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 없는 주막

by 이상역

고향에서 읍내에 소재한 중학교로 통학하던 시절이다. 언젠가 하루는 통학버스를 놓쳐 어쩔 수 없이 청주에서 오는 버스를 타기 위해 사석까지 십여 리를 걸어갔다.


사석은 17번 국도와 21번 국도가 만나는 삼거리로 천안이나 청주에서 오는 버스를 탈 수 있는 곳이다. 사석에 도착해 매표소에 들어가 표를 끊고 매표소 처마 밑에 서서 청주에서 오는 버스를 기다렸다.


그날따라 보슬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표를 파는 매표소의 라디오에서는 가수 백년설이 부른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 궂은비 내리는 이 밤도 애절 구려 ….’라는 ‘번지 없는 주막’이 함석지붕을 때리는 빗물의 난타 소리에 맞추어 너울너울 춤을 추며 구슬프고 처량하게 들려왔다.


그 노랫가락은 내가 처한 상황과 맞아떨어지듯이 마음은 괜한 패배감에 젖어들었고, 백년설의 노래에 맞추어 내리는 빗물은 처량함과 쓸쓸함만 더해주었다. 게다가 빗방울은 순서 없이 매표소의 함석지붕을 두드려댔다.


사람은 비를 맞으면 더 맞고 싶은 것처럼 버스를 놓친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번지 없는 주막'의 노랫가락을 천천히 따라 불렀다. 그러자 마음의 짜증과 울화가 시간이 지나면서 천천히 가라앉았다.


고향에서 읍내로 가방을 메고 학교를 통학하던 시절엔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집과 돈이 없으면 외상으로 술을 주던 주막집도 많았다.


그 시절 허름한 주막집에 앉아 나무젓가락으로 상다리를 두드리며 삶의 애환을 달래던 거친 목소리의 주인공은 어디로 간 것일까. 아직도 내 귓전에는 황톳길을 걸어가며 들었던 애절하고 목이 쉰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오는 것 같다.


자신의 감정을 분출하는 것이라곤 주막집에 앉아 젓가락으로 마음을 달래던 것이 전부였다. 그렇다고 그때가 지금보다 좋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낭만과 분위기와 도시적으로 변하지 않은 순수하고 애절한 마음이 그리울 뿐이다.


대중가요가 시대의 상황을 반영하듯이 시대적 변화는 사람의 마음도 변화시킨다. 나는 그날 빗물이 주룩주룩 내리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우울함과 쓸쓸함에 젖어들었다.


통학버스를 놓쳐 학교에 가는 것도 늦었고 그렇다고 학교에 가지 않고 집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하는 답답한 마음에 백년설의 ‘번지 없는 주막’이 반대로 내 마음을 더욱 처량하게 붙들었다.


흘러간 노래에는 삶의 애환과 사연이 깃들어 있다. 우리가 배고픔에 움켜쥐었던 보릿고개의 허기짐과 집 없이 떠돌던 피난민의 애환과 애절함이 뒤섞인 것이 대중가요다. 대중가요는 시대의 자화상이다.


우리는 문패도 번지수도 없던 인심의 고개에서 지금은 대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불면의 밤을 지새우며 살아간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소유에 대한 욕망의 억제와 이를 잘 다스리는 양심의 만족일 것이다.


두 어깨에 지게를 걸머지고 산자락을 오르내리며 불렀던 눈물의 아리랑과 어머니가 이고 간 보따리를 기다리며 부르던 동심의 노래는 어디로 간 것일까.


어쩌면 나는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방황의 거리에서 오늘이란 현실의 언덕에 기대어 무언가를 찾아 헤매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산골짝의 밭둑에서 담뱃잎을 등에 짊어지고 넘어졌던 고달픈 농사일과 컴컴한 어둠 속에서 오롯이 담배 줄에 생명을 매달고 막음이란 길을 재촉하던 고단한 몸짓은 어디로 간 것일까.


책가방을 들고 성장하던 시절엔 내일의 희망이란 전차를 생각하며 앞만 보고 달려갔다. 마치 갈 길이 바쁜 사람처럼 앞사람의 뒤통수만 바라보며 살아왔다.


지금 돌아보니 앞만 바라보고 달려온 무수한 시간들이 허무하게 사라졌다. 그동안 무엇을 갈구하기 위해 그토록 아등바등 살아온 것일까.


모처럼 맨숭맨숭한 상태에서 백년설의 ‘번지 없는 주막’을 불러본다. 정말로 재미도 없고 흥이 나지 않는다. 옛 노랫가락에 젖어 있는 애절함과 간절함이 마음에 와닿지를 않는다.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자신이 밟아 온 시간을 그리워한다. 그 이유는 자신에게 다가온 시간을 제대로 보내지 못한 아쉬움과 소홀했던 감정이 배어 있어서다.


우리가 지금은 과거보다 잘 산다고 하지만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 잘 산다고 하는 것에는 남을 배려하고 포용하는 너그러운 마음이 자리해야 하는데 우리는 배척 아닌 배척에 몰두하는 천박하고 가난한 자화상으로 살아간다.


사람은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서 즐거움과 낭만이 자리한다. 지금은 오롯이 내 가족만을 위한 배척의 가슴을 끌어안고 시대의 아픔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초라한 신세다.


우리가 부르고 싶은 진정한 ‘번지 없는 주막’은 넉넉함과 여유로움이다. 그리고 서로를 보살피는 마음의 따뜻함이다. 옛 노래에도 시대의 아픔을 달래주는 가락이 들어있듯이 현대의 노래에도 시대의 아픔을 달래주는 가락이 들어있다.


대중가요는 예나 지금이나 부르지만, 사람의 마음을 달래주는 것은 시대를 뛰어넘은 향수다. 백년설이 부른 노래나 장나라가 부른 노래나 사람의 마음을 달래주는 것은 같다.


단지 자신이 살아온 삶의 기울기가 어느 쪽에 가까운가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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