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이것저것 따져서 택일을 잡는 것이 아니라 예식장을 구하는 날이 택일이다. 결혼 날짜를 잡고 예식장을 구하는 것이 순서인데 예식장 구하기가 어렵다 보니 택일을 정하는 것이 무의미해졌다.
지난 연말 양가 상견례를 하고 해가 바뀌자 딸이 결혼하겠단다. 딸이 결혼하겠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아내와 예식장을 돌아다니며 알아보고 있다.
그런데 예식장의 대관료와 식대 등 할인율이 천차만별이다. 인터넷에 예식장과 관련한 자료가 없어 발품을 팔아가며 몇 군데 예식장을 다녀봐도 당사자가 아니면 세세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는다.
예식장 정보라도 알면 몇 군대 비교해서 대관료와 식비 등 할인율을 따져 예식장을 정하면 되는데 정보가 없으니 예식장 구하기가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당사자에게 맡겨놓고 뒷짐만 지고 바라볼 수도 없어 아내와 인터넷을 검색해 가며 이것저것 알아보는 중이다. 서울은 예식장 구하기가 어렵고 복잡하다. 예식장은 전철역에서 가깝고 주차장도 넓고 대관료와 식대와 피로연장 등 온갖 것을 고려해서 정해야 한다.
어제는 직장 동료 아들의 결혼식이 서울 혜화역 근처에서 있었다. 딸이 결혼을 앞두자 예식장에 가도 예식 보는 것은 뒷전이다. 피로연장에 내려가 식사하면서 직원에게 대관료와 식대 등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에 마음이 더 간다.
그리고 며칠 전에 자녀를 결혼시킨 친구나 직장 동료에게 전화로 예식장을 구하는 것과 결혼과 관련하여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그동안 다른 사람 예식장에 다니면서 생각했던 것을 고려해서 딸에게 몇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먼저 예식장은 전철역에서 가깝고, 주차장은 넓고, 식비를 최대한 할인받고, 피로연장이 다른 예식 손님과 겹치지 않는 곳을 정하라고 했다. 글쎄다. 서울에 이런 예식장이 있을까 걱정이다.
지금까지 친구나 친척의 결혼식에 가서 다른 예식 손님과 섞여 식사를 하다 보면 예식 손님이 아니라 식당에 가서 손님 대접을 받는 기분이 들곤 했다.
결혼식에 오는 손님 대부분은 예식장에 들르지 않고 축의금을 내고 곧바로 피로연장으로 향한다. 피로연장은 친척이나 친구들이 오랜만에 만나 식사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회포를 푸는 곳이다.
딸과 사위는 시내 예식장을 돌더니 군인공제회관과 문정동 컨벤션 예식장이 내가 말한 조건에 어느 정도 충족하고 둘도 마음에 든다고 전해왔다.
예식장을 구하러 돌아다니는 딸을 바라보며 나의 지난 시절을 돌아보았다. 나는 결혼할 때 예식장을 구하거나 피로연에 대하여 일절 신경 쓰지 못했고 부모님이 모든 것을 알아서 진행했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녀서 아버지가 고향 읍내에 예식장을 정했다는 연락만 전해 들었다. 서울에서 고향에 내려가서 예식장을 구하거나 예식 준비와 관련한 것은 할 수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결혼과 관련한 것은 부모님이 모두 준비해서 해준 것 같아 송구한 마음이 든다. 내 결혼인데 당연히 내가 준비하고 진행해야 했다.
내가 결혼하던 당시와 지금은 모든 것이 달라졌고 복잡해졌다. 나는 1989년 봄에 결혼했다. 결혼한 지도 강산이 세 번은 바뀌어 삼십여 년이 넘었다. 그간 결혼식은 상상한 것 이상으로 복잡하고 규모도 커졌다.
나는 결혼식을 마을 잔치로 했는데 지금은 전문화와 분업화로 고가의 비용을 지출하지 않으면 결혼조차 할 수 없는 시대로 변했다.
결혼에 이것저것 많은 것이 간섭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간섭에는 경제가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비용을 요구한다. 아직 예식장은 정하지 않았지만, 장소가 정해지면 일정에 따라 결혼 준비를 해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결혼은 인륜지 대사다. 결혼이란 두 가족뿐만 아니라 친척과 친구와 직장의 동료를 초대하는 성대한 잔치다. 그에 따라 결혼 준비는 한 치의 소홀함도 없이 치밀하고 정교하게 진행해야 한다.
아무쪼록 올해는 딸이 결혼을 무사히 마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