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공포증은 높은 곳에 올라가면 머리에서 현기증이 나고 불안과 공포심이 생겨 무서움을 느끼는 것이다. 고소공포증의 원인은 버릇이거나 높은 곳에서 추락한 경험이 있는 경우 발생한다고 한다.
내가 고소공포증이 생긴 것은 뉴질랜드에 여행 갔을 때 북섬에서 남섬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가다 남섬 공항에 도착할 무렵 갑자기 난기류를 만나면서 비행기가 몇 분간 심하게 요동을 치고 나서다. 그 순간 몸이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이면서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그런 불안한 상황에서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하기 위해 한 바퀴 선회를 하면서 기체가 기울어지자 또다시 공포감과 불안감이 몰려오면서 고소공포증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뉴질랜드 여행을 마치고 호주로 갈 때나 호주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 비행기의 좌석도 창가를 의식적으로 피했다. 비행기 창가에 앉아서 육지를 내려다보면 머리가 빙빙 돌고 어지러웠다.
남들은 비행기 창가 좌석을 좋아하는데 나는 반대로 복도 쪽을 달라고 해서 비행기를 탔다. 복도에 앉는다고 고소공포증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비행기 의자에 앉으면 이륙하는 순간에도 불안해서 밖을 내다보지 않고 책을 읽거나 눈을 감고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을 애써 외면해 왔다.
당시 뉴질랜드에서 비행기가 난기류를 만나 심하게 요동칠 때는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두렵고 무서웠다. 그 이전에는 높은 곳에 올라가도 어지러움이나 무섭지가 않았다.
그리고 공직에 근무할 때 울릉도를 간 적이 있다. 묵호에서 울릉도까지 3시간 반 동안 배를 타고 가는데 멀미는 하지 않아 고생은 하지 않았지만, 울릉도 해안가 둘레길을 걷다가 해안에 설치된 원통형 계단을 올라가다 극심한 고소공포증을 경험했다.
원통형 계단은 빙빙 돌아가며 올라가는 나선형 구조다. 처음 몇 계단을 올라갈 때는 고소공포증을 느끼지 못하다가 중간 정도 올라가자 갑자기 고소공포증이 나타났다.
그 순간 머리가 빙빙 돌고 너무 어지러워 손과 무릎을 계단바닥에 대고 바짝 엎드렸다. 그렇게 엎드린 채 어지러운 증세가 멈추기를 기다리는데 좀처럼 가라앉지를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그 상태로 엉금엉금 기어서 올라갔다.
그때는 누구한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손과 무릎으로 계단을 엉금엉금 기어 올라가는데 머리가 빙빙 돌면서 현기증이 너무 나서 두 계단 이상을 올라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원통형 계단을 기어 올라가는데 근 삼십 분이 걸렸다.
고소공포증이 무섭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머리가 빙빙 돌면서 현기증이 나면 몸을 움직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곳을 벗어날 수 없는 상태가 더 혼란스러웠다. 계단을 두 계단씩 기어 올라가다 멈추고 다시 올라가다 멈추는 식으로 아주 천천히 힘들게 올라갔다.
그리고 가족과 포천에 놀러 갔다가 구름다리에서도 고소공포증을 느꼈다. 가족과 구름다리를 건너가려는데 다리 밑에 허공이 내려다보이면서 다리가 흔들거리자 머리가 빙빙 돌면서 어지러워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나는 구름다리를 걸어갔다 오는 것을 포기하고 아내와 딸들만 구름다리를 걸어갔다 오는 모습을 바라보며 입구에서 기다렸다. 고소공포증은 약이나 행동 치료법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약까지 먹어가면서 치료하기는 좀 그렇고 행동 치료법을 통해서 극복하고 싶다. 행동 치료법은 높은 곳을 천천히 올라가면서 극복하거나 아니면 충격요법을 써서 극복하는 것인데 아직은 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가 아니라서 그대로 지내는 중이다.
고소공포증도 심하면 병이 된다고 한다. 고소공포증이 심해지면 공황장애로 발전하는데 나는 아직 그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여행 가는 일도 거의 없을 것 같고, 고소공포증을 느낄만한 곳은 피하면서 국내 여행을 다녀도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
고소공포증이 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라면 병원에 가서 처방을 받아 약을 먹거나 행동을 통해 치료하겠다. 하지만 아직은 그 정도 수준은 아니라서 극복하는 것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고소공포증이 내 몸에 붙어 있다가 저절로 떨어져 나가면 다행이겠지만 자연스럽게 극복하는 날이 찾아올 것이다. 언젠가 잠실의 롯데타워에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머리가 어지럽거나 빙빙 도는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짧은 시간이라서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는데 고소공포증이 몸에서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가기를 기다리면서 살아가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몸에 잠재된 트라우마는 자연스럽게 치유하는 것이 가장 좋은 치료법이다.
앞으로 고소공포증 증세가 나타나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고소공포증이 찾아와도 그리 심하지 않을 것 같아 저절로 극복되기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중이다. 몸이 치유되면 내 몸에 남아 있던 트라우마도 몸에서 떨어져 나가고 머릿속에서 영원히 지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