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정보화 시대에 나의 뿌리를 찾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자신의 근원을 찾아가는 것은 따분하고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한다. 그것은 자신이 태어난 근본인 뿌리 밝히는 것이며 나이를 더해갈수록 궁금증은 증폭하게 마련이다.
어느 날 누군가 당신의 뿌리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나는 그런 것에 관심도 없고, 먹고살기 바빠서 신경 쓰지 않고 산다고 답하면 그만일까.
그런데 자신의 자식이나 후손이 뿌리에 대하여 물어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잘 모르겠으니 네가 자라서 알아보라고 대답을 미룰 것인가.
사람은 나이가 많든 적든 자신이 존재하게 된 뿌리는 알아 두어야 한다. 설사 시조가 누구인지 이름은 몰라도 본은 어디고 언제부터 가문이 형성되고 뿌리가 어떻게 이어왔는지 대략이라도 아는 것이 좋다.
재수하던 시절 지방직에 합격하고 면접을 보는데 면접관이 내게 본이 어디고 가문에서 유명한 사람이 누가 있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나는 본은 청주 이 씨고 시조는 이능희 할아버지이고 유명한 분은 잘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면접관은 나보다 더 내 가문에 대한 내력을 알고 있어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족보는 가문의 계통과 혈통 관계를 밝혀 놓은 책이다.
족보마다 시조를 모시고 중시조는 족보마다 다르다. 중시조를 모시는 이유는 중시조부터 가문을 번창시켰기 때문에 두게 된다.
중시조를 두는 집안은 시조부터 중시조까지는 기록이 드문드문 끊기듯 연결되고 중시조부터는 족보의 기록이 끊기지 않고 세세하게 적혀 있다.
시조(始祖)는 족보의 뿌리다. 나의 뿌리인 淸州 이 씨 시조는 고려 시대 이능희 할아버지이고, 중시조는 조선 시대 이거이 할아버지다.
시조인 이능희 할아버지는 고려 개국공신으로 淸州 이 씨의 본을 창조한 분이고, 중시조인 이거이 할아버지는 KBS 드리마 ‘용의 눈물’을 통해 어떤 인물인지 대략적으로 알게 되었다.
중시조 이거이(李居易, 1348~1412) 할아버지의 자는 낙천(樂天), 호는 청허당(淸虛堂)이다. 충북 진천군 문백면 사양리에서 태어나 고려 말 문과에 급제하고, 조선 건국에 공을 세운 분이다.
1398년(태조 7년)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을 도와 일등 정사공신이 되었다. 1400년 태종이 즉위하자 좌의정에 이어 서원부원군에 봉하였고, 한때 대간의 탄핵을 받고 향리인 진천에 내려와 지내기도 했다.
사적 문화재로 지정된 중시조 산소를 찾아가려면 충북 진천 읍내에서 국도 17호선을 타고 청주 방면으로 가다 사석삼거리에서 국도 21호선으로 갈아타고 천안 방면으로 올라가면 지암삼거리가 나온다.
그곳에서 보탑사(寶塔寺)로 가는 방향으로 길을 틀어 연평을 지나 아랫상거리 삼거리에 다다르면 안내 표지판이 보인다. 그 삼거리에서 이거이 산소를 안내하는 방향으로 좌회전해서 윗상거리를 지나 아스팔트 도로가 끝나는 지점까지 올라가면 상계리 멱수 마을에 이른다.
멱수 마을에 서쪽을 바라보면 마을을 빙 둘러싼 길상산의 시루봉이 보이고 시루봉 밑에 잣나무가 우거진 산자락이 눈에 들어온다.
아스팔트 도로에서 콘크리트가 깔린 길을 따라 올라가면 야트막한 언덕에 이르고 그 언덕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서 있다. 그 뒤 산자락에 중시조 산소가 자리 잡고 있다.
중시조 산소는 1994년 6월 24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95호로 지정되었다. 마을 입구에는 신도비와 토지를 하사 받은 사패비가 세워져 있다.
산소의 비석과 상석을 제외한 양, 문인석, 해태석은 도난을 당해 최근에 다시 세웠다. 중시조 산소는 조선 전기 분묘 형태를 조명할 수 있는 유적이다.
중시조 산소는 내가 고향에서 태어날 때부터 보고 자랐고, 개구쟁이 시절에는 놀이터였다. 중시조 산소가 자리 잡은 조선 초기부터 마을의 대소사와 희로애락을 내려다보며 마을을 지켜왔다.
중시조 산소를 사적 문화재로 지정하지 않았다면 산소가 도굴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적 문화재로 지정되고 얼마 되지 않아 도굴당한 채 근근이 유지해 왔던 유적이 형해화되고 말았다.
고향에는 중시조 외에 청주 이 씨 조상과 관련한 산소가 여기저기 자리하고 있다. 내가 만나고 싶은 진정한 뿌리는 고향의 산자락에 남겨진 산소가 아니라 그들이 남긴 글이나 그림이나 책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의 뿌리가 남긴 글이나 그림이나 책을 만나지 못했지만 그것은 내가 찾아야 할 과제이자 해야 할 일이다.
앞으로 조상이 남긴 그림이나 영혼이 담긴 책을 찾아서 나의 뿌리의 내밀하고 은밀한 이야기를 만나고 싶다. 그 이야기를 통해 나는 누구인가 하는 것에 대한 근원을 하나하나 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