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노래나 노랫가락에 한이나 정서가 담겨있다. 기분이 우울한 날에 노래방에서 목청껏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르면 가슴속이 후련해진다.
사람이 좋아하는 노래에는 그 사람의 삶도 엿볼 수 있다. 부모에게 효도하지 못한 사람은 부모에 대한 노래를, 고향을 떠나 타향에 사는 사람은 고향에 대한 노래를, 연인과 이별한 사람은 슬픈 이별에 가슴 아파하는 노래를 부른다.
노래방에서 노래를 큰 소리로 부르면 노랫가락에 담긴 한과 정서가 발산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힌다. 노래는 자신의 취향과 감정을 고려해서 좋아하는 것을 부르면 그만이다.
다른 사람이 부르는 노래를 듣다 보면 그 사람의 취향과 감정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나도 나훈아의 ‘고향역’이란 노래를 즐겨 부른다.
‘코스모스 피어 있는 정든 고향역 이뿐 이 곱뿐 이 모두 나와 반겨 주겠지….’라고 시작하는 노래를 부르다 보면 고향의 코스모스 길이 떠오르고, 이웃집에 살던 이쁜이 얼굴이 생각난다.
이 노래를 부르노라면 고향의 동구에서 어머니가 나를 기다리는 듯해서 즐겨 부른다. 그리고 노래의 반주처럼 기적소리를 울리며 달려가는 기차 소리를 듣노라면 기차에 몸을 싣고 고향을 달려가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대중가요는 술이라도 한잔 걸치고 비라도 추적추적 내리면 분위기와 멋이 살아난다. 술 한 잔 기울이지 않고 햇빛이 반짝반짝 빛나는 대낮에 노래를 부르려면 감정이 맨숭맨숭하고 흥이 나지 않는다.
노래도 어느 정도 분위기와 운치가 있어야 감정이 솟아나고 목청을 마음껏 발산하고 싶은 기분에 젖어든다. 가수는 목소리를 트이기 위해 폭포수가 쏟아지는 계곡에 올라가 발성을 연습한다.
이른바 목소리에 득도를 얻기 위한 노력이다. 이렇듯 타고난 목소리에 제 색깔을 입히는 것은 전문가의 몫인데 모두가 그 길을 따라가려 한다.
노래방에서 가수처럼 음정과 박자를 맞추어 노래를 부르려면 어렵다. 그저 음정과 박자를 생각하지 않고 노래 부르면 쉽지만, 음정과 박자를 생각하고 밴드에 신경을 쓰면 노래의 시작을 어디서 해야 할지 우왕좌왕한다. 그러다 박자를 놓치면 노래 부를 흥도 나지 않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는 음정과 박자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 의지해서 목청껏 부르는 것이 최고다. 노래는 감정과 자세가 반이다. 노래의 형식과 틀을 갖추고 부르려면 노래는 아무나 부르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기분도 가라앉는다.
깊은 계곡을 걸어가며 큰소리로 노래를 불러보라. 대지의 바람을 반주 삼아 노래를 부르면 가슴이 후련해진다. 산이 맞장구 쳐주고, 자신의 목소리가 어떠한지 메아리로 들려준다.
노래는 산이 가로막힌 깊은 계곡에서 부르는 것이 우렁차다. 계곡과 산을 찾아갈 수 없어 밴드가 쾅쾅 울리는 도시의 노래방을 찾아가는 것이다.
소리도 울림이 있어야 심금을 울리듯이 노래방을 만들어 놓은 것을 보면 신비스럽다. 무미건조한 생활에서 좋아하는 노래라도 흥얼거려야 살아갈 맛이 나지 않을까.
세상살이에 노래가 없으면 너무 각박하고 삭막할 것 같다. 오늘은 혼자 노래방이나 가서 누가 들어주든 말든 좋아하는 노래나 목이 터지도록 불러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