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머니

by 이상역

홍안에 연지 곤지 바른 새악시

광해의 푸른 꿈 마다하고


오롯이

흙에 기대어 사는 낭군 만났네.


서툰 호미질과 괭이질

어느덧 익숙한 내 것이 되었고


섬섬옥수 긴 손가락 나목처럼 야위어 가고

가녀린 등줄기 활처럼 휘어졌네.


가는 인생 고달프다 노래하지만

무너진 등 위로 세월은 덧없이 싸여가고


앞산에서 구슬프게 우는 소쩍새 소리

마음에 외로움만 더하네.


낭군의 언약은 空約으로 굳어지고

둥지를 찾아 날아가는

외기러기의 처량한 날갯짓


이내 신세와 다를 바 없네.

나는야

아직도


갈 길이 머-언

농사꾼 아낙네


내 품에서 자란 울음보들

내 곁을 떠난 지 오래고


잡초만 무성한 둥지에서

가는 세월의 고단함

시루봉을 바라보며 달래네.('새악시', 이상역)


부부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닮아가는 것 같다. 어머니는 성격이 곧으시고 대가 좀 세고 아버지는 옹고집이 있어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을 편애하셨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성격이 도드라지는 것은 농사일을 할 때다. 아버지는 계획을 세워 농사짓는 타입이 아니고 어머니에게 그때그때 물어가며 하신다.


어머니가 의도한 대로 일이 풀리는 날은 집안이 조용하고, 의도한 대로 되지 않는 날은 아버지의 잔소리가 집 밖으로 새어 나온다. 그러다 어머니가 다시 해야 할 일과 방향을 정해 주면 아버지는 지난 것은 잊고 어머니의 의견에 따라 하신다.


아버지는 덩치에 비해 겁이 많고 기계치다. 농사에 필요한 경운기나 이앙기나 건조기 등 농기구는 잘 사서 집에 들여놓는데 그 기계를 다루는 사람은 자식이 아니면 어머니의 몫이다.


지금껏 아버지가 경운기 운전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담뱃잎을 말리는 건조기 온도조절이나 작동도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대부분 다루셨다.


농사에서 아버지가 가장 잘한 것은 힘으로 하는 지게질이나 소에 멍에를 씌우고 밭이나 논을 가는 쟁기질이다. 쟁기질은 자식에게 가르쳐 주지도 않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오롯이 당신이 혼자 하셨다.


부부는 대조적으로 만나 서로 합의점을 찾아가며 살아가는 것 같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격은 정반대는 아니지만, 찬성과 반대가 양립하는 과정에서 접점을 찾아가며 살아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고향의 부엌에서 들려오던 아버지의 정겨운 목소리도 이제는 들을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자 어머니의 성격도 약해지고 변했다.


어머니의 성격은 강직한 편인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나약해지고 그간 좀처럼 우시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 지금은 자식이 조금만 서운하게 해도 눈물을 흘리신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그런 적이 없었는데 배우자를 잃고 나면 남은 사람에게 마음의 둥지를 잃게 해서 약한 존재로 변하게 하는 것 같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고향의 바람을 휘저으며 농사짓던 시간과 날들은 사라졌다. 아버지가 떠난 둥지는 어머니가 홀로 외롭게 지키며 살아가신다. 두 분이 어떻게 만나 오늘에 이르렀는지 세세한 사연은 알 길이 없다.


두 분이 말로 남긴 시간보다 말없이 지나간 시간이 더 많아서다. 가족이 함께 성장하며 보낸 따뜻한 시간은 새의 날갯짓에 깃들어 먼 곳으로 사라졌다.


이제 남은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부모의 꿈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것은 자식의 의무이자 부모가 키워준 것에 대한 보답이다. 아버지가 이승에서 누렸던 삶의 철학이나 가치관에 대한 것은 잘 모른다.


아버지가 생전에 자상하게 이야기를 들려준 적도 세상에 남겨 준 것도 없다. 그런 허접한 이야기는 세상의 번잡한 시간 속으로 사라졌다. 단지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그러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하고 추측만 할 뿐이다.


부모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며 삶을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살펴야 하는데 그럴 시간도 여유도 없다. 더구나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그럴 기회도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에 와서 어머니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에 근거해서 어머니와 아버지를 생각하며 기록하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어머니에게 그간 겪은 삶을 이야기해달라면 눈물과 한숨 때문에 묻는 것도 듣는 것도 한계점이 생긴다.


뒤늦게나마 가족과 성장하면서 겪고 보고 느낀 생각을 기록할 수 있어 다행이다. 지금까지 자라면서 보아왔던 아버지나 어머니에 대한 회상과 감상을 통해 몇 자 적을 수 있었다.


부모님의 속 깊은 이야기는 글을 쓰는 행간에 깃들어 있을 뿐이다. 이 글 행간에 숨어 있는 뜻과 의미를 찾아가며 부모님의 인생관이나 가치관을 알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어머니가 고향 집에서 일을 보다 넘어지셔서 대퇴부가 좋지 않은데 걱정이다. 어머니 곁에서 보살피고 치료해 드려야 하는데 그럴 시간도 없다. 자식이 아무리 많아도 세세하게 신경을 써 주는 자식이 없다 보니 어머니의 건강이 걱정되고 염려스럽다.


지금까지 어머니는 강건하고 굳건하게 버티며 살아오셨다. 몸을 잘 챙기셔서 오래오래 장수하기를 바란다. 사람이 사는 일 모두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듯이 인생을 살아가며 부모를 위한 일은 후회가 없어야 한다.


내가 어머니에게 바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건강하고 당당하게 살아가셨으면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약해진 모습보다 자식들 앞에서 나 이렇게 너희들 앞에서 강하게 살아가노라는 모습이면 족하다.


그럴 날이 앞으로 얼마나 유지될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가 부디 오래오래 건강한 삶을 유지하셨으면 한다. 몇 해 전 셋째 집 숙모님과 큰 집 형님이 돌아가셨다.


이제 집안에는 나이 드신 분 중 유일하게 어머님과 큰집 형수님만 생존해 계신다. 죽음이란 세상에서 갑자기 사라지는 그림자가 아닐까. 고향에 갈 때마다 만나던 분이 어느 날 예고 없이 저세상으로 건너가는 것이 죽음이다.


평소 자주 보던 익숙한 얼굴이 그림자 되어 사라지는 것이 죽음이다. 그리고 죽음 뒤에 새로운 얼굴이 나타나 사라진 그림자를 대신하여 들어서는 것이 후손이다.


나도 어느덧 나이를 들고 보니 살아온 삶보다 남은 생애에 관심이 더 간다. 부디 어머니가 지금처럼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다가 아름답게 소천하는 모습을 보게 되기를 간절하게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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