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락산

by 이상역

우리 가족의 취미는 동서남북이다. 일요일 아침이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같이 하자며 티격태격한다. 아내는 성당에 가자며 조르고, 나는 등산을 가자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면 아이들은 성당도 등산도 싫다며 소파에 눌러앉는다.


가족이란 울타리를 형성하고 살아가지만, 취미는 제각각이다. 그렇다고 가족의 취미를 하나로 묶어 즐기고 싶지는 않다. 본인이 진심으로 좋아하고 마음이 동하여 움직일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나는 가족과 함께 등산 가는 것을 포기하고 아내를 차에 태워 모락산 가는 길에 성당에서 내려주고 홀로 모락산을 찾아갔다.


모락산은 안양과 의왕과 성남을 아우른다. 산도 높지 않아 어린아이도 오를 수 있다. 서울의 외곽을 순환하는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차량의 소음이 들려오지만, 산을 오르기에는 좋다.


안양과 의왕은 지리적으로나 행정적으로 서로 포옹하며 지내는 이웃사촌이다. 안양이 의왕을 감싼 듯이 의왕이 안양을 감싼 듯이 서로 불분명한 경계를 이루며 살아간다.


누가 먼저고 나중인지는 모르지만 두 도시는 서로 이웃하며 살림살이도 나누어 쓰며 동반자 관계로 살아간다. 나도 몸은 안양에 기대어 살아가지만, 가끔 의왕에 가서 이런저런 신세를 지고 있다.


의왕 내손동에서 모락산을 올라가는 코스는 약간 가파르다. 산이 가파르다는 이유 때문인지 이 길로 올라가는 사람이 별로 없다. 대개 산을 직선으로 오르지 않고 에둘러 오르기를 좋아한다.


그런 삶에는 느림과 여유로움이 생긴다. 나는 에둘러 가는 길을 버리고 직선 방향을 선택해서 발을 내디뎠다. 모락산은 흙산이다. 돌보다는 흙이 많아 걷기도 좋고, 흙냄새가 후각을 자극하면 몸에 생기가 돈다.


산에 오르면서 발을 힘차게 내디디면 몸의 약한 면이 바로 노출된다. 호흡이 가빠지고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들숨 날숨이 불규칙해진다. 내 몸이 이렇게 약한가 하는 자괴감과 이까짓 산에 오르며 무엇이 그리 힘들까 하는 객기를 부려본다.


몸을 움직이면 대가가 따른다. 몸은 사소한 움직임에도 땀과 거친 들숨 날숨을 요구한다. 등산이 가르쳐주는 묵시적인 교훈이다.


사람은 몸을 움직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모락산에는 소나무, 참나무, 밤나무 등이 자란다. 산이 비탈져서 거의 기어가듯 올라가자 들숨 날숨도 더욱 거칠어졌다.


모락산은 야트막해도 한 번은 쉬고 올라가야 한다. 세상살이도 가끔 휴식이 필요하듯이 산을 오르다 숨을 고르기 위해 산 중턱의 바위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잠시 쉬면서 지금까지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고, 앞으로 올라갈 길을 바라보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산을 오를 때는 지나온 삶을 정리하고, 내려갈 때는 내일을 꿈꾼다.


등산길에서 가끔 흙냄새라도 맡으면 어머니의 품속과 같은 포근함이 느껴진다. 삶이 팍팍할 때 흙냄새는 마음을 정화하고 가슴도 훈훈해진다.


사람은 잠시도 남에게 밟히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산은 사람에게 밟히면서 겸손함으로 속살의 부드러움을 내보인다. 힘든 몸을 이끌고 산을 오르다 보니 벌써 정상이다.


산 정상에 오르면 다시 내려갈 생각에 마음은 여유로움이 생겨난다. 인생도 넘지 못할 언덕에 서면 난관을 뚫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다 난관을 헤쳐 나오면 힘들고 고된 기억은 사라지고 여유로워진다.


모락산을 천천히 내려오면서 삶을 반추해 본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적은 없는지 그리고 반성할 것은 없는지. 모락산에 올라올 때와 다른 방향으로 내려가자 낯선 풍경이 시야로 들어온다.


산 건너편에 산허리를 잘라 파헤친 황량한 황토색 흙이 바라보이고 외곽순환 고속도로를 달려가는 차량들의 시끄러운 소음이 귓전에 들려온다.


모락산 등산을 마치고 나자 마음이 새롭게 충전된 것 같다. 내가 모락산을 등산하는 시간에 아내는 성당에서 예수님에게 은혜로움을 받았을 것이다.


오늘따라 가족이란 보금자리가 새롭게 다가온다. 보금자리에서 서로 얼굴을 맞대고 만남과 헤어짐,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인연이 그저 신비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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