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이 벚꽃과 함께 화려하게 시작하더니 벚꽃이 지자 철쭉과 영산홍의 연분홍색 꽃들이 물결을 이룬다.
벚꽃과 개나리꽃과 목련꽃이 한꺼번에 무더기로 피어나더니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봄날은 화무십일홍이란 무상함을 배우는 계절이다.
노랗고 흰 꽃이 사그라지자 철쭉과 영산홍의 분홍색 꽃이 산자락과 들녘을 서서히 물들여 간다.
올해는 봄이 나긋나긋 다가오지 않고 꽃들과 함께 무리를 지어 파도의 밀물처럼 밀려온다. 봄꽃의 밀물이 지나간 자리에는 나뭇가지에서 푸르른 싹을 틔운 연초록의 색깔이 계절의 향연을 노래한다.
봄날에 오솔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면서 머릿속으로 내가 좋아하는 꽃의 색깔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색깔을 자신 있게 선택해서 말을 할 수가 없다.
철쭉이나 영산홍을 바라보고 무슨 색깔의 꽃을 좋아한다고 말하기가 곤란해서다. 흰색 계통의 목련꽃을 좋아한다고 하면, 노란색의 개나리가 싫어할 것 같고, 흰색 계통의 철쭉을 좋아한다고 하면, 연분홍의 영산홍이 싫어할 것만 같다.
봄에는 꽃들이 서로서로 시기할 것 같아 내가 무슨 색깔의 꽃을 좋아한다고 말하기조차 조심스럽다. 자연에서 피는 꽃 모두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주장할지도 몰라서다.
초봄에는 산과 들녘에 벚꽃과 목련꽃의 흰색과 노란색의 개나리꽃이 무리를 지어 수를 놓았다. 그리고 봄이 익어 가면서 철쭉과 영산홍과 자산홍의 꽃들이 분홍색과 붉은색을 토해내며 화려하게 수를 놓고 있다.
계절이 자람에 따라 피어나는 꽃이 달라지듯이 사람도 성장에 따라 피어나는 인생이 달라진다. 철쭉꽃은 학창 시절 일연의 삼국유사에 나오는 향가 ‘헌화가’에 등장한다.
신라 성덕왕 때 순정공이 수로부인과 함께 강릉 태수로 부임하기 위해 일행과 함께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다 근처의 까마득한 절벽에 핀 철쭉꽃을 올려다보았다.
수로부인이 “누가 저 꽃을 꺾어다 주겠소?”하고 말하자 수행하던 일행 모두는 뒤로 물러섰다. 그때 암소를 끌고 지나가던 노인이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와 바치오리다.”라면서 절벽에 핀 철쭉꽃을 꺾어 바친 노래가 ‘헌화가’다.
신라 시대 헌화가의 탄생 설화는 따뜻한 봄날임이 틀림없다. 철쭉꽃은 사월에 피고 시절을 노래하다 사라져서다. 한적한 길가에 핀 철쭉꽃은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꽃 속에 빠져드는 마력을 지녔다.
철쭉은 꽃과 잎이 동시에 피어난다. 초봄에 피는 꽃은 꽃이 먼저 피고 잎이 나중에 나온다. 철쭉은 초봄이 지나고 봄이 익어 갈 무렵 꽃과 잎이 동시에 나온다. 계절이 익어갈수록 꽃보다 잎이 먼저 나오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가장 부담스럽지 않은 색깔은 분홍색이 아닐까. 분홍색은 진달래와 철쭉꽃의 색깔이라 사람들에게도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봄날에 핀 철쭉꽃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봄날에 무슨 특별한 사연이 있어 춘심을 노래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는 봄날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며 놓치기가 싫어서다.
사람들은 저마다 철쭉꽃에 대한 사연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가슴에는 철쭉꽃과 같은 흰색과 연분홍의 색깔이 깃들어 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은 그냥 찾아오지 않는다. 우리의 삶에서 갖가지 사연이 생기는 것도 봄날이다. 그런 봄날에 사연 하나쯤 만들지 못하는 것은, 봄날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는 증거다.
봄은 가을과는 다르게 나날이 산뜻해진다. 겨울의 텅 비었던 허전함을 채우는 계절이 봄이다. 학창 시절 따뜻한 봄날에 창가에 앉아 국어 시간에 詩를 읽으며 외웠던 시간이 그립다.
그 시절에 느끼지 못한 봄날의 애상이 새삼 감정의 끝자락을 건드려 댄다. 더불어 고향의 산자락에 핀 진달래꽃을 따 먹으며 놀던 유년의 아련한 모습이 저 멀리서 나풀 나폴 춤을 추며 다가오는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