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침에 걷기를 하다가 종아리 근육을 다쳤다. 나이 들어 운동 삼아 걷는 것도 만만치가 않다. 공원을 걷다가 약간 언덕진 곳을 빠른 걸음으로 올라가는데 종아리에서 뚝 소리가 나더니 걸을 수가 없었다.
오늘은 종아리가 좋지 않아 공원의 오솔길을 쉬엄쉬엄 올라가는데 아카시아꽃 냄새가 후각을 자극해 왔다. 아카시아꽃 향기를 맡으며 고개를 돌려보니 아카시아 나무에 꽃송이가 주렁주렁 매달린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카시아꽃은 신록의 계절을 여는 신호수다. 오늘이 며칠인가 생각해 보니 벌써 오월 초순이다. 세월은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시간을 따라 강물처럼 흘러만 간다.
아카시아꽃을 바라보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동심의 시절에 즐겨 부르던 ‘과수원길’이다.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피었네
하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솔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 보며 생긋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먼 옛날에 과수원길
‘과수원길’ 동요의 가사를 읽어보면 노래 제목이 과수원길이 아니라 아카시아 꽃길이란 제목이 어울려 보인다. 과수원 길에서 아카시아꽃이 핀 모습과 향기를 배경 삼아 불러서다.
동요의 노랫말과 같이 아카시아 꽃향기는 실바람을 타고 멀리까지 전파되는 특성이 있다. 양봉업자들은 오월이 되면 아카시아꽃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며 꿀을 채집하느냐 바쁘다.
계절의 특성상 오월에만 아카시아꽃 채취가 가능해서 양봉업자에게 오월은 한해의 꿀 농사를 가늠하는 잣대로 작용한다.
차를 운전하면서 고속도로나 국도를 지나가다 보면 길가나 산자락에 흰색의 아카시아꽃이 무리 지어 핀 모습을 종종 만난다. 그곳을 지나치면 어김없이 아카시아 꽃향기가 차로 훅하고 들어와 후각을 자극한다.
다른 꽃보다 유난히 아카시아 꽃향기가 진하고 멀리까지 간다. 아카시아는 생명력이 강한 나무다. 아카시아는 열매와 뿌리로 번식하는데 이전에 홍수로 도로나 제방이 유실되어 복구할 때 주로 심는 나무가 아카시아다.
아카시아 나무는 한번 심고 나면 제거하기가 힘들다. 그만큼 아카시아는 생명력이 강해서 꽃향기가 멀리까지 가는 것인지 모르지만, 아카시아꽃은 오월이 시작되면 어김없이 향기를 피우면서 신록의 계절을 안내한다.
직장이 과천에서 세종으로 내려오면서 어쩔 수 없이 세종에서 생활하는 신세다. 서울보다 지방에서 생활하기 좋은 것은 산과 들을 자주 접할 수 있고 걷는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간 까맣게 잊고 지냈던 아카시아 꽃향기를 아침저녁으로 맡을 수 있어 즐겁다. 세종에 내려와 살다 보니 삶의 질이 꽤 높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삶의 질은 사람의 마음에 여유와 만족을 얼마만큼 주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세종에 내려와 직장 생활하면서 어느 정도 여유로움과 만족감을 누리며 지내고 있다.
삶에서 생활의 만족은 그리 대단한 것이 없다. 삶의 만족은 먹고 잠자고 가족과 같이 생활하는 데서 온다. 또 주거에 따른 금융비용을 부담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마음은 한층 가벼워진다.
직장이 과천에 그대로 있었다면, 오늘처럼 생활의 소소한 만족을 누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수도권은 나보다 잘 사는 사람을 바라보고 사는 곳이다. 따라서 나뿐만 아니라 남들도 바빠서 여유로운 시간이 별로 없다.
그리고 수도권은 끝없는 욕망을 향해 전진하는 전차다. 누군가를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멀어지고, 올려다보면 볼수록 높아만 가고,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곳이 수도권의 생활이다.
세종은 행정구역상 특별시라지만 지역적으로는 오지나 마찬가지다. 이런 오지에 내려와 생활하고 있으니 삶의 만족도는 높아지겠지만 생활에 따른 혜택 즉 교통이나 교육이나 시장과 같은 주변 여건은 수도권을 따라갈 수 없다.
그나마 세종에서는 산자락이나 들녘에 핀 꽃을 바라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다는 것이 크나큰 축복이다. 봄날에 고향마을 앞산이나 자전거를 타고 잣고개를 넘어가면서 아카시아 꽃냄새를 맡던 기억이 난다.
아침에 공원의 오솔길을 걸어가면서 아카시아 꽃향기를 맡으니 신선이 된 기분이다. 자연은 나로부터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주변에 머물러 있다. 단지 그것을 느끼지 못하거나 즐기지 못하는 것뿐이다.
아카시아 꽃향기가 가슴에 가득 채워지자 삶의 질이 한층 상승한 것 같다. 오늘은 아카시아꽃 향기로 하루의 문을 여는 향기로운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