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잔치

by 이상역

시골에서 자라던 시절 아버지 생신이 되면 숙부님과 마을 어르신들에게 진지를 드시러 오라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아다니며 인사를 다녔던 기억이 떠오른다.


농사를 짓는 가정에서 가장인 아버지가 생신을 맞으면 마을 어른을 초대해서 아침을 대접하는 것이 마을의 풍습이었다. 아버지 생신날은 마치 잔칫날처럼 아침부터 집 안과 부엌이 시끌벅적했다.


마을 어른을 초대해서 아침을 먹으려면 커다란 상을 펼쳐 놓고 음식을 차리고 시중을 들고 어른들 오기 전에 마당에 나가 빗자루로 쓸고 방을 닦고 청소하느냐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우리 집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마을 집집마다 가장인 아버지 생일이면 초대를 해서 아침을 먹었다. 지금은 시골에 아버지 세대가 한 분도 계시지 않아 그런 미풍양속은 사라졌다.


다음 주 목요일이 어머니 생신이다. 올해로 구순을 넘기셨는데 어머니는 전화로 의사소통도 가능하고 허리가 굽어 많이 걷지는 못하지만 가까운 거리는 유모차에 의지해서 걸어 다니신다.


구순이 지나 맞이한 어머니 생신 날에 아버지 생신처럼 시골에서 음식을 차리고 마을 어른을 초대해서 대접해드리고 싶지만 그럴만한 시간도 장소도 없다. 그리고 이제는 그런 수고를 할 사람도 없다.


어머니는 몇 해 전 대퇴부 수술로 인해 치매 수준은 아니지만 과거의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최근의 일만 기억하신다. 어머니는 나를 만날 때마다 큰 딸 아직 시집가지 않았지라며 웃으면서 물으신다.


그러면 나는 딸 시집보낼 때 어머니가 직접 오셔서 축하해 주셨고 시집 간지 몇 해 되었다. 그리고 손주 출산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씀드리면 어머니는 웃으면서 근래의 일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신다.


어머니 생신이 주중이라 형제자매가 모이려면 어쩔 수 없이 주말을 정해 생신 잔치를 해야 한다. 이번 생신은 어디서 할 것인지 궁금해하던 참에 큰집 조카에게 카톡으로 연락이 왔다.


이번 할머니 생신은 토요일에 자기 집에서 하려고 하는데 숙부와 숙모들 의견은 어떠한 지 묻는 내용이다. 그 카톡을 받고 형제자매 간에 이런저런 말과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여름철이라 음식 준비와 치우는 일이 번거로우니 형제들은 인근 뷔페에 가서 하자 하고 자매들은 어머니가 조카 집에서 하는 것을 좋아하니 그냥 조카 집에서 하잔다.


결국 어머니 생신은 조카 집에서 하는 걸로 정해졌다. 생일 음식 준비와 차림은 고모들과 상의해서 준비하기로 했단다. 어머니 생신을 풍성하게 해야 하는데 초대할 사람도 음식을 장만하고 준비할 사람도 없다.


어머니 생신 날에 아내와 조카 집을 찾아가 어머니 생신 상을 차려드렸다. 팔 남매가 모두 모이지 않았지만 저녁을 함께 먹고 난 뒤 생신을 축하해 드리고 나서 어머니를 모시고 시골로 갔다.


이제는 어머니 생신 날에 온 가족이 모여 밥 한번 먹는 것도 어려운 일이 되었다. 형제들도 나이가 들고 이런저런 사연이 많아지다 보니 가족 모두가 모이는 것도 힘들다.


고향의 하늘 아래서 함께 성장하며 뛰어놀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형들도 어느덧 회갑을 너머 고희를 바라본다. 자식들이 자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데 자신이 나이가 들어가는 것은 볼 수가 없어 마냥 제자리인 것 같다.


앞으로도 어머니가 건강하게 생신날에 팔 남매와 함께 모여 웃으면서 식사도 하고 오순도순 정겹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간절하게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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