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봄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세종 사무실에 출근하려고 준비를 서둘렀다. 오늘은 장지동에서 수서역까지 걸어가서 출근해 볼 생각이다.
집을 나와 우산을 펴 들고 장지천을 향해 발걸음을 천천히 내디뎠다. 어젯밤부터 비가 그치지 않고 내려 도로의 웅덩이마다 빗물이 고여 있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장지천에 들어서자 시냇물이 누런 흙탕물로 변해 흘러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장지천 천변에 조성된 누리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가자 머리 위로 육중한 동부간선도로가 지나가고 탄천이 나온다.
그곳에서 수서로 가는 방향으로 길을 틀었다. 천변에는 나뿐만 아니라 운동 나온 사람들이 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아침에 운동하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직장에 출근하려고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도 있다.
탄천에서 수서로 가는 길 주변에는 가든파이브와 법원단지 그리고 패밀리아파트가 나란히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가락시장 위로는 마천루를 이룬 가락시영아파트 재건축 공사장이 눈에 들어온다.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건물을 바라보며 탄천에 낮게 놓인 다리를 건너 제방길로 올라가 육교를 건너갔다. 육교를 건너서 수서 아파트 방향으로 길을 바꾸자 아파트 단지 내 오솔길이 나타난다.
아파트 단지 내 길로 들어서 단지 길 끝에 다다르자 SRT 수서역이 눈앞에 바라보인다. 장지동에서 출발한 지 근 사십 분만에 수서역에 도착했다.
역사 내 창구로 가서 직원에게 오송 가는 SRT 입석 표를 달라고 하자 직원은 SRT는 입석을 운영하지 않는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동안 SRT를 타고 다니며 입석이 되는 줄 알았다.
잠시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몰라 허둥거렸다. 수서역에 도착한 것은 아침 7시 30분이다. 잠시 창구 뒤로 물러나 정신을 가다듬고 직원에게 예약할 수 있는 기차는 몇 시에 있느냐고 묻자 9시 20분에 있단다.
먼저 기차표를 예약해 놓고 벤치에 앉아 지금의 상황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침에 사무실에 출근하기 위해 천변을 걸어왔다. 먼저 9시 20분 기차표를 예약하자 시간이 정지된 듯 다가온다.
그러면서 온갖 상념이 떠오른다. 미리 전화해서 입석이 가능한지 물어보지 않고 무작정 걸어왔다는 생각에 자책감도 생겨난다. 지금 최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의견을 물어보았다.
아내는 기차표를 반납하고 장지역에 와서 천안 가는 버스를 타고 천안에서 세종 가는 버스를 타고 가란다. 아내의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수서역에서 시간을 기다렸다 SRT를 타고 가나 장지역에 가서 천안 가는 버스를 타고 가는 방법이나 시간상 차이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리고 강남 고속버스터미널로 가서 고속버스를 타고 가는 것도 그곳으로 이동하는 시간과 버스도 바로 있지 않고 예약하고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내 머릿속에는 보다 빨리 세종으로 갈 수 있는 온갖 방법을 떠올려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수서에서 기다렸다가 SRT를 타고 가는 방법이 나은 듯했다.
어쩔 수 없이 사무실에 전화해서 출근이 좀 늦을 것 같다 말하고 역사 내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가방에서 책을 꺼내어 읽었다. 책을 읽으며 간간이 밖을 내다보는데 비가 아직도 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역사 내에서 이것저것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출근하던 부산한 마음이 사라지고 착 가라앉았다. 아침에 가야 할 길을 잃고 나자 모든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다가온다.
더불어 아침에 뜻하지 않은 두 시간의 공백이 생기자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역사 내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아침의 두 시간은 참으로 길고도 지루하게 느껴졌다.
역에서 두 시간 동안 책도 읽고 핸드폰으로 인터넷도 검색하고 역사 내 TV도 시청했다. 역사 내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데 예약한 SRT 출발시간이 되어간다.
역사 지하로 내려가 대기하고 있는 SRT에 탑승해서 예약한 좌석에 앉아 가방에서 책을 꺼내어 읽으며 출발을 기다렸다. 그러자 SRT는 출발시간에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서역을 출발한 SRT는 오십 분만에 평택과 천안을 지나 오송역에 도착했다. 오늘은 뜻하지 않게 사무실로 가는 길에서 가던 길을 잃고 아침에 두 시간을 역사에서 보냈다.
지금껏 한 번도 이렇게 어리벙벙하고 황당한 일을 겪지 않았는데 오늘은 아무리 생각해도 나 스스로가 생경하고 낯설게만 느껴진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