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아프도록
들은 얘기 또 들으며
산자는 땡볕 아래 사나흘 풀을 벤다
풀냄새 진한 울림이
단물처럼 시원하다
키 넘는 잡풀 재우니
서먹함도 스러진다
퇴주잔 높이 들어 소통의 길을 닦고
묘비에 새긴 행적은
빛을 내며 일어선다
마른 인생 안주 삼아
음복의 잔을 돌리면
무너진 우리네도 무릎 세워 일어설까
티 묻은 상석을 닦으며
이름 석 자 올려본다(김종영, ‘벌초’).
시인은 벌초를 끝내고 음복의 잔을 들어 올리며 조상을 생각하는 마음을 시로 노래했다. 詩에서 사나흘 벌초를 했다는데 요즘처럼 예초기가 아닌 낫으로 여러 기의 산소를 벌초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벌초는 죽은 자와 산 자가 나누는 은밀한 대화이자 만남의 행위다. 벌초하는 동안에 조상이 남긴 말을 떠올리고 살아계실 때 함께 한 지난날을 돌아보게 된다.
지난 주말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아 아버지와 선 대조 할아버지 산소를 벌초했다. 가랑비를 맞아가며 사촌 형제들과 작업했다.
고향 선산에는 아버지를 비롯한 선 대조 산소가 즐비하다. 매년 벌초하지만 몇 대조인지 그리고 이름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벌초만 하는 신세다.
벌초할 때마다 몇 대조 산소라고 알려주는데 그 말은 머릿속에 그리 오래 남아 있지를 못한다. 고향 선산에는 중시조 할아버지가 자리를 잡은 날부터 선 대조 할아버지의 산소가 산자락의 이곳저곳에 자리 잡고 있다.
고향은 산을 높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급이 다른 할아버지 산소가 나타난다. 하지만 할아버지들이 무슨 일을 했고, 어떤 삶을 누리며 살아가셨는지 전해오는 이야기도 들려주는 사람도 없다.
그저 몇 대조 할아버지라는 단어만 존재할 뿐 선 대조 얼굴도 이름도 모르고 어떻게 살다가 이곳에 묻히게 되었는지 티끌 같은 사연도 남아 있지 않다.
학창 시절 역사 시간에 조선 시대 왕의 연대기인 ‘태정태세 문단세 예성연중 인명선…’. 을 순서대로 무미건조하게 외운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삶의 역사는 이야기로 엮어 전해주면 이해하기가 쉽고 잊어버리지 않는다. 그런 것은 제쳐두고 왕의 순서만 외운 결과 몇 대 왕이란 것은 알지만,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것도 모른다.
고향 선산의 선 대조 할아버지도 이와 다를 바가 없다. 선 대조 할아버지 얼굴도 이름도 사연도 모르는데 무엇을 연유해서 기억할까. 최소한 몇 대조 할아버지는 어떤 사람이고 어떠했다 정도는 알아야 머릿속에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詩에서 시인은 낫을 들고 벌초했지만, 요즈음은 예초기로 한다. 홀로 낫을 들고 벌초하려면 산소 한 기를 깎는데 종일토록 해야 한다. 하지만 예초기로 하면 두 시간이면 족하다.
예초기는 둘이 짝을 지어 작업한다. 한 사람은 잔디를 깎고 다른 사람은 깎은 잔디를 갈퀴로 긁어서 버린다.
사촌 형제가 모여 네 대의 예초기로 여섯 기의 산소를 벌초하는데 반나절 만에 끝났다. 벌초를 마치고 시골집에 모여 꿀맛 같은 점심을 먹었다.
아버지의 산소뿐만 아니라 선대 산소에는 변변한 비석조차 세워 놓지 않았다. 조상의 산소에 비석을 세우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상살이다.
아버지 산소에 비석을 세운다고 하자 선 대조 산소에 비석이 없어 세우면 안 된다. 비석을 세우려면 선 대조도 같이 세워야 한단다.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는 어느 정도 알겠는데 죽은 자가 머문 저쪽 세상의 일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산소에 작은 묘비석이라도 세워 놓아야 몇 대조 할아버지인지를 알 수 있는데 산소에 표시가 없으니 모를 수밖에 없다.
다른 것은 차치하더라도 아버지 산소에 작은 묘비석이라도 하나 세워 놓아야겠다. 나는 아버지의 산소를 머릿속에 영원히 기억하겠지만 후손은 나와 같이 시간이 흐르면 누구 산소인지도 모르게 될 것이다.
선 대조 할아버지 산소를 벌초며 몇 대조인지도 모른 채 벌초하는 것이 저쪽 세상에서 바라본 윤리에 맞는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아버지 산소에 작은 묘비석이라도 세우고 그곳에 아버지가 살다 간 사연을 조금이라도 기록해 두는 것이 자식의 도리가 아닐까.
그래야 나중에 이 산소가 누구의 것인지 어떤 삶을 살다가 가셨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산자가 죽은 자를 위해 해야 하는 최소한의 도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