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가의 고향

by 이상역

해외 첫 여행으로 뉴질랜드 북섬의 오클랜드 공항에서 내려 점심을 먹고 버스를 타고 4시간을 달려 와이토모에 도착했다.


로토루아나 와이토모란 이름이 인상적이다. 단어의 억양이 부드럽고 왠지 모를 토속적인 뉘앙스가 풍긴다. 드넓은 초지에서는 사라진 마오리족의 전설이 스멀스멀 되살아나는 것 같다.


마치 불어처럼 뉴질랜드 마오리어에도 근원을 알 수 없는 향수가 느껴지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마오리족의 토속적인 그리움 때문일까. 토박이인 원주민이 사용하는 말에는 대지를 그리워하는 서정적인 냄새가 담겨있다.


일행과 와이토모 동굴을 구경하고 로토루아 시내로 들어와 노보텔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오늘은 호텔 옆 식당에서 마오리족이 펼치는 민속공연을 관람하며 저녁을 먹었다. 마오리족 남녀 3명씩 여섯이 부르는 노래와 율동에는 원시적이고 호전적이며 왠지 모를 슬픈 전설이 깃들어 있는 것처럼 다가왔다.


그들이 추는 포이 댄스, 하카 춤, 스틱 댄스 등 춤의 이름과 율동도 생소하다. 그들이 추는 춤과 노래에는 자세한 사연은 알지 못하지만, 가슴 밑바닥에서 마오리족의 전설과 영혼이 깃든 슬픈 가락처럼 느껴졌다.


뉴질랜드에 와서 처음으로 외국인과 현지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말소리와 분주하게 오가는 식당 종업원의 바쁜 모습을 바라보며 지금 한국이 아닌 뉴질랜드에 여행을 왔다는 현실감이 더해졌다.


와이토모는 마오리어로 ‘구멍을 따라 흐르는 물’이란 뜻이다. 컴컴한 동굴에 배를 타고 들어서자 어두운 지하세계로 물방울이 똑똑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소리가 또렷이 들려왔다.


미로처럼 복잡하게 이어진 석회석 동굴과 동굴에 매달린 석순들. 동굴에서 배를 타고 바라본 천장의 반딧불이는 태고시대의 은하수와 같았다. 은하수처럼 기다랗게 무리를 이루며 어둠을 밝히는 은은한 불빛에는 고대인이 남기고 간 흔적이 지금에 와서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동굴 구경을 마치고 나오자 입구에는 검은 연기에 그을린 레드우드 나무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치 뉴질랜드의 고독한 모습처럼 홀로 세상에 존재하며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을 맞이한다. 와이토모 동굴을 구경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고 한다.


뉴질랜드는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낙농업 위주의 산업을 육성한다는 인상이 강하게 느껴진다. 원주민인 마오리족과 이민자들이 삶의 융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식당에서 마오리족의 민속공연 관람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다. 가이드가 일행을 데리고 근처에 있는 유황온천에 몸을 담그러 갔다.


나는 몸이 피곤해서 호텔에 남아 휴식을 취했다. 어제 비행기의 좁은 좌석에 앉아 11시간을 버티고 곧바로 버스에 앉아 4시간의 강행군을 마치고 나자 몸이 피곤해졌다. 몸이 피곤한데 일행과 어울려 온천에 가면 몸의 피로만 더해질 것 같아 따라가지 않았다.


호텔에 남아 창문을 활짝 열고 밖을 내다보며 로토루아 시내의 야경을 감상하는 중이다. 생애 처음 이곳에 와서 이틀이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런 것이 여행인가 하는 의구심과 낯선 불빛을 따라 마음도 잠시 갈 곳을 잃어간다.


로토루아 노보텔 호텔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는데 잔잔한 물결을 일렁이는 로토루아 호수가 눈에 들어온다. 로토루아 호수는 학창 시절에 즐겨 부르던 연가의 고향이란다.


이곳에 와서 연가의 고향이 뉴질랜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이드가 공항에서 로토루아로 오는 버스 안에서 연가의 전설을 이야기해 주었다.


마오리어로 로토루아는 두 번째 호수란 뜻이다. 연가의 근원은 로토루아 호수 안에 있는 모코이아섬이다. 족장의 딸과 피리 부는 남자 간의 이탈리아판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사랑 이야기지만, 서로 다른 것은 연가의 결말은 해피엔딩이고, 로미오와 줄리엣은 비극으로 끝난다는 점이다.


저 멀리 로토루아 호수의 깊은 곳에서 마오리족의 전통 민요인 연가가 구슬프게 들려오는 것 같다. 이 노래가 우리나라에 알려진 계기는 6.25 전쟁에 참전했던 뉴질랜드 병사들을 통해서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뉴질랜드 병사들이 고향의 향수를 달래기 위해 연가를 부르게 되면서 우리나라에도 알려졌다고 한다.


<연 가> (번안곡)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오늘 그대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


저 하늘에 반짝이는 별빛도 아름답지만

사랑스런 그대 눈은 더욱 아름다워라

그대만을 기다리리 내 사랑 영원히 기다리리

그대만을 기다리리 내 사랑 영원히 기다리리

<포 카레카레 아나> (마오리족 전통 민요)

와이아푸의 바다엔 폭풍이 불고 있지만

그대가 건너갈 때면

그 바다는 잠잠해질 겁니다.


그대여, 내게로 다시 돌아오세요.

너무나 그대를 사랑하고 있어요.


그대에게 편지를 써서 반지와 함께 보냈어요.

내가 얼마나 괴로워하는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말이에요.


그대여, 내게로 다시 돌아오세요.

너무나 그대를 사랑하고 있어요.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내 사랑은 마르지를 않을 겁니다.

내 사랑은 언제나

내 눈물로 젖어있을 테니까요.


그대여, 내게로 다시 돌아오세요.

너무나 그대를 사랑하고 있어요.

내가 마오리족의 전설이 담긴 연가를 즐겨 불렀던 것은 고향에서 소에게 먹일 꼴을 베러 가거나 앞산에 나무하러 가기 위해서다. 나무 작대기로 지게 발을 두드려 가며 목청껏 소리 높여 부르던 노래가 연가다.


그때는 연가가 번안곡인 줄도 모르고 불렀는데 연가의 고향인 뉴질랜드에 와서 불러보니 노래의 의미와 가사가 새삼스럽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뉴질랜드 병사가 향수를 달래기 위해 연가를 불렀다면, 나는 향수가 아닌 로토루아 호수에서 들려오는 사랑 이야기를 전해 듣기 위해 목소리를 높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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