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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망친 곳의 낙원 Apr 24. 2022

02. 도비는 자유입니다.

그런데 제때 나온 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1. PD를 바라보는 높은 분들의 시선

대학에서 준 입학허가서(어드미션)와 부서장 결재를 받은 휴직계를 경영지원부에 경건하게 제출하고 한껏 들떠있던 어느 날. 경영지원부장이 날 부른다.

높은 분들이 내 휴직계를 반려했단다. '?????????'


무려 부서장이 써준 추천서를 통해 대학으로부터 입학 허가서를 받았던 나는 어안이 벙벙.

'아니 부서장한테 다 얘기하고 추천서까지 받고 휴직계 결재도 받았으면 회사가 허가한 거 아님?'


이유나 들어보자는 심정으로 높은 분들과의 면담을 신청했다. 타오르는 분노에 파워 워킹으로 그분의 방에 입장했지만, 그분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본능적으로 쫄아버린 나.

한차장, 니 쫄았제? (네...)


매우 공손하게 여쭙는다. "도대체 제 휴직계를 짜르신 이유가 뭘까요?(공손, 깍듯)"

그분의 대답 - "PD가 석사 따서 뭐하게?"


그 말인 즉,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석사과정은 PD의 업무와 연관성이 없기 때문에 사규가 규정하는 휴직의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그러들었던 분노가 다시금 차오르는 순간이었다.

'아 이것이 회사의 높은 분들이 PD를 바라보는 시선이구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자기 계발을 하라더니, 월급도 안 받고 내 돈 주고 석사 좀 따오겠다는데 고작 1년 반의 휴직을 막아버리는 회사의 결정에 그야말로 야마가 돌아버린 나.

하지만 그분 면전에다 욕을 할 만큼 무모하진 못했기에 강제로 꾹 참고 방을 나와버리고 만다.


훗날 퇴사 후 접하게 된 기사. 아니, 아나운서는 법률서비스와 무슨 업무 연관성이? 설마 본사는 되고 자회사는 안 되고?


2. 퇴직하자! 근데... 언제?

와이프와 나는 굉장히 짧은 고민을 거쳐 퇴직하기로 결심한다. 그만큼 우리는 지쳐있었고 휴식에 대한 욕구는 강했다. 게다가 이미 유학 갈 거라고 동네방네 소문은 다 내놨지, 심지어 유학 기간 중 우리 집에 살 세입자도 구하고 있던 상태였다. 되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게지. 이참에 또 퇴직금도 나올 테니까 유학 비용에 보탤 수도 있을 테고.


다만 며칠자로 퇴직할 것이냐가 문제였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출국일인 6월에 그만두는 것이었다. 그러면 일한 지 만 10년이 되므로 근속 보너스에 휴가까지 달달하게 빨고 빠질 수 있다. 어차피 퇴직하기로 한 마당에 슬렁슬렁 출퇴근 월급 루팡 짓 하면서. 하지만 난 3월 퇴직을 결심한다. (이는 아직도 조금 후회하는 부분). 거기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이유1. 집 뷰잉을 위한 영국 방문

당장 3월 초에 영국에 직접 가서 여러 집들을 뷰잉하고 계약을 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당연히 영국으로 가는 기간이야 휴가를 쓸 생각이었지만, 입국 후 격리기간까지 모두 휴가를 쓰고 가라한다. (당연히 재택근무로 돌려줄 줄 알았다. 어차피 방송 하나를 막 끝낸 상황이라 할 일도 딱히 없었으므로..). 딱 영국으로 가는 기간만큼의 대체휴가를 가지고 있었던 나는 연차를 소진해야 하는 위기에 직면한다. 아시다시피 연차는 훗날 돈으로 환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난 입사 이래 단 한 번도 연차를 쓴 적이 없다. 물론 정말 바빠서 못쓴 것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연차수당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아주 운 좋게 런던브릿지 바로 근처의 숙소를 얻을 수 있었다. 사진은 직찍이다. 막 찍어도 엽서다.


이유2. 영어

영국 대학원 학생 선발은 특이하게 학업계획서, 학력증명서, 이력서 등을 판단해 먼저 임시합격증을 주고 영어성적을 입학 전까지 제출하면 최종합격증을 발급한다. 특히 내가 진학할 런던 정경대는 다른 학교에 비해 다소 높은 영어성적을 요구했다. 아이엘츠라 불리는 토플 비스무리한 시험에서 읽기, 듣기, 말하기, 쓰기 모두 6.5점 이상, 그리고 전체평균 7점 이상을 받아오는 것이 그들의 기준이었다. K-영어교육의 완벽한 표본답게 읽기와 듣기에 모든 스텟이 몰빵되어 있던 나로선 말하기와 쓰기 공부가 너무도 까마득했다. 아니나 다를까 틈틈히 공부한 후 처음 응시한 아이엘츠 시험에서 내가 받은 말하기와 쓰기 점수는 각각 6과 5.5였다.

0.5점을 올리는데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변의 이야기에 난 방송일과 공부를 병행해서는 도무지 성적 조건을 맞출 방법이 없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적어도 2달 정도는 입학요건을 위한 영어 뿐만 아니라 실제 영국에서 대학원 공부가 가능할 정도로 영어 실력을 집중적으로 키워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퇴사 후, 어처구니없게도 별달리 공부를 하지 않고 응시한 다음 회차 아이엘츠 시험에서 나는 입학 요건 점수를 바로 획득하고 만다. 아직도 그 시험에서 그렇게 높은 점수가 나온 이유를, 나는 알지 못한다. 운이 좋았던 거겠지.)

그렇다. 영어성적은 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영어공부를 해야만 한다.


이유3. 대학 강의 출강

작년부터 모 대학에 겸임교수로 출강하고 있었다. 비록 학사 나부랭이지만 그간의 업무 전문성을 인정받아 운 좋게 3시수짜리 강의 하나를 맡을 수 있었고, 나름 작년에 강의평가가 좋았는지 올해도 출강 요청이 왔다. 무려 9시수 씩이나. (일주일에 총 9시간 강의를 해야한다는 소리). 거절할 이유가 1도 없어 승낙했지만 사측과 '휴직or퇴직' 문제로 다투며 강의 또한 큰 제동이 걸린다. 무급 휴직도 안 내주는 판국에 9시수짜리 외부강의를 허락해줄리 만무했던 것. 게다가 코로나19 완화로 무조건 학교로 와서 대면 강의를 하랜다. (대뜸 강의 요청을 수락했던 건 사실 비대면 녹화 강의인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앞선 영국 출국문제까지 겹치니 머리가 매우 아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래 그까지 거 10년 가득 채우는 게 무슨 의미 있겠어. 어차피 밖에 나가면 10년 차 PD인 것을. 그냥 나가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굉장히 충동적이었단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회사에서의 월급과 시간강사의 시급은 감히 비할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교수님 소리 듣는 것도 좋았고 특히 첫 제자들이 너무너무 예뻤다. 예뻐서 선명하게 보여주고 싶었지만 혹시 초상권 문제가 야기될까봐 작은 사이즈로 뭉겠다.



이러저러한 이유를 들어 3 퇴직으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 , 기실 이유야 필요에 따라 만든 것들이고 결국 조금이라도 일찍 나오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렇게 무려 10 동안 일한 생애  직장에 나는 사표를 던질 준비를 마친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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