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타산 메아리

by 이상역

남자에게 군대는 고독과 사색을 통해 성숙과 성장을 열어준다. 적지 않은 세월을 또래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생활하는 곳이 군대다.


사람은 컴컴한 밤중에 홀로 달과 별을 마주하게 될 때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존재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면서 닫혀 있던 사고가 서서히 열려간다.


사람은 고독해야 성장한다. 고독은 사람에게 존재의 의미와 과거의 생활을 돌아보게 한다. 그러한 시간이 모여 깨달음으로 이어지면서 인생을 함부로 살지 말자는 다짐을 하게 된다.


흔히 ‘남자는 군대를 갔다 와야 철이 든다.’라고 말한다. 군대가 사람을 바꾸어 주는 곳은 결코 아니다. 적막한 밤에 홀로 달과 별을 바라보는 사색을 통해 내적인 성장을 하면서 깨달음을 얻은 결과 남자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나는 푸른 제복을 입고 DMZ의 철책선에서 근무하는 군대에 복무하지는 않았다. 유년 시절 손가락을 다쳐서 군대 대신 방위로 복무했다. 차가운 삭풍이 몰아치고 계급장이 번쩍이는 전선에 서지는 못하고 고향에서 부모님의 따뜻한 밥을 먹으며 근무했다.


훈련소에 입소하기 전 직장에 사표를 내고 대학에 들어가자 그간 틀과 제도에 묶여 생활하던 것이 무질서하게 다가왔고 몸은 방종과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꿈은 차츰 멀어져 갔다.


친구들과 MT나 미팅을 통해 삶의 색다른 맛은 보았지만, 오롯이 나를 위해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틀은 잡히지를 않았다. 대학에 입학해서 한 학기가 끝나갈 무렵 훈련소에 입소하라는 영장이 나왔다.


나는 훈련소에 입소하기 위해 그간 길렀던 머리를 읍내에 나가 빡빡 밀고 입대 날짜에 37사단 증평훈련소로 버스를 타고 갔다. 훈련소 정문 앞에서 내리자 조교가 미리 나와 대기하고 있다가 훈련병을 모아 안내해서 훈련소로 들어갔다.


당시 중대장은 배가 좀 나오고 키가 작고 땅딸막한 대위였다. 훈련을 맡은 조교는 몸이 바짝 마르고 호리호리한 하사였다. 훈련소에 입소하기 전 대학 학군단에서 37사단에 입소하여 일주일간 병영훈련을 받은 경험이 있어 훈련에 대하여는 그리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사회적 분위가 광주를 무력으로 진압한 군사정권 시기라 훈련소에는 폭력과 기합이 난무했다.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다가 죽어도 호소할 수 없는 삭막한 풍경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증평훈련소에 입소하여 보낸 4주는 단 하루도 체벌을 받지 않은 날이 없었다. 저녁 점호시간에 체벌을 받지 않으면 오히려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불안했다.


훈련소는 사람대접도 받을 수 없었고, 군홧발에 이마를 까이고 총개머리판으로 가슴팍을 맞아가며 아픔과 고통을 참고 견뎌야 했다.


훈련을 받으면서 4주도 이렇게 고되고 힘든데 군대에 간 사람은 어떻게 긴 기간을 참고 지낼까. 훈련에 내무반 생활과 야간에 불침번을 서며 선임 시중까지 들어가면서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증평훈련소 4주간 훈련은 마치 훈련소에서 몇 년을 지낸 것처럼 고되고 힘들었다. 특히 방위병은 훈련이 끝나면 집에서 출퇴근한다는 이유로 조교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매와 기합을 가했다.


심지어 조교들은 훈련 중에 너희는 인간도 아니라며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갖은 체벌을 가했다. 방위병 훈련을 받는 대부분은 학교에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군사훈련으로 총검술과 제식 훈련을 가르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훈련이 아니라 기합과 매로 일관된 하루였고 훈련병들은 훈련이 끝나고 밖에서 조교를 만나면 가만두지 않겠노라며 증오와 원망하는 마음을 표출했다.


나는 훈련소에서 고된 훈련을 받다가 밤에 덮고 자는 모포를 통해 피부병에 걸렸다. 훈련이 고되어 피부병이 밖으로 나타나지 않았을 뿐 훈련병 대부분은 피부병에 걸려 심한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피부병인 줄 모르고 잠을 자다 몸을 긁는데 손으로 긁으면 긁을수록 가려웠다. 피부병은 며칠간 목욕하고 약을 바르며 청결을 유지하면 쉽게 낫는다.


하지만 훈련소는 몸을 청결하게 유지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목욕할 물이 모자라서 목욕 시간도 오 분밖에 주지 않았다. 목욕을 하다가 도중에 조교가 호각을 불면 중지하고 나와야 했다.


나중에는 마른 몸에 미리 비누를 칠해 놓고 기다리다 들어가서 재빠르게 샤워를 하고 나왔다. 훈련소에서 제일 많이 걸리는 것이 피부병이다.


매일 흙에서 뒹굴며 뒤덮고 자는 모포는 빨래도 제대로 되지 않은 탓에 피부병에 쉽게 노출되었다. 낮에는 훈련이 고되어 몸이 가려운 것을 느끼지 못하다가 밤만 되면 괴로웠다. 피부병은 가려운 곳에 손을 한번 대면 피가 나도록 긁어도 계속 가려워서 잠을 잘 수가 없다.


훈련소에서 보낸 4주간은 가려운 고통과 맞는 고통과 툭하면 체벌을 받는 극한의 상황에서 보낸 힘든 기간이었다. 훈련소 뒤편에는 두타산이 우뚝 솟아 있다.


아침에 식사를 마치고 훈련을 받으러 연병장을 뛰어가면 조교는 군가를 부르게 했다. ‘두타산 솟은 봉은 우리에 기상이요 보강천 흐르는 물 우리의 정기다…’라는 군가를 아침마다 조교의 구령에 맞추어 불렀다.


아침에 군가를 부르면 나라를 위해 목숨이라도 바칠 듯한 기운이 솟구쳤다. 그리고 저녁에 훈련을 마치고 돌아올 때면 어김없이 ‘보람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서 두 다리 쭉 뻗는 고향의 안방…’이란 군가를 부르게 했다.


아침에는 힘찬 군가로 저녁에는 고향의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군가로 훈련병의 마음을 달래준 것 같다. 훈련소에 받은 4주 간의 훈련은 누구를 위한 것이고 무엇을 위한 훈련인지 알 수가 없었다.


조교는 훈련 중에 한 사람이 잘못하면 단체로 원산폭격을 시켰다. 그리고는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 있지. 낳으시고 기르시는 어머님 은혜…’라는 노래를 부르게 했다.


머리를 땅에 박는 체벌을 받으면 머리가 아파 눈물이 나오는데 거기다 ‘어머님 은혜’라는 노래까지 겹쳐 부르면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눈물과 콧물을 훌쩍일 수밖에 없다. 체벌이 끝난 뒤 일어서는 동료들의 얼굴에는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있었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훈련의 고됨과 고향의 부모님을 생각나게 해서 삶은 만만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해주려고 하는 것인지 조교는 사람의 마음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체벌을 가했다.


훈련소 중대장과 조교는 마치 한마음이라도 된 듯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훈련병을 때리고 괴롭혔다. 저녁 식사 후 점호를 받는 시간에 조교는 관물대 정리정돈이 되어 있지 않거나 총기 손질이 되어 있지 않으면 군기가 빠졌다며 내무반 침상 끝 선에서 맞은편 침상의 끝을 짚고 엎드리게 했다.


소위 말하는 한강철교라는 체벌이다. 그리고는 엎드린 훈련벙의 몸을 밀착시키고 조교는 훈련병 등위로 올라가 발로 밟으며 훈련병이 만든 철교를 무너트렸다.


저녁 점호시간은 조교들이 훈련병을 공개적으로 체벌하는 시간이었다. 조교들은 훈련을 받는 시간에 체벌도 가하면서 틈틈이 휴식 시간도 주었다. 훈련은 학교 수업처럼 50분 진행하고 10분간 휴식을 취했다.


짧은 휴식 시간에 조교의 ‘담배 일발 장전’이란 목소리가 반가웠다. 비록 나는 담배는 피우지 않았지만, 담배 한 개비 피워 물고 연기를 피우며 고단함을 달랬다.


담배를 입에 물고 연기를 빨아들여 밖으로 뿜어내면 훈련의 노곤함이 담배 연기에 실려 하늘로 사라졌다. 지금도 담배는 피우지 않지만, 담배를 피우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훈련이 끝나갈 때쯤 반장은 동기들에게 조교에게 선물을 해주자는 말을 꺼냈다. 그러자 동기들은 조교를 미워하면서도 고운 정 미운 정이 들었는지 시계를 선물했다. 그렇게 증평훈련소에서 4주간 군사훈련을 마치고 37사단 정문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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