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신록이 짙어갈수록 생의 의지가 새록새록 샘솟는 계절이다. 나날이 짙어가는 초록의 물결. 초록의 나뭇잎에 다가가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리면 생의 의지가 한층 높아질 것만 같다.
정갈하게 머리를 깎은 푸른 잔디를 보면 잔디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고 싶고, 초록의 나뭇잎이 뒤척이는 모습을 보면 나무 밑 그늘에 앉아 하루를 위로받고 싶다.
하늘은 무언가를 금방이라도 쏟아 낼 것처럼 먹구름으로 뒤덮었다. 대지는 점점 초록으로 물들어가고 나뭇잎은 연초록에서 진한 초록으로 짙어져만 간다.
오늘은 초파일이다. 뭇 중생을 구하기 위해 태어난 석가모니. 불교에 대한 지식은 없지만, 사람들은 석가모니가 태어난 날과 예수가 태어난 날을 기념하여 각종 행사를 벌인다.
종교는 사람의 근원을 다루는 사상이다. 인류의 탄생과 관련한 금기사항과 인간이 지켜야 할 윤리를 다루는 것이 종교다. 오늘은 불교의 태두인 석가모니가 태어난 날이다. 산사에서는 석가모니 탄생을 기념하기 위한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
공휴일에 느긋한 마음으로 소풍을 나왔다.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걸어서 약 이십 분 정도 걸린다. 평촌역에서 전철을 타고 두 정거장 가면 내려야 할 역이다.
청사역에는 언제나 육신을 힘들게 하는 계단이 장막처럼 기다린다. 시민이 사는 방향에는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고, 직장인이 근무하는 방향에는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지 않아 절벽 같은 계단을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높은 계단을 올라갈 때마다 도시철도공사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시민만 사람이고 직장인은 사람이 아니란 말인가?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지 않고 몸 고생을 시키는 이유를 모르겠다.
이런저런 생각하며 계단을 힘겹게 올라가면 숨이 턱턱 막히고 호흡이 가빠진다. 전철역 7번 출구를 어렵게 올라가면 걸어가야 할 길이 기다린다.
사무실로 가는 길은 세 갈래다. 하나는 흙으로 다져진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정갈하게 보도블록이 깔린 가로수로 길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제방 둑을 걸어가는 길이다.
운동장을 관통해서 가는 길은 빠르지만, 동행하는 친구가 없어 쓸쓸하다. 이에 비해 인도나 둑길에는 은행나무, 느티나무, 플라타너스, 느릅나무 등이 동행을 해준다.
어떤 길을 선택해서 청사로 갈 것인가는 그 사람의 몫이다. 흙길을 좋아하는 사람은 흙으로 다져진 길을 선택하고, 나무를 좋아하고 가로수와 인연을 맺은 사람은 나무가 반겨주는 길을 선택할 것이다.
사람은 은연중에 자신이 살아오면서 경험한 익숙한 것을 본능적으로 선택한다. 세 갈래 길 중 어떤 길을 선택하던 사무실로 갈 수 있다.
그렇다고 로버트 프로스트처럼 가지 않은 길을 두고 인생을 비유하는 시적인 냄새를 풍기고 싶지는 않다. 어떤 길을 선택하던 그것은 선택한 자의 몫이다. 또 가지 않은 길은 언제든 다시 선택해서 가면 그만이다.
오늘은 평소에 다니지 않던 제방으로 난 길을 선택했다. 제방 길에 들어서자 둑 밑에서 머리에 수건을 두른 아주머니 두 분이 호미를 들고 무언가를 캐고 있다.
그곳을 지나 걸어가자 아카시아 나무가 눈에 들어오더니 코를 자극하는 진한 냄새가 풍겨온다. 오랜만에 아카시아 향기가 후각을 자극하자 머리가 맑아진다.
마치 고향의 냄새에 굶주린 사람처럼 아카시아 향기를 가슴을 활짝 열고 음미했다. 아침부터 아카시아 꽃향기가 삶의 고단함을 녹여준다.
요즈음 누군가에게 빚을 진 것도 없는데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뒤를 돌아볼 새도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젊은이들의 거친 목소리가 메아리로 들려온다.
삶은 찰나의 순간을 관조하는 마음으로 지긋이 바라보면 살갑게 다가온다. 이 삶은 정녕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삶이 어디를 향해 가는 지도 모르고 하루를 살아내고 살아가는 무심한 날들이다.
저 멀리서 불어오는 은은한 산들바람이 몸을 훑으며 지나간다. 젊은이들이 뛰어다니는 운동장을 둘러싼 가로수들이 바람에 뒤척이며 수런거리고, 등산가방을 메고 산을 찾아가는 사람의 목소리에는 여유로움과 건강함이 실려있다.
오월은 푸르름이 익어가는 신록의 계절이다. 텅 빈 대지를 채워가는 신록은 겨우내 비워두었던 대지의 건강한 약속이다. 초록은 희망을 품게 하고 오월은 꿈을 갖게 하는 향기로운 달이다.
오월의 신록은 사람의 마음을 키우고 달래는 진실한 스승이다. 신록은 번잡한 말과 글이 아닌 묵언으로 향기로움을 전해주는 반면교사다.
나는 오월의 신록을 참 좋아한다. 오월에는 누군가와 신록이 우거진 숲을 산책하고 싶고,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호젓함을 누려보고 싶다.
더불어 진한 아카시아 꽃향기를 맡으며 둑길을 거니는 동행하는 향기로운 삶을 살아가고 싶다. 푸른 오월이 눈앞에서 미풍의 바람을 타고 푸르게 익어 간다.
신록의 계절이 되면 바쁜 것을 접어두고 한가하게 푸르름이 더해가는 숲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거닐어 보고 싶다. 그런 소망에 가는 오월을 잡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바라보는 마음이 서럽고 아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