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스타운에서 크라이스처치를 향해 가는 버스 안에서 일행에게 비망록에 적은 글을 읽어주었다. 내가 쓴 글을 누군가에게 읽어주면 그 글이 반대로 내게는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글은 생각나는 대로 쓴 것과 남들 앞에서 정리해서 읽어주는 것과 활자로 인쇄되어 나오는 것의 의미가 각기 다르다.
처음에 생각한 바를 그대로 적으면 글이 아니라 단순한 감정의 여행이고, 생각한 바를 글로 정리해서 다른 사람에게 읽어주면 상념을 넘어 어느 정도 확정된 의미로 다가온다. 그리고 글이 활자화되어 세상 밖으로 나오면 확정된 의미를 넘어 고정된 문자로 다가온다.
일행과 남섬을 떠도는 여정도 어떤 의미에서 보면 추억이자 전설이다. ‘아우테어로아’를 가로질러 버스를 타고 가는 단체 여행.
푸른 초원 위를 내리쬐는 남극의 태양처럼 따뜻한 양지를 찾아가는 방랑자가 되어 마음속을 헤집어 본다. 누구도 함부로 찾아올 수 없고, 떠날 수도 없는 길이 여행이다.
마오리족이 부르는 미성의 아름다운 노랫소리. 나는 그들의 목소리에 취해 버스에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끄적이는 여정에 빠져들어 간다.
남섬의 퀸스타운을 출발할 때는 하늘에 구름이 제법 많았는데 크라이스처치에 가까워지자 짙푸른 하늘이 드러난다. ‘아우테어로아’의 푸른 하늘, 녹색의 초원, 감미로운 노래로 꾸며진 남섬을 가슴에 부둥켜안고 미지의 세계를 찾아가는 중이다.
귓전에 들려오는 노래가 마오리족이 부르는 목소리에서 그간 익숙하게 듣던 한국 가수의 노래로 바뀌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 뉴질랜드의 북섬이나 남섬에서 한국인을 자주 만났다.
오천만 인구 중에 뉴질랜드를 찾아오는 사람이 도대체 몇 명인지는 몰라도 떠들썩하게 무리 지어 다니는 사람 속에는 반드시 한국어로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버스에 앉아 여행을 즐기는 일행은 잔잔하게 흐르는 노랫소리에 맞추어 잠을 자거나 창밖을 응시하는 사람으로 나뉘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일행을 바라보며 생각의 톱을 높여가자 손목이 뻐근해진다.
짙푸른 녹색의 초원이 전해주는 싱그러움을 가슴에 더 받아들여 감정의 샘물을 보충해야겠다. 마음의 충전은 그저 기다림이다. 내 몸에 기운을 불어넣는 것도, 감정을 보충하는 것도 시간이란 기다림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은 덧없이 흘러가지만, 그 흐름에 따라 몸의 에너지를 강하게 데워주는 윤활유는 주기적으로 순환한다. 그 윤활유가 때가 되어 몸에 차오르면 기억이 되살아 나고 새로운 기운을 갖게 한다.
지구의와 지도책으로만 보아 왔던 ‘아우테어로아’. 차마 꿈에서도 만날 수 없었던 ‘아우테어로아’가 자신의 속살을 풀어헤치고 수줍게 내보인다.
뉴질랜드 남섬만이라도 우리나라 제주의 남쪽에 이어 붙여 놓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나라도 이곳처럼 천혜의 땅을 갖고 부와 복지를 누리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버스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가 서서히 감정의 끝자락을 건드려댄다. 노랫소리에 맞추어 감정을 이리저리 뒤척이니 깊은 심연을 자극하는 노랫소리로 들려온다.
아름다운 영혼이 유려하게 보이듯이 여행을 다니는 여정의 길이 더욱 맑기만 하다. 이국에서 한국 노래를 듣고 있으니 갑자기 한국의 가을이 그리워진다.
한국을 떠나올 때는 가을이란 계절이 그리 낭만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는데 한국을 떠나 이곳에 와서 생각하니 한국의 가을이 더없이 그립기만 하다.
가수가 부르는 노랫소리가 마음을 유장하고 미려하게 변화시킨다. 노래도 장소와 시간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듯이 ‘아우테어로아’에서 듣는 한국 노래가 더없이 아름답게 들려온다.
지구의를 빙빙 돌려가며 바라보면 ‘아우테어로아’가 그리 크게 보이지 않는데 막상 이곳에 와서 버스를 타고 돌아다녀 보니 아주 넓고 크다는 생각이 든다.
민둥산인 산자락에는 사막에서나 자란다는 ‘터썩’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자라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뉴질랜드는 어느 곳에서나 사진을 찍어도 한 장의 그림엽서가 나온다.
뉴질랜드 국기에 남십자성을 상징하는 4개의 별이 빛나는 신의 축복을 받은 나라. 이곳에선 하늘을 나는 비행기도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도 좀처럼 만날 수가 없다.
이곳에 무언가를 비교하기 위해 여행을 온 것은 아니지만 한국적인 사고방식에 젖어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버스를 타고 다니며 눈을 아무리 치켜뜨고 찾아봐도 농작물을 재배하는 밭이나 논을 볼 수가 없다.
호수에 담긴 강물이 햇볕에 반짝이며 반겨주듯이 ‘아우테어로아’의 산은 풍성한 전설을 담고 우리를 반겨준다. 이곳은 버스를 타고 도로를 종일토록 달려가도 가로등이나 신호등 하나 만날 수가 없다.
한국적인 생각으로 뉴질랜드에서 생활하면 곤란을 겪는 일이 한둘이 아니다. 15:37분. 크라이스처치에 도착하기 전에 드넓은 캔터베리 대평원을 만났다.
우리나라의 호남평야와 같은 평야가 버스 앞과 뒤와 양 옆으로 끝없이 펼쳐졌다. 대평원에는 양이 아닌 젖소가 무리를 지어 평화롭게 풀을 뜯는 모습이 바라보인다.
크라이스처치는 영국의 크라이스처치 대학교 동창들이 설계해서 세운 도시란다. 남섬의 크라이스처치가 가까워지자 드디어 사람이 사는 집이 하나둘씩 나타난다. 사람이 사는 집을 보게 되자 오히려 낯설기만 하다.
오늘은 종일토록 버스를 타고 와서 오후가 되자 몸이 축 늘어지고 기력이 떨어졌다. 몸의 근육도 늘어지고 긴장감도 느슨해졌다. 버스에 탄 일행 대부분은 고개를 떨어트리고 잠을 자고 가이드도 안내하는 일에 지쳤는지 잠을 잔다.
일행은 창밖에 대평원이 나타나도 양 떼나 젖소의 무리가 나타나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뉴질랜드에서 지치도록 만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결과다.
이제는 목가적인 풍경보다 도시적인 모습이 나타나면 일행은 허둥지둥 고개를 좌우로 돌려가며 바라본다. 무릎에 비망록을 올려놓고 무언가를 끄적이는 긴장감도 떨어지고 감정의 샘물이 메말라서 잠시 꿈속으로 여행이나 떠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