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만남이나 마음에 부담이 가겠지만 홀가분하고 스스럼없는 만남이 좋다. 친구도 만날 때 마음이 편해야 자주 보게 된다. 반대로 친한 친구라도 만날 때 마음에 부담이 가면 피할 수밖에 없다.
시골에 살던 시절 고향의 읍내만 나가면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다 고향을 등지고 객지에 나와 생활하다 보니 주변에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아는 얼굴조차 만나기가 어렵다.
그간 결혼하고 이곳저곳 떠돌며 살다가 뒤늦게 서울 송파에 둥지를 마련해서 살게 되었다. 서울에 둥지를 틀고 두 명의 고향 친구를 만나왔다.
며칠 전에도 천호역 근처에서 만나 식사도 하고 술잔을 나누었다. 서울에 살면서 고향 친구를 만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고향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친구를 만나면 마음이 편해서 좋다.
친구들과 식사할 때 나누는 이야기는 서로의 삶과 가족에 대한 것들이다. 친구들과 만남을 이어온 지도 그럭저럭 삼십 년이 넘어간다. 물론 서울에는 만남을 갖지 못하는 고향의 다른 친구도 있다.
하지만 엊그제 만난 친구와는 만남에 특별한 이유를 정하지 않고 서로 보고 싶으면 연락해서 만난다. 친구들과 서울에서 사는 곳도 취향이나 성격이나 생각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친구들을 만나면 수다스럽거나 요란하게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그저 대수롭지 않은 것에 대하여 셋이서 술잔을 기울이며 옆자리에 친구가 있는 듯 없는 듯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진지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그리고 삶의 허접한 것이나 자식이나 노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하는 인생의 이런저런 말들이 오고 간다.
친구 중 한 명은 초·중학교를 같이 다녔고, 다른 한 명은 중학교를 같이 다녔다. 친구들과 식당에 앉아 학창 시절 이야기를 시작하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친구들도 이순의 중턱을 넘어 고희를 바라본다. 그동안 많은 것을 겪으며 살아와서 그런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나 사회적 혹은 정치적 이야기 등 다양한 안주가 테이블에 올라온다.
엊그제는 자식의 교육과 관련한 이야기를 했다. 사람은 자식과 관련한 이야기에 끝이 없는 것 같다. 우리 세대는 자식이 곧 그 사람의 인생이다.
친구 아들은 미국 대학에서 수의사를 공부하다 군대 문제로 한국에 들어왔는데 시간적인 여유가 생겨 건국대에 교환학생으로 다니고 있다고 한다.
친구들과 자식 이야기를 하다 보면 도낏자루 썩는 줄도 모른다. 저녁을 먹던 식당을 나와서 다시 맥줏집으로 자리를 옮겨 밤이 깊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들과 맥줏집에서 삶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지는데 친구가 아이들 갖다 주라며 족발을 사서 하나씩 건네주었다.
고향에는 서울에서 만나는 친구들 외에도 많은데 유독 이 친구들과 가깝게 지내는 것이 그저 신기할 뿐이다. 아마도 서로에게 만남에 대한 부담을 주지 않고 살아가는 형편이 비슷해서가 아닐까.
고향 친구란 그런 것 같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그저 들어주고 호응하고 이해해 주는 것 같다. 친구를 만났을 때 만남을 유지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계산하는 마음이 끼어들면 부담스럽다.
지금 만나는 고향 친구들은 그런 부담이 들지 않아 좋다. 서로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누든 그날 나눈 이야기는 그날로 끝이다. 그리고 다음에 만나자고 하면 다시 만나 부담 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고향 친구를 자주 만나고 싶어도 내가 시간을 낼 수 없어 만나지 못한다. 직장이 서울에서 좀 멀어서다. 주말에는 가족과 생활도 있고 서로의 사생활은 존중해 주는 차원에서 주중에 주로 만난다.
엊그제는 직장에서 조퇴를 해서 친구들을 만났다. 친구들과 여유롭게 만나 오래도록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친구들과 헤어질 때는 다음에 언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정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얼굴을 잊어버릴만하면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한다. 고향 친구들과 은은한 만남을 오래도록 유지하고 싶다.
직장을 퇴직하고 사회인이 되더라도 친구들이 보고 싶다거나 술 한 잔 생각이 나면 전화로 불러내어 인생의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즐겁게 대화나 나누며 소소하게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