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카키호수에 담긴 설산

by 이상역

푸카키호수에 자신의 그림자를 고스란히 담은 마운틴 쿡산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에 올라가서 호수와 설산을 배경으로 일행과 영혼의 한 컷을 담았다.


영국이 지배했던 나라들 대부분은 사람의 이름을 붙여 산이나 강이나 지역명을 붙여 사용하고 있다. 마운틴 쿡산도 영국인 탐험가 마운틴 쿡이 발견해서 붙인 이름이다. 산 이름에 사람의 이름을 붙여 부르는 것은 맞지 않는 것 같은데 더 이상한 점은 고유한 이름은 버려두고 지금도 그대로 부른다는 것이다.


마운틴 쿡산은 뉴질랜드를 상징하는 산이다. 푸카키호수 건너편에 정상에 흰 눈을 잔뜩 뒤집어쓴 그림 같은 만년설과 짙푸른 호수를 배경으로 카메라만 들이대면 그림엽서가 찍힌다.


이곳에선 어떤 배경을 바탕으로 사진을 찍을 것인가는 고민할 필요가 없다. 동서남북 사방의 산마다 만년설을 거느리고 있어 카메라의 원근만 조절해서 찍으면 그대로 그림엽서가 나온다.


지금까지 해외여행을 와서 일행과 단체 사진을 찍은 적이 없다. 처음으로 마운틴 쿡산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일행 30명이 한 곳에 모여서 한 컷에 영혼을 담는 모습.


단체여행에서나 맛볼 수 있는 아름다운 광경이다. 단체 사진을 찍고 나자 가이드가 개인별로 사진도 찍고 주변 경치를 구경하라며 자유로운 시간을 주었다.


일행은 사방으로 흩어져서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몇 컷의 사진을 찍고 난 일행은 다시 하나둘씩 버스로 올라왔다.


푸카키호수에서 멋진 설산과 호수를 구경하고 캡틴은 다음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13:30분. 버스가 한참을 달려가더니 테카포호수 근처에서 정차한다.


가이드가 주변에 작은 교회 건물과 유명한 개 동상이 있으니 한번 둘러보란다. 이곳도 사방이 아름다운 호수와 만년설로 둘러싸였다. 뉴질랜드는 신의 축복을 받은 나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작은 교회 건물이지만 다양한 종류의 믿음을 가진 주민이 이곳에 와서 예배를 보고 간단다. 교회 건물에 들어가 작은 창문을 통해 마운틴 쿡산의 만년설을 바라보는데 마치 한 폭의 풍경화처럼 들어왔다.


일행과 교회 건물을 둘러보고, 개 동상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양몰이 개를 동상까지 만들어 기념한 것을 보면 무언가 특별한 사연이 깃들어 있는 것 같다.


넓은 초지에서 양 목장을 운영하려면 양을 몰아주는 개는 필수다. 아마도 양몰이 개의 헌신적인 고마움을 기리기 위해 주민들이 동상을 세워 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데카포호수의 깊은 심연에서 불어와 드넓은 벌판으로 불어 가는 남섬의 따뜻한 바람. 그 바람을 등지고 버스는 다시 크라이스처치를 향해 출발한다.


버스를 타고 가며 바라보는 산마다 정상에는 흰 눈을 쓰고 있고, 그 밑에는 초원이 어우러져 봄의 정취를 한껏 미적으로 승화시킨다. 점심을 먹고 나서 버스에 앉으니 졸음이 무더기로 쏟아진다.


먹는 것도 따지고 보면 고된 일이자 노동이다. 가이드가 일행에게 마오리족이 부르는 ‘연가’를 각기 다른 음색으로 들려준다.


마오리족의 목소리가 곱고 미적인 소리로 들려온다. 우리는 목이 탁 트인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데 이들은 목이 트지 않은 미성의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마오리족이 부르는 노래가 마음이란 그릇에 감정을 따듯하게 데워주고 채워준다.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오늘 그대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


저 하늘에 반짝이는 별빛도 아름답지만

사랑스러운 그대 눈은 더욱 아름다워라


그대만을 기다리리 내 사랑 영원히 기다리리

그대만을 기다리리 내 사랑 영원히 기다리리

고향에서 살던 시절 들녘을 쏘다니거나 소를 앞세워 풀을 뜯기면서 즐겨 부르던 노래가 연가다. 아름다운 음악은 목소리를 통해 마음의 정서를 잔잔하게 녹여준다.


노래가 때로는 잡음도 되지만 때로는 미적 심취에 빠져들게도 한다. 마오리족이 부르는 연가엔 어떤 전설과 곡절과 사랑이 깃들어 있을까.


버스가 목적지를 향해 부지런히 움직이자 가슴 깊숙한 곳에 잠재해 있던 감정의 끝자락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버스에 앉아 흔들거리는 마음의 감정을 비망록에 그려보는 중이다.


내 마음에 깃든 감정의 문이 체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오그라들지 않고 넓은 평야와 같이 열려만 간다. 사람의 마음자리는 상념이 일기 시작하면 끝없이 일어나는 구름과도 같다.


한 생각이 사라지면 다른 생각이 떠오르고, 갖가지 생각이 중첩되어 떠오르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씩 사라져 간다. 마오리족이 부르는 연가를 통해 마음 밭이 열리고 끝없는 벌판을 향해 달려가는 여정의 길에서 갈 곳 모르던 마음도 서서히 제 자리를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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