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팔방으로 한 발씩 포복경을 뻗어
하늘 낮은 삶으로 질긴 목숨
여우비라도 뿌리고 가면
한 뼘씩 자라서 밭두덕이며 고랑마다
온통 바랭이 풀이다
질긴 줄기를 양손으로 그러움키고
뿌리째 뽑다 보면
바랭이는 뽑는 게 아니라
끊어야 함을 알겠다
감자는 심는 게 아니라 놓는다는 것처럼
손에 익은 소리 다다닥
수염뿌리 끊어지는 엉키고 엉킨…(바랭이, 박종헌)
이 詩를 읽노라면 곳곳에 바랭이의 특성을 나타내는 단어를 접하게 된다. 먼저 포복경이란 한자어가 나온다. 이 단어는 처음 접하면서도 다소 생소한 느낌이 든다.
사전에 포복경이란 땅 위로 길게 뻗으며 마디에서 뿌리가 나는 줄기를 말한다고 정의되어 있다. 바랭이의 왕성한 번식력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 같다.
다음은 여우비다. 여우비란 잠깐 내리다가 그치는 비를 말한다. 바랭이는 여우비만 내려도 쑥쑥 성장하듯이 한 밤만 자고 나면 한 뼘씩 성장한다. 그렇게 성장한 바랭이는 손으로 한 번에 쑥 뽑아낼 수 없다.
바랭이는 방향을 재지 않고 사방으로 뻗어가며 마디마다 뿌리를 내린다. 따라서 바랭이는 풀을 그러모아 손에 움켜쥐고 한 번에 뽑는 것이 아니라 바랭이의 마디마다 내린 뿌리를 일일이 끊어내고 뽑아야 한다.
우리나라 들녘에서 자라는 대표적인 풀이 바랭이다. 시인은 바랭이는 뽑는 것이 아니라 마디를 끊어내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아마도 바랭이를 뽑은 경험을 바탕으로 바랭이란 시에 마음을 녹아들게 한 것 같다.
나도 시인처럼 바랭이와 관련한 숱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아침에 탄천의 천변을 산책 삼아 걷다 보면 바랭이가 수북하게 자란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바랭이는 詩人이 노래한 것처럼 번식력이 왕성해서 마디가 땅에 닿으면 곧바로 뿌리를 내린다. 천변을 걷다가 바랭이를 만날 때마다 머릿속에는 지난 시절 바랭이를 뽑던 고단한 추억이 슬그머니 환영처럼 떠오른다.
시골에 살던 시절 고구마밭은 남산골 옆 골짜기에 있었다. 고구마는 황토밭에 심어야 붉고 맛이 좋다. 그 시절엔 비닐이 보급되지 않아 노지에 고구마 순을 그대로 심었다.
밭에 비닐을 씌우지 않고 고구마를 심으면 김을 자주 매고 풀을 뽑아야 한다. 그리고 김을 매면서 고구마가 잘 자라도록 흙을 북돋아 주고, 고구마 마디에서 내린 뿌리도 몇 번은 끊어주어야 한다.
가족들과 고구마밭을 매기 위해 남산골 밭에 도착하면 바랭이가 수북하게 자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고구마밭에 수북하게 자란 풀만 바라보면 걱정과 한숨이 저절로 새어 나왔다.
고구마 밭에 들어가 한 고랑씩 잡고 앉아 풀과 바랭이를 뽑는 일은 한나절이 걸렸다. 그나마 대가족이라 고구마밭 두 고랑의 풀과 바랭이를 뽑아내면 하루가 그럭저럭 지나갔다.
천변을 걸어가며 수북하게 자란 바랭이를 만날 때마다 시골에서 고구마밭을 매던 시절이 슬그머니 떠오른다. 이제는 지나간 추억이 되었지만, 호미를 들고 부모님과 형제들과 함께 산자락에 올라가 고구마밭에서 풀과 바랭이를 뽑으며 보낸 시절은 고단함과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그 시절 고구마는 추운 겨울에 배고픔을 달래주던 먹거리였다. 아버지는 안방 윗목에 수숫대를 새끼줄로 엮어 만든 원통형 퉁가리에 고구마를 가득 넣어 저장했다. 겨울철에 유일한 간식거리는 안방을 들락날락하며 통가리에서 꺼낸 고구마다.
아버지는 통가리 한쪽은 고구마를 꺼낼 수 있도록 짚을 돌돌 말아 막아 놓았다. 그곳 사이로 손을 쓱 집어넣으면 날고구마가 손에 잡혔다. 그중에 가장 큰 놈을 움켜쥐고 꺼냈다
보릿고개를 넘던 시절에는 고구마가 끼니를 때우는 가난의 대명사였지만, 오늘날은 건강식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고구마로 요리하는 방법도 다양해졌고, 살을 빼기 위해서 건강식품으로도 먹는다.
겨울에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먹었던 고구마는 맛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했는데 요즈음 고구마를 사다 쪄 먹으면 달달하고 맛이 너무 좋다. 고구마가 이렇게 맛이 좋았나 할 정도다.
오늘은 바랭이를 통해 지난 시절 가난하고 힘들었던 추억을 떠올려보았다. 천변을 걷다가 바랭이만 만나면 고구마밭을 매던 추억과 캔 고구마를 지게에 짊어지고 내려오던 고단한 삶의 모습이 속절없이 떠오른다.
사람은 이래저래 고향을 떠나 어딘가에서 살아가도 지난 삶의 추억을 자주 현생에 등장시키고 회상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