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에게 보낸 편지>
큰딸아!
과천에서 너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꿈과 희망을 여는 날이 되기를 바란다. 봄꽃의 화려함이 사라지고 이제는 짙은 초록만이 세상을 노래하는 계절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짓고, 저녁에 졸음을 쫓아가며 네가 오기를 기다리다 저녁을 먹는 것도 소중하기만 하다. 아빠는 내 앞에 다가오는 운명은 피하고 싶지 않다. 어떠한 고난과 시련이 와도 묵묵히 받아들이면서 살아가는 것이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너도 네 앞에 다가오는 운명을 피하지 말고 당당하게 맞서 극복하기 바란다. 사람은 다가오는 운명을 피하면 피할수록 본질에서 멀어진다. 문제를 의식하지 않으려 하면 할수록 더 또렷이 떠오르는 것과 같다.
어찌 되었든 너의 열정과 온 힘을 기울여 공부에 힘쓰기를 바란다. 아빠가 바라는 것은 누누이 강조하지만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하면서 즐기며 사는 것이다.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삶은 야트막한 언덕을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깊은 계곡과 넓은 강을 건너가는 것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어느덧 너와 과천에 둥지를 틀고 살아온 지도 한 달이 되어간다.
인생은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면 추억으로 가득한데 미래라는 앞을 내다보면 답답해진다. 우리 곁에서 계절이 지나가는 것을 느끼고 매미가 울어대는 소리를 들어도 삶은 여전히 진전이 없는 것 같다.
가끔 네가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너의 미래 모습을 떠올려보곤 한다. 매 순간을 시간에 쫓기거나 초조하게 재촉하지 않으면서 생활하기 바란다.
공부는 여유롭고 즐기는 마음으로 다가가야 생각이 열리는 것이지 시간에 쫓기듯이 나를 몰아가면 틈이 생기지 않는단다. 종종 네가 살아온 시간과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생각하면서 미래를 그려보아라.
아마도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특별하게 떠오르는 것이 없을 것이다. 학교를 오고 가며 무언가를 부지런히 배운 것 같은데 정작 돌아보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이 삶이란다.
나도 너와 지내면서 엄마와 막내와 떨어져서 생활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아빠는 삶이 자꾸만 거꾸로 간다는 느낌이 든다.
오늘 아침에 식사할 때 이야기했지만 지난 시절에 자취했던 기억이 오롯이 생각난다. 아빠가 쓴 자서전을 읽어보면 당시 자취생활 했던 이야기를 써놓았는데 시간이 나는 대로 한번 읽어보아라.
아무쪼록 네 앞에 다가오는 운명에 굴복하지 말고 당당하게 맞서는 당찬 여성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어떠한 고난이 닥쳐도 참고 견디며 극복하는 힘을 길러 네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그럼 이만 펜을 놓는다.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