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테어나 자랄 때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행동 때문에 몸에 상처 하나쯤은 달고 산다. 성장기 시절에는 부모의 보호막을 떠나는 순간이 가장 위험한 시간이다.
시골에서 자라던 시절 가슴 아픈 상처는 왼손의 인지 손가락 한 마디를 잃은 것이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몸에서 신체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것은 충격과 기나긴 고통이 뒤따른다.
그리고 몸에 남은 상처는 영원한 흔적이 되어 고통의 원죄가 된다. 왼손의 손가락 한 마디를 잃던 순간은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계절은 가을이고 건조실에서 작두로 볏짚을 썰다가 손가락 한 마디를 잃었다. 지금도 손가락을 잃고 건조실 앞에 쪼그리고 앉아 다친 손을 감싸 쥐고 있던 모습과 작두질 하던 형과 조카의 얼굴이 생각난다.
그 시절 농가에서 소는 농사를 짓는데 가장 소중한 존재였다. 논과 밭을 쟁기로 가는 일은 사람이 아닌 소를 이용해야 해서 사람은 굶어도 소는 굶기면 안 되었다.
그 당시 소를 데려다 하루 논밭을 갈면 소를 이용한 사람이 하루의 품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소를 빌려갔다. 아버지는 형에게 소 꼴을 베어오라거나 여물을 썰어 놓는 소먹이 준비를 종종 시켰다.
엽연초를 말리는 건조실에는 가을걷이가 끝나면 볏짚이 수북하게 쌓였다. 그곳에서 형과 조카가 쇠죽을 끓여줄 짚을 작두로 자르곤 했다. 작두는 손가락이 아니라 손목도 잘리는 위험한 물건이다.
그런 작두의 위험성을 모르고 여물을 썰기 위해 조카는 작두를 누르고 형을 대신해서 내가 볏짚을 작두에 올려놓는 일을 하다 잘못해서 손가락 마디를 잃은 것이다.
건조실에서 손가락을 잃던 순간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소리 내어 울지는 않고 눈물만 뚝뚝 흘리며 건조실 앞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아버지에게 혼이 나는 것이 두렵고 무서워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유년 시절 어느 날인가 마당에서 홀로 자치기 놀이를 하다가 작은 자가 돌담 너머 텃밭에 떨어졌다. 나는 작은 자를 찾기 위해 돌담에 기대어 허리를 구부리고 살피다가 그만 담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돌담과 함께 넘어졌다.
다행히 몸이 돌담 위를 타고 넘어지는 바람에 크게 다치지는 않았고 코피만 흘렸다. 그때 옆집에 살던 능희 어머니가 달려 나와 코피를 닦아주던 일이 떠오른다.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나는 태어날 때부터 약골이었고, 몸에는 부스럼과 종기가 끊이지 않아 잔병을 달고 살았다고 한다.
유년 시절 손가락을 잃은 상처는 눈이 오는 겨울이면 제일 먼저 증상이 나타난다. 겨울만 되면 인지 손가락 끝이 시려올 때마다 손끝을 통해 전해지는 찬 고통이 가슴을 타고 머리까지 올라온다.
어찌하여 철부지가 여물을 자른다고 작두에 대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손가락을 잃은 사유로 군대 대신 공익으로 복무했다.
유년 시절에 코를 달고 산 덕분에 지금은 감기에 걸려도 몇 번 기침하고 나면 그만이다. 감기는 한번 걸리면 내성이 생겨 재발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양한 바이러스가 내 몸을 거쳐 가면서 면역력이 생긴 것이다.
가끔 고향에 가서 동네 아주머니를 만나면 아주머니가 한참 동안 나를 지긋이 바라본다. 내가 “왜 그렇게 바라보세요?”하고 물으면 아주머니는 “어렸을 때는 사람 같지 않던 꼬맹이가 어른이 된 것이 신기해서”라며 웃으신다.
지난 시절 성장 과정을 지켜본 아주머니가 그런 말을 할 정도면 잦은 병치레로 사람 같지 않던 모습이 떠오른다. 당신보다 키가 한참이나 자란 나를 만날 때마다 그저 대견스럽다고 하신다.
고향에서 꿈을 먹고 자란 유년 시절과 병풍처럼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에서 자라던 시절은 먼 곳으로 사라졌다. 유년 시절에 주변 환경은 무엇보다 소중하고 중요하다.
나는 고향에서 부모님의 보살핌과 자연을 바라보며 자랐지만 내 아이들은 가슴에 따뜻하게 품을 수 있는 고향도, 드넓은 자연을 바라보며 살아갈 바탕도 제공해주지 못한 것이 아쉽고 미안하다.
고향에서 성장기에 부모님이 심어준 품성은 무엇일까. 다른 무엇보다 고향이란 자연과 따스한 둥지를 품게 해 준 것이 제일 큰 것 같다.
부모가 성장하는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먹고 자라고, 꿈을 꾸게 하고, 미래를 향한 이상을 품게 하는 것이 아닐까.
지금도 고향에는 淸州 李 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살아간다. 마을 사람 모두가 친척이지만 유년 시절처럼 이웃집에 가면 먹을 것을 주거나 따뜻한 이야기를 나눌만한 사람도 공간도 점점 사라져 간다.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성장기를 보냈는가를 돌아보는 시기는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다. 한참 성장하는 시절에는 그럴 시간이 없다. 그저 제 앞가림하기도 바쁘다.
내 아이들이나 후손도 자신이 자라온 유년 시절을 되도록 이른 시기에 돌아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지난날을 돌아보는 시기에 이곳에 남긴 내 생각과 마음을 조금이라도 후손에게 전해준다면 고맙고도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