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삶을 대변해 준 노래는 무엇일까. 삶을 대변해 준 노래라기보다 살아오면서 힘들고 지칠 때 마음을 위로해 준 노래가 있기는 할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삶의 큰 고비나 슬픔을 만났을 때 노래를 통해 긴장감이 줄어들고 마음의 안식과 위로를 얻는다. 삶은 성장기를 거쳐 중장년에 이르고 노년기를 지나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삶을 대변해 주는 노래를 시절마다 만난다. 특히 깊은 고민과 고뇌와 고통과 슬픔을 만날 때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는 것이 노래다.
노래가 아픈 마음을 달래주고 고독함을 안아줄 때 그 노래는 단순한 노래가 아닌 삶의 위안으로 자리를 잡는다. 삶을 대변해 주는 노래도 시절마다 달라진다.
시골에서 부모님 농사를 도와드릴 때는 지치고 고된 마음을 달래거나 흥을 북돋아 주는 노래를 즐겨 들었다. 그러다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생활하면서 고향을 그리워하거나 인생을 철학에 빗대어 부르는 노래가 듣기 좋았다.
지금은 애절한 삶의 노래보다 청춘 시절이나 직장에 다니면서 불렀던 노래를 다시 즐겨 듣거나 부른다.
노래를 좋아하는 것도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인생의 한 때라고 생각한다. 삶의 시기를 가리지 않고 노래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들었던 노래가 가슴 깊게 와닿고 그리운 것 같다.
초등 시절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황톳길에서 가수 남진의 ‘사랑해 사랑해요 당신을 당신만을 이 생명 다 바쳐서 이 한목숨 다 바쳐’라는 노래를 부르곤 했다.
친구들과 노래를 신나게 부르면서 걸어가면 황톳길 옆에서 모내기하던 아저씨들이 “어린것들이 벌써 사랑 타령이네.” 하며 놀려댔다. 그 노래에는 남녀가 사랑에 빠져드는 내용이 가사에 들어있다.
그 시절에는 대중가요를 접하기도 어려웠다. 대중가요를 듣는 것도 아랫마을에서 학예회 때 멋쟁이 청년이나 아가씨가 찬조 출연으로 나와 노래를 부를 때다.
아랫마을 학예회에서 듣고 배운 것이 남진과 나훈아와 조미미가 부른 노래들이다. 그 시절엔 노래에 대한 의미나 내용보다 유명한 가수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이 좋아서 학교를 오고 가면서 불렀다.
초등 시절에는 삶의 무게가 실린 철학적인 내용보다 오로지 노래를 배워보겠다는 의욕만 강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에 대중가요를 가장 많이 배우고 불렀던 것 같다.
청춘 시절에는 삶을 대변하거나 슬픔을 달래거나 고달픈 마음을 위로받기보다 새로운 노래가 나오면 부르기 좋고 목소리가 좋은 여가수의 노래를 배워서 남들에게 자랑삼아 부르고 싶은 호기심만 왕성했다.
학교 과정을 마치고 직장에 들어와 타관 땅을 떠돌며 인생을 대변하는 노래를 만났다. 사람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삶이 고달프거나 외롭고 고독하거나 슬픈 환경에 처하면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다.
그런 상황에서 우연히 라디오나 TV 등을 통해 그 상황을 대변하는 노랫가락을 만나면 마음의 위로를 받는다. 사람마다 삶을 대변하는 노래를 만나는 것도 시기와 상황에 따라 다르다.
오늘은 모처럼 어머니의 삶을 대변해 준 노래를 불러드리고 싶다. 가수 백난아가 부른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 언덕 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자주 고름 입에 물고 눈물 흘리며 이별가를 불러보던 못 잊을 사람아’라는 ‘찔레꽃’이다.
찔레꽃은 오월에 들녘에서 피는 하얀 꽃이다. 가수 백난아의 고향은 제주도인데 찔레꽃에는 붉은색이 없다. 그런데 노래 가사에 붉은 찔레꽃이 등장한 것은 아마도 제주도의 해당화를 떠올리며 가사를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는 논과 밭을 매거나 머리에 일꾼들 먹일 새참을 광주리에 이고 산비탈을 올라가시며 만난 찔레꽃을 바라보며 무슨 꿈을 꾸셨을까.
찔레꽃은 온화함의 상징이다. 산자락에 찔레꽃이 필 때면 어머니의 한숨과 땀방울과 일꾼을 위해 새참 광주리를 이고 가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어머니가 흘린 땀방울과 고달픔이 찔레꽃의 가시처럼 돋아난 봄날이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이웃에게 욕을 먹는 창피함을 무릅쓰고 돈을 빌리러 가셨던 어머니. 남부럽지 않게 자식을 키우기 위해 한평생 몸을 바치신 어머니의 찔레꽃.
외진 시골로 시집을 와서 평생을 타관에 나가서 살아본 적도 그리워하지도 않고 버텨 온 외로운 삶. 오직 팔 남매의 손짓과 발짓과 입만 바라보며 살아오고 살아내신 수많은 세월.
자식들 배를 채우기 위해 논과 밭에서 흘렸던 눈물과 한숨. 오늘따라 새삼 어머니가 위대하고 초인적인 삶을 살아온 영웅처럼 존경스럽고 거룩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런 어머니에게 ‘찔레꽃’ 노래를 목이 터지도록 불러드리고 싶다. 어머니에게 찔레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나이는 팔순을 넘어 구순을 바라보지만, 어머니가 살아온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들녘에 핀 찔레꽃의 온화함처럼 어머니의 남은 생애에도 지금처럼 건강하게 복된 삶을 누리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