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 다시 서다

by 이상역

몇 해 전 나이가 되어 공직에서 물러났다. 직장에서 물러난 뒤 어찌어찌하다 보니 다시 세종에 내려와 일자리를 얻어 생활하고 있다. 삶은 필연보다 우연으로 이루지는 것이 많은 것 같다.


직장을 퇴직하고 일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그러다 직장에 근무했던 동료의 소개로 민간기관에서 몇 달간 근무하다 항공운송을 다루는 포장업체로 이직해서 몇 달간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하다 직장 동료의 소개로 이곳에 오게 되었다. 직장은 공공이나 민간이나 근무하는 조건이나 방식은 비슷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종에 내려와 홀로 주중에는 직장에 다니다가 주말에는 서울에 올라가고 일요일에 다시 세종으로 내려온다. 이곳 협회에 일자리를 얻어 다닌 지도 근 십여 개월이 되어간다.


협회는 마치 내가 공직에서 나오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공직에서 다루던 법령과 관련한 업무를 그대로 하고 있다. 지금까지 손에서 놓지 않고 있는 것은 글쓰기다.


글은 직접 써봐야 문서 기안이나 보고서 등을 수월하게 작성할 수 있다. 윗사람에게 말로 보고하는 것보다 워드를 쳐서 보고서를 내놓아야 윗사람은 그 사람을 다시 보게 된다.


말은 공중에 떠도는 생각일 뿐 말로는 업무와 관련한 것을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말보다는 워드 작업을 해서 보고서를 만들어 보고하면 사람이 달라 보인다.


공직에 근무할 때도 보고서나 기안을 수월하게 작성할 수 있었던 것은 평소 글쓰기를 한 것이 바탕이 되었다. 몇 장의 보고서를 한 장으로 줄이는 작업은 쉽지만, 한 장의 보고서를 서너 장으로 늘리는 작업은 어렵다.


보고서를 줄이는 작업은 핵심을 잡고 줄이면 되지만 늘이는 작업은 핵심을 잡는 것보다 글을 체계화시켜 근거자료와 통계치를 바탕으로 작업해야 한다.


평소 글쓰기를 하지 않거나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보고서 늘리는 작업을 가장 어려워한다. 공공이나 민간이나 보고서 작성을 잘하는 사람을 우대하는 문화는 똑같은 것 같다.


보고서에는 사회 경험이나 학력이나 지연 등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오로지 보고서에 자신의 생각과 관점을 논리적으로 담아냈느냐가 중요하다.


자신의 생각을 잘 정리해서 물 흐르듯이 표현하는 것이 글쓰기다. 게다가 독서를 통해 요점 정리를 잘하는 사람은 보고서도 잘 쓴다.


보고서에도 단어 하나 문장 하나 문맥 하나 제대로 표현해서 써야 한다. 결과적으로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보고서도 잘 쓰고 보고서를 잘 쓰는 사람은 글쓰기도 잘한다.


어떠한 글이든 쓰기에 앞서 주제를 정하고 소재를 찾아 전체적인 개요를 설계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모은다. 보고서도 마찬가지다. 보고서를 작성하기 전에 먼저 통계나 관련 자료를 모아야 한다.


어쩌다 보니 글의 주제와 다른 관점인 글쓰기라는 소재가 주제로 튀어나왔다. 지난해 시월부터 지금까지 협회에 근무하면서 많은 보고서를 작성했다. 공직에 근무하던 시절보다 지금이 보고서를 쓰는 속도가 빨라졌고 익숙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일이 가능해진 것은 그간 글쓰기를 손에서 놓지 않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삶이 내 의도한 대로 풀려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의도한 대로 풀려갈 수 있도록 노력은 해야 한다.


비록 주중에 가족과 떨어져 직장을 다니는 신세라지만 직장에 다닐 수 있다는 마음에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이곳에서 언제까지 근무할지는 모르겠지만 가정으로 복귀하는 날까지 부지런히 글도 쓰고 보고서도 쓰면서 여유롭게 지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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