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기욱 Jan 28. 2019

이장님, 성자의 길을 걷다.

세제와 휴지가 만드는 마을 공동체의 작은 이야기

마을 하나를 행복하게 가꾸어 가는 길에는 수없이 많은 난관이 있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난관들로 인하여 상당수의 마을은 행복은 커녕 상처와 손상, 반목과 적대를 마음에 품은 채 서로 마음의 문을 닫고 산다.

공동체라는 말은 거추장스럽고, 내게 별로 이득이 되지 않는 불편한 개념이 되어 왔다.



그러나 아무리 아픈 경험이 문을 닫게 했을지라도, 인간의 본성은 홀로 문닫고 사는 것에 향해 있지 않다.

사랑을 나누고, 인정을 주고 받으며 살기를 갈망한다. 실은 그래야 행복해진다. 

이웃에 대하여 문을 걸어 잠그는 것은 나쁜 경험이 가져다 준 깊은 좌절이 만들어낸 것이지, 인간의 본성에 나온 것은 아니다.

그러니 그 본성을 회복하여 행복하게 살아 보려는 것은 늘 우리의 속마음에 약하더라도 자리잡고 있다.

그리하여 좌절의 다른 편에서 끊임없이 공동체의 회복을 외치고 시도한다.




전국 어느 마을을 가나 원주민, 이주민 사이의 갈등 이야기를 듣는다. 

이질성과 다양성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근원이 되지만, 잘 다루어내지 못하면 갈등의 원인이 되고 만다.

귀농, 귀촌이 늘어 늘어나면서 평온한 마을의 쾌적한 삶에는 원주민, 이주민 또는 선주민, 후주민의 상황을 슬기롭게 승화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작년 말부터 경기도와 손잡고 마을 실험실을 운영하고 있다.

마을의 다양한 주민들과 만나, 행복의 코드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 찾아내는 일이다. Action Research와 같이 현장에서 교육하고 의견을 모아가면서 가장 바람직한 모델을 발견하고 정립해 가는 실험을 하고 있다.


지난 주에는 양평군 양서면에서 민주시민교육을 실시하였다.

공동체의 복원에는 시민의 민주적인 소양과 기술이 필요하다는 전제 속에서 마을에서 민주주의 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실습하는 프로그램이다. 동시에 마을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실험실이기도 하다.


이번 교육에서 찾아낸 몇 가지의 사례는 무너져 마을을 살리는 중요한 힌트로 여겨진다. 잘 다듬어 민주시민교육 또는 마을 공동체 복원의 기초로 삼았으면 좋겠다.



1. 먼저 일원을 만들자

한 마을에서는 새로 이사온 주민에게 마을의 임원들이 세제와 휴지를 사들고 인사를 간다고 했다. 워크숍 도중 우연히 말씀한 내용이지만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아챘다. 이 마을은 공동체적인 삶의 긍정적인 다양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된 데에는 세제와 휴지가 중요한 한 몫을 한 것으로 보였다.


이사를 가는 사람들은 자신이 구입한 땅과 주택으로 이사를 하는 것이지 어떤 마을로 이사를 한다는 생각을 크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마을의 주민들은 마을에 누군가 이사를 오면 자신의 마을에 일원이 하나 늘어났다고 생각하게 된다. 여기서 서로의 인식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이사를 간 사람은 일원 의식이 없는데, 이사를 맞이한 마을 사람들은 일원 의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마을의 어떤 일을 하게 될 때, 기존의 마을 사람들은 새로 이사온 사람이 마을 일을 일원으로서 행동해 주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이사 온 사람은 아직 마을의 일원이라는 생각이 없으므로 마을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된다. 이 인식의 격차로 인하여 서로의 기대 행동이 다르고 오해, 미움, 갈등으로 번지게 되는 양상을 띤다고 할 수 있다.


한 마을의 이장님이 들려운 세제와 휴지의 사례는 마을이 어떻게 이사 온 사람을 쉽게 일원 의식을 갖게 하는 지를 보여주었다. 5만원 상당의 선물 꾸러미를 전해줌으로 마을 매우 효과적으로 이사온 사람에게 멤버십을 갖게 하였고, 이후 마을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에 관심과 주인의식, 책임감을 갖게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주민에게 마을의 주민이고 일원이라는 사회정체성을 형성해 주는 것이 마을 갈등을 해결하는 첫 번 째 순서라는 점이 크게 다가왔다. 

  


2. 리더의 인간애

아파트의 편리한 분리 배출 체계 속에서 살던 사람이 시골 마을로 이사를 가게 되면 불편하고 복잡한 분리 배출의 노동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하여 미숙한 분리 배출로 인한 주민 간의 크고 작은 갈등 상황이 벌어진다.


이번 교육에서는 잘못된 분리 배출을 맞이하는 이장님의 인간애 또한 놀라운 발견이었다. 

"부지런한 사람은 남의 집 앞에 갖다 놓기도 해."

잘못을 저지를 사람에 대하여 '부지런한'이라는 긍정적인 표현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는 리더의 마음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긍정적 인간관, 인간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교육이 진행되는 내내 다른 른 리더들에게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마을 주민들에게 대한 부정적인 표현이 있었다. 


이와 달리 이 마을의 이장은 부정적 행동에 대해서 조차 긍정적 어휘를 사용하여 근본적으로 인간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마음이 들게 했다. 




3. 작고 즐겁게 시작하기

마을 주민을 한 마음으로 움직이게 하는 일은 한 번에 되지 않는다. 성공적으로 마을의 크고 작은 행사를 치러내고 있는 곳에서는 작게 시작하여 점점 늘려가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었다.


리더가 미리 정한 큰 행사나 사업을 밀어부치는 방식이 아니었다. 서로 좋아 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 몇몇이 해보도록 하고 서로 그 일을 즐겁게 하게 되면 사람도 일의 규모도 늘어갔다.


산을 오르내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우선 좋아하는 몇몇이 산을 오르는 일을 한다. 그리고 그 일을 즐겁게 하면 동참하려는 사람이 늘어났다. 그리고 어느 덧 둘레길을 만들자는 제안이 나오고 둘레길을 만들기 위한 구상과 행정기관에 대한 설득 및 예산 지원에 적극성을 띠게 된다.


사업비가 책정되고 마을 주민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그 사업에 참여한다. 성과가 만들어지고 성취감을 느낀다. 그리고 공동체는 더욱 단단해진다.



4. 오늘날의 대동제

이미 마음을 크게 상하고 서로 적대하며 지내는 마을이 있다. 한 두 명이 아니고, 주고 받은 상처가 누적되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 지 막막한 경우다.


재산이 얽혀 있고, 민원과 대응으로 불신과 반목이 자라났다. 서로 정당하다고 생각한 일을 했지만, 서로에게 상처로 귀결되고 말았다. 마을에 이사오는 사람을 누구도 환대할 수 없게 되었다. 원주민은 이주민이 밉고, 이주민은 원주민이 한심하다.


대동제가 필요하다. 처음부터 모두 나와 한 번에 맺힌 원망을 다 풀 수는 없겠지만, 살풀이 하고 씻김굿을 하듯이 한데 어울려 마음을 풀어내는 모종의 행사가 필요하다. 작은 윷놀이부터 시작할 수도 있고, 작은 음악회로 시작해도 좋다. 희망하는 사람들이 즐겁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즐겁게 어울리는 모습은 나머지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다.


이를 위한 몇 기지의 추천 프로그램을 만들어 볼 일이다. 그리고 약간의 행정지원으로 마을의 다친 마음을 치유해가야 할 것 같다.






작은 사례들이었지만 커다란 성자의 모습을 보았다. 작은 원망이 큰 웜망으로 자라고, 작은 사랑이 큰 사랑으로 자라는 모습이 현장이 있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쉽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마저 사랑하는 것은 어렵다. 그 사랑을 해낸다면 그는 그 만큼의 성자다.

공동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성자가 알려줬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직개발의 다양한 모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