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무는 연말이다. 사람은 끝이라는 막다른 길목에 들어서야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한해의 서운함과 묶은 감정을 털기 위해 무언가에 기대어 서로의 마음을 달랜다.
가족과 송년회 겸 저녁을 먹고 아이들과 술 한 잔을 나눌 수 없어 노래방에 가서 목청을 돋우며 한 해를 거창하게 마무리했다. 아이들도 시험이란 굴레에서 해방되고 마음이 가벼운 탓인지 목소리를 높여가며 노래를 부른다.
올 한 해는 가족이란 둥지를 살피느냐 고생했으니 잘 마무리하고 따스한 시간을 보내라고 격려해주는 것 같다. 우리에게 올 겨울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세월이란 강물은 흘러가면 그만인 소멸성을 가진 순간순간의 집합체다. 우리가 무슨 인연으로 가족이란 둥지를 틀게 되었을까.
인생의 긴 여정에서 가족과 노래를 부르고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배려하고 돌보아준 것에 감사를 드린다. 가족이란 둥지를 마련해준 양가 부모님과 형제들. 가족을 품에 안고 지낼 수 있도록 해 준 것이 고마울 뿐이다.
먼 훗날에 언젠가 나도 아이들과 떨어져 살아갈 날이 찾아올 것이다. 우리가 다음에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처럼 가족을 품에 보듬어 안을 수 있는 축복이 그저 감사하다.
아이들이 앞으로 무엇을 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의 이 시간을 잊지 말고 가슴속에 고이 간직하기를 바란다.
그동안 아이들과 가족이란 둥지를 틀고 살아왔지만, 노래방에서 부르는 노래는 이질적인 소리로만 들려온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살이와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살이의 법칙이 많이 달라졌다.
아이들은 가족이란 둥지의 품속에만 있을 뿐 서로 다른 시선으로 다른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삶의 차이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와 내가 부르는 노래는 가사나 음정이나 박자가 서로 다르다.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면 나는 노래책을 뒤적이고, 내가 노래를 부르면 아이들이 노래책을 뒤적거린다. 세상살이 돌아가는 판이 서로 다르듯이 아이들과 노래방에는 왔지만 서로 다른 세상을 바라보며 사는 것 같다.
세상살이도 이런 원리가 아닐까. 서로가 다른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지만, 그것을 서로 존중해주고 남의 것을 배려하는 마음이 바탕에 깔려 있어서 사회가 온전하게 돌아가는 것 아닐까.
노래방에서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에 장단을 맞추어 짤짤이도 흔들 수가 없다. 가사도 박자도 음정도 제대로 알 수 없는 다른 세계의 노래를 부른다.
짤짤이로 아이들 노래에 박자를 맞출 수가 없어 나와 아내는 노래방 화면에 나오는 그림이나 하염없이 바라보며 아이들 노래가 끝나기를 기다릴 뿐이다.
내가 결혼해서 겪은 겨울이 몇 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세월이 많이 흘러갔나 보다. 테이블 위에 손때가 묻은 노래책을 들고 이곳저곳 뒤적여 본다.
노래책의 앞부분은 너덜너덜하게 해졌다. 나와 같은 세대가 다녀갔다는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노래책의 앞부분에는 흘러간 노래가, 뒷부분에는 최근에 유행하는 노래가 실려 있다.
나는 앞 페이지를 아이들은 뒤 페이지에 실린 노래를 부르기 위해 서로의 노래를 찾아 헤맨다. 하나의 책을 놓고도 앞과 뒤가 갈리는 세상이라니.
그래도 아이들보다 먼저 태어났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나는 노래책의 앞부분을 뒤적이고, 아이들은 뒤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찾고 있다. 삶의 질서처럼 노래방의 책에도 인생살이의 법칙과 질서가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
나와 아이들과 한 세대의 차이가 많은 이질성을 낳았다.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는 것인지, 책을 읽는 것인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인지 도통 노래 같지 않은 노래를 신명 나게 부른다.
온전한 한국말에 군데군데 영어를 섞어 만들어진 가사를 듣노라니 세월이 흐른 탓으로 돌려야만 할 것 같다. 그 세월에 음악의 장르가 변한 낯선 노래가 등장했다.
내가 부르는 노래가 추상적이고 감상적이고 서정적이라면,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직접적이고 신변잡기 위주다. 노래의 패턴과 형태가 바뀌었으니 아이들의 노래를 들으며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는데 아이들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내가 부르는 노래의 가사나 음정이나 박자를 들으면서 자신들의 피부나 감정에 와닿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시절 어른들이 말씀하셨던 “저것도 노래라고 부르나.”라는 말이 입에서 저절로 튀어나온다. 내가 나이를 먹기는 먹은 것인가 보다.
가족과 함께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세대의 흐름을 느끼다니. 내가 느끼는 감정을 아이들도 느낄 수 있을까. 나중에 성인이 되어 자식을 낳고 기르다 보면 알게 되겠지.
자신이 낳은 자식의 행동을 바라보며 부모와 함께 한 시간을 생각하고 지나간 시절을 떠올리겠지. 세월의 흐름은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고, 지나간 세월은 붙잡을 수 없는 아지랑이가 아니던가.
내가 아이들과 다음에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가족과 노래를 부르며 보낸 오늘의 이 시간을 영원히 잊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네 삶은 정녕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자전하는 지구의 생명처럼 우리도 돌아가는 세월 속에서 잠시 만났다가 헤어지는 그런 인연은 아닐까.
노래방에서 노래를 끝내고 아이들 손을 잡고 밖으로 나오자 컴컴한 사위가 마중을 나왔다. 마치 갈 길을 잃은 컴컴한 밤이 우리 가족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어둠의 장막을 쳤다.
오늘의 소중한 추억이 아이들에게 삶의 촛불이 되기를 기도해 본다.
우리가 다음에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든 서로를 소중하게 생각한 가족이었음을 잊지 말고, 서로가 따스한 마음의 소유자였음을 그리워하며 살아가기를 간절하게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