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의 속삭임

by 이상역

어느덧 사월 말이다. 봄이 오는가 싶더니 계절은 오월을 향해 거침없이 질주해 간다. 아침에 아파트 단지 앞 공원을 걸어가는데 숲 속의 나뭇잎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빈 나무에서 나뭇잎이 점점 자라자 숲이 한결 무거워졌다. 겨울엔 나뭇잎이 없어 숲이 훤히 들여다보였는데 나뭇잎이 자라면서 숲은 그늘을 드리우고 어두워지면서 묵직해졌다.


숲도 나뭇잎처럼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 간다. 어느 가수의 노랫말처럼 계절은 소리 없이 시냇물을 따라 부지런히 앞만 보고 흘러간다. 올해는 봄비가 시기에 맞추어 적당하게 내렸다.


봄에 비가 내리지 않으면 봄 가뭄을 타는데 벌써 두 번이나 내려 농사에 필요한 가뭄을 해갈시켜 주었다. 이틀 동안 봄비가 내리고 나자 나무도 성장한 것 같고 나뭇잎도 더 커 보인다.


그리고 봄비가 대지를 적시고 나자 공기가 맑아졌다. 이런 날은 기분이 상쾌하고 마음도 밝아진다. 집에서 청소하면 마음이 개운해지듯이 봄비가 내리면 공기가 정화되면서 사람의 마음도 맑게 한다.


봄은 만물이 생동하는 계절이다. 하루하루가 다르고 순간순간의 시간이 다르게 다가온다. 게다가 푸릇하게 자란 새싹을 바라보면 마음은 한없이 따듯해진다.


봄비가 내리고 난 뒤에는 연초록의 새싹에서 청량함이 물씬 배어난다. 동물도 어린 생명이 귀엽듯이 나무나 풀의 새싹도 여리고 귀엽게만 바라보인다.


봄날이 하루하루 서서히 익어 가듯 인생의 봄날도 나날이 익어 가는 계절이다. 과천에서 세종으로 내려와 생활 한지도 그럭저럭 수년이 되어간다. 세종에서 맞이한 봄날의 횟수도 벌써 몇 번째다.


과천과 세종에서 맞이하는 봄날은 같다지만, 의미와 색감은 차이가 난다. 세종에서 봄은 선명하고 뚜렷하게 다가오고 봄다운 봄을 맞이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느껴지는 봄날의 감흥과 정취겠지만 봄날이 새록새록 익어만 간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날이 그립고 이곳에서 만나는 새로운 사람과의 인연이 고맙기만 하다.


내년이나 후년에는 봄을 어디서 어떻게 맞이하게 될까. 물론 직장을 물러나면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며 봄을 맞이하겠지만 내년과 후년에는 어떤 마음으로 봄을 맞이하게 될는지 궁금하다.


직장에 적을 두고 여유롭게 생활하면서 맞이하는 봄과 직장을 떠나 사회인이 되어 맞이하는 봄날의 느낌은 다를 것이다. 그저 오늘 하루가 소중하고 지나가고 다가오는 시간이 그립고 아쉬울 뿐이다.


비록 나 홀로 흥에 겨운 봄날을 맞이하고 누린다지만, 직장 생활하면서 하루를 신명 나게 사는 것처럼 행복한 것도 없다. 올해도 한 해가 시작되는가 싶더니 벌써 사월도 끝나간다.


푸른 계절이 어디서 밀려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이 시간이 그저 감사하고 고마울 뿐이다. 오늘의 태양도 하늘에 저녁노을을 그리며 서쪽으로 이울어 간다.


서편으로 기울어 가는 태양을 붙잡고 싶지만, 달이 시기할 것 같고, 달이 떠오르는 것을 반기자니, 지는 태양이 서운해할 것 같다. 내 마음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해넘이만 무념무상하게 바라보는 신세다.


오늘 하루를 마무리 짓기 위해 보잘것없는 책상을 정리하는 중이다. 책상에 정리할 것은 그리 많지 않지만, 하루의 삶을 잘 참아내고 인내하며 보냈으니 마무리는 제대로 해야 할 것 같다.


책상 위에 널브러진 잡다한 쓰레기는 휴지통에 갖다 버리고 쓸데없는 생각과 종이는 분쇄기에 갈아버렸다. 책상 옆 열린 창문을 통해 솔솔 불어오는 사월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하루를 마감하는 느낌이 참 좋다.


남들은 퇴근 시간이 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는데 나는 반대로 가볍기만 하다. 아마도 사무실에서 무게감 없는 일을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오늘도 밥벌이라는 의무의 시간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은 새털처럼 가벼워진다. 군대에서 의무복무 기간이 끝나면 마냥 기뻐하듯이 직장에서도 하루를 무사히 끝냈다는 생각이 들자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번져간다. 직장인은 이런 맛에 하루라는 일상을 꿋꿋하게 참고 버티며 살아가는 것 같다.

keyword
이전 02화넋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