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새벽 두 시쯤 비가 창문에 세차게 부딪치는 소리에 잠을 깼다. 잠이 깨자 비가 집으로 들이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얼른 일어나 앞 뒤 베란다 창문을 모두 닫았다.
내 몸에는 알게 모르게 소나기가 쏟아지면 지난 시절의 행동이 저절로 튀어나온다. 고향에서 자라던 시절 한밤중에 비가 쏟아지면 벌떡 일어나 비설거지를 하러 마당으로 달려 나갔다.
고향 집 마당에는 고추나 곡식 등을 널어놓고 말려서 비가 오면 젖지 않도록 비설거지를 해야 한다. 그런 생활이 몸에 배어서 새벽에 소나기가 내리면 잠이 깨지면서 베란다 창문을 닫게 된다.
베란다 창문을 닫고 돌아와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는데 머릿속이 또렷해지면서 잠이 오지를 않는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새벽에 잠이 깨지면 좀처럼 잠들기가 힘들다.
젊은 시절엔 눕기만 하면 잠이 들었는데 나이가 더해갈수록 그 증상이 빈번해졌다. 잠이 오지 않아 전등을 켜고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열고 무언가를 끄적거렸다.
그러다 다시 전등을 끄고 잠을 자려는데 좀처럼 잠이 오지를 않는다. 그렇게 어정쩡한 상태로 선잠을 자다가 여섯 시쯤 일어나 산책을 나갔다.
집 밖에는 아직도 소나기가 내리고 있어 우산을 펴 들고 길을 나섰다.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가 장지천 천변으로 가려는데 천변 입구에 출입을 금한다는 푯말을 세워 놓았다.
어쩔 수 없이 위례 방향으로 길을 틀었다. 위례로 난 길을 따라 걸어가는 데 비가 상당히 줄어들었다. 아파트 단지 옆 도로를 따라 걷다 외곽순환도로 밑에 설치된 콘크리트 통로박스를 지나갔다.
그곳을 빠져나가자 택시회사와 버스 차고지가 나온다. 택시회사 옆 천변을 따라가다 위례로 건너가는 작은 다리로 올라가서 건너갔다.
위례신도시에는 자전거와 사람이 함께 걸어 다닐 수 있는 휴먼링을 조성해 놓았다. 이곳은 계절에 상관없이 언제나 운동을 할 수 있어 좋다. 위례의 휴먼링을 따라 걸어가는데 소나기가 다시 쏟아지기 시작했다.
휴먼링에는 나처럼 우산을 들고 걸어가는 사람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소나기가 쏟아지면서 뿌연 안개가 끼자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거리가 얼마 되지를 않는다.
우산을 받쳐 들고 빗소리를 들으며 걸어가는데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처량해진다. 하늘에는 검은 구름이 잔뜩 끼어 있고 천둥도 치고 번갯불까지 번쩍인다.
성남의 창곡천에 다다르자 비가 더욱 세차게 쏟아진다. 운동화에는 이미 빗물이 들어차 젖어버렸고 빗물이 고인 웅덩이를 피하느냐 몸을 깡충깡충 움직이며 걸어갔다.
소나기로 인해 휴면링에는 빗물이 흥건하게 흘러가서 운동화가 젖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고 첨벙거리며 걸어갔다. 운동화야 집에 가서 말리면 그만이란 생각에 앞만 보고 걸어갔다.
그렇게 창곡천을 지나 위례의 동편에 다다르자 창곡천을 지날 때보다 더 심한 소나기가 쏟아진다. 장대 같은 비가 내리자 빗물이 물보라를 일으켜서 시야까지 흐려졌다.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에서 ‘우르릉 쾅쾅’ 치는 천둥소리와 번갯불이 수시로 번쩍인다. 소나기가 아니라 하늘에서 물을 양동이로 쏟아붓듯이 내린다. 일기예보에서 물 폭탄이 내린다더니 말 그대로 폭탄처럼 쏟아진다.
휴먼링에는 마땅하게 비를 피할만한 곳도 없고 지나가는 사람도 없어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걸어갔다. 모처럼 폭우가 내리는 날에 우산을 받쳐 들고 노래를 부르며 걸어서 가본다.
휴먼링의 동편을 지나 제2단계로 위례신도시를 조성하는 북쪽에 들어서자 빗줄기가 서서히 줄어들었다. 위례신도시는 단계별로 도시를 조성하고 있다. 1단계 공사는 완료되고, 2단계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2단계 공사가 진행되는 곳에는 아파트를 짓는 회색의 콘크리트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공사장을 바라보며 북쪽의 휴먼링을 걸어가다 비를 피할만한 장소를 만났다.
그곳에서 잠시 쉬기 위해 우산을 접고 벤치에 앉았더니 몸의 상태가 말이 아니다. 운동화는 물에 흠뻑 젖어 양말까지 젖었고, 바지도 반은 빗물에 젖어 축축해졌다.
벤치에 앉아 쉬는데 비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렇게 위례 휴면링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자 비는 여전히 그치지 않고 내리고 있다.
올해는 참으로 유난스러운 한 해가 될 것 같다. 비가 내려도 너무 내리고 또 오래도록 쏟아져서 걱정이다. 사람은 참 이상한 족속이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과 하늘에서 축축한 빗물이 쏟아지는 날에 떠오르는 생각과 추억이 달라서다. 그중에 비가 내리는 날에 낭만적인 추억에 빠져들게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오늘따라 그에 대한 연유와 사연이 궁금해진다. 아울러 다시 집 밖에 나가서 맨몸에 비나 맞아가며 거리를 추적추적 거닐고 싶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