리 못난 글이라도 누군가에게 보여지도록 글을 올려야 된다고 했습니다. 발가 벗기워 진것처럼 부끄럽더라도 그런 것이 일상화 되면 글쓰는 것이 성장한다고 합니다.


낮선 언어의 영토에 들어온 외지인 처럼 갑작스런 환경의 변화, 더구나 언어와 문자가 다른 아연한 인생의 고비에 아고타는 사전과 씨름하면서 프랑스어를 익혀 마침내 그 언어로 작품을 쓰는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습니다. 아고타의 쓰는일에 대한 욕망이 크지 않았더라면 그녀의 천부적 재능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이름모를 편집장이가 되어 한생을 살아갔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못난 글이라도 자신있게 써야할 구실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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