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살

by 이상역

사람의 운명은 세상에 태어날 때 어느 정도 정해진다. 그리고 운명도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사람은 자신의 미래를 알기 위해 철학관을 찾아간다. 철학관을 찾아가서 한해의 운수가 좋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은데 “삼재가 꼈다.”, “역마살이 꼈다.”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별로다.


그런 말을 들으면 사주를 풀어준 사람을 향해 “돌팔이 아니야.”라는 말로 애써 무마하려 한다. 그러나 듣기 싫은 말은 머릿속에 남아 뒷목이 땅기고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아 찜찜하다.


역마살(驛馬煞)이란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팔자를 말한다. 언젠가 딸이 타로점을 보고 와서 내게 점을 치는 사람이 “역마살이 있다.”라고 했단다.


나는 역마살이 왜 들어있는지 묻지는 않았다. 역마살이 있든 없든 무시하고 살아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는 기분은 별로 좋지 않았다.


요즘 집값과 전세보증금 문제로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이 난리다. 주인은 집을 팔고 세입자와 의견이 맞지 않아 계약을 취소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서울에서 결혼을 앞둔 사람이 아파트를 사거나 전세를 구하는 일은 꿈조차 꿀 수 없는 세상이 되어간다. 결혼하는 성인이 부모의 경제적 도움을 받지 못하면 보금자리도 마련할 수 없는 시대다.


나훈아가 부른 ‘테스 형’의 노랫말처럼 “세상이 왜 이래!”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오고 세월이 고되고 각박하고 야박해져만 간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한 시대에 역마살이 존재할까? 역마살에는 좋은 의미도 있고, 좋지 않은 의미도 담겨있다. 직업상 이리저리 떠도는 여행업이나 무역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역마살을 갖고 태어난 사람일까.


그리고 서울에서 돈이 없어 계절마다 이삿짐을 싸서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사람에게 역마살이 있다고 하는 것이 맞는 말일까. 이것저것 따져보면 역마살이 들어있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다.


역마살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좀 진부한 단어란 생각이 든다. 나는 여행이나 무역에 관한 일을 하지 않는다. 그간 직장에 근무하는 동안 인사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게다가 삶의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이사한 것을 두고 역마살이 있다고 하면 할 말은 없다. 자동차가 등장하기 전까지 말은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다.


이전에 중요한 교통수단이던 말은 지금은 경주나 관람용으로 전락했다. 역마살이란 역마와 살이란 단어의 합성어다. 이를 해석하면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말을 타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운명을 말한다.


지금은 말이 사라지고 자동차나 비행기를 타고 돌아다니는 시대다. 그에 따라 말이 아닌 자동차나 비행기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합성어를 만들어야 하는데 대체할 단어가 마땅치 않아 보인다.


삶의 형편이 나아지자 캠핑카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여행을 즐기는 사람도 있고, 트럭을 개조해 슈퍼를 차리고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며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도 있다.


역마살을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하면 말이 아닌 차를 갖고 돌아다니는 사람은 살이 있다는 뜻이 된다. 살(煞)이란 사람이나 물건 따위를 해치는 독하고 모진 기운을 말한다.


차를 운전하며 돌아다니는 사람에게 당신은 살(煞)이 들어 있다고 하면 어떻게 생각할까. 아마도 제정신이 아닌 사람으로 취급하거나 코웃음을 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것이다.


딸에게 타로점을 쳐준 사람이 역마살이 있다고 해서 기분이 좋다거나 나쁘지도 않다. 우리말도 재해석하거나 새로운 말로 고쳐 사용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이 바뀌고 시대가 변하고 과학이 발달했는데 아직도 역마살이란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아닐까. 역마살보다 좋은 의미의 합성어는 없는 것일까. 역마살은 한자어를 조합한 합성어다.


세상이 변한 시대에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역마살도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하거나 다른 의미의 합성어로 바꾸어 사용해야 할 때가 되었다.


역마살뿐만 아니라 사람의 운명과 관련한 말은 좋은 의미와 좋은 표현은 없는 것인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역마살의 뜻대로 해석했을 때 오늘날 과연 역마살이 없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아마도 극소수만 해당될 것이다. 역마살이 있든 없든 삶이 달라질 것은 없다. 말은 말로써 존재하는 의미일 뿐 그 말이 사람의 생활과 행동양식을 지배하거나 바꾸지는 못한다.


역마살이란 단어를 몇 번이나 반복해 보지만 반복할 때마다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다. 왜 좋은 표현은 놔두고 듣기 싫어하는 말을 사용해서 사람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것일까.


우리말도 좋은 뜻임에도 나쁜 소리로 들리거나 어감이 좋지 않은 단어는 다듬어야 다. 길을 가는 사람에게 당신에게 역마살이 있다고 하면 웃으면서 받아줄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교통과 통신이 발달한 시대에 역마살은 사람을 해치는 기운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수단이자 선택임을 깊이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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