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치란 방향에 대한 감각이나 지각이 무디어 방향을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거나 찾지 못하는 것이다. 누구나 낯선 곳에 가면 방향에 대한 감각을 잃을 수밖에 없다.
방향치는 질병은 아니다. 방향치에서 치(癡)란 ‘어리석다.’라는 의미다. 어리석다는 것은 슬기롭지 못하고 둔하다는 뜻이다. 슬기롭지 못하고 둔하다는 것은 문제 해결 능력이 늦다는 의미다.
방향치는 어느 정도 사람의 성격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이들을 종합해 보면 방향치란 방향을 잃으면 찾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찾지 않으려는 성격으로 귀결된다.
결국 방향치란 어떠한 문제가 생겼을 때 그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고 정리해서 돌파구를 찾는 능력이 더딘 사람이란 뜻이 된다.
며칠 전 아내와 남한산으로 등산을 갔다. 위례 신도시 공원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청량산 대원사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대원사를 지나 옥천 약수터로 올라가기 위해 에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나는 아내보다 사오 미터 앞서서 걸어갔다. 내 뒤에 아내가 따라오는 줄 알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약수터와 능선으로 갈라지는 지점에서 약수터 방향으로 길을 틀어 걸어갔다.
그런데 약수터를 향해 걸어가다 뒤를 돌아보니 아내가 보이 지 않았다. 그 자리에 서서 아내를 몇 번 불러 보았으나 대답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되돌아 걸어 나와 능선과 약수터가 갈라지는 지점까지 갔으나 아내는 없었다. 아내는 앞서간 나를 따라오지 않고 곧바로 능선길을 택해 올라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능선길을 따라 오십 여 미터를 헐레벌떡 올라가며 아내를 불러 보았으나 대답이 없었다. 능선길을 오르다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다시 약수터와 능선이 갈라지는 지점으로 되돌아왔으나 아내를 만날 수 없었다.
나는 황당한 생각이 들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이곳에서 아내가 오기를 기다릴 것인지 아니면 좀 전에 가려던 약수터 길로 빠르게 올라가서 아내를 기다릴 것인지에 대한 갈등이 일었다.
비록 아내와 길은 엇갈렸지만, 오늘 등산 가는 목적지는 정해져 있으니 빨리 걸어가면 그곳에서 만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면서 무언가를 결정해서 선택해야 하는데 도무지 정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 생각한 끝에 약수터로 가는 길을 버리고 아내가 올라갔을지 모를 능선길로 서둘러 올라갔다. 능선길을 따라 백여 미터쯤 올라가는데 능선길을 되돌아 내려오고 있는 아내를 만났다.
나는 아내를 만나자마자 "왜 나를 따라오지 않고 다른 길로 갔느냐?"라고 따지듯이 물었다. 그러자 아내는 길이 갈라지는 지점에서 나를 신경 쓰지 않고 곧바로 능선길로 올라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나를 만난 것도 나를 찾으려고 내려온 것이 아니라 남한산 능선길을 따라 올라가는 길인 줄 알고 내려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아내가 남한산에 처음 왔다면 이해하지만 주말에 종종 등산하러 찾아왔던 곳이다. 아내에게 그 자리에서 동서남북 방향을 물어보니 어느 쪽이 동쪽이고 서쪽인지 방향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게다가 지금 내려온 길이 어떤 길이냐고 물었더니 잘 알지 못하는 눈치다. 누구 말대로 나만 똥줄 나게 몸을 바리바리 움직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정작 나와 길이 엇갈린 줄도 모르고 태연하게 남한산 올라가는 길인 줄 알고 내려왔던 것이다. 그 지점에서 아내를 만나 다시 생각을 정리해 보니 절묘한 시간에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아내를 그곳에서 만나지 못했다면 아내는 원래 목적지가 아닌 산성역으로 내려가서 나를 찾아 헤매고 있었을 것이고, 나는 반대로 능선길을 타고 올라가 목적지인 영춘산 입구에 도착해서 아내를 찾거나 올라오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아내와 길이 서로 엇갈렸다면 나와 아내는 서로를 찾기 위해 정반대 방향에서 헤맸을 거라는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누구 말마따나 아내는 방향치에다 길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에서 동서남북 방향도 헤아리지 못하고 주변 산세와 지형을 살펴보고 올라가는 길인지 내려가는 길인지도 구분하지 못해서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내는 방향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그날 아내가 핸드폰이라도 갖고 갔다면 전화라도 해서 쉽게 찾을 수 있었을 텐데. 그날따라 핸드폰도 들고 오지 않아 나만 등산길에서 아내를 찾아 이리저리 분주하게 뛰어다니느냐 등에 땀만 흠뻑 흘렸다.
남한산 등산을 하기도 전에 아내와 길이 엇갈리면서 진이 다 빠져 버렸다. 나는 아내를 데리고 다시 약수터와 능선이 갈라지는 지점까지 내려와서 약수터 가는 길로 들어서서 영춘산 입구까지 올라갔다.
비록 남한산은 높지 않은 산이지만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은 한순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일을 거울삼아 아내와 등산 다닐 때는 주의를 해야 할 것 같다.
나도 종종 처음 가보는 곳에선 방향을 헤아리지 못한다. 방향치는 누구나 갖고 있지만, 문제가 생겼을 때 빨리 해결하려는 노력이 방향치를 벗어나는 길이다.
나는 방향치라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방치하는 것이 방향치를 더 키우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오늘 아내는 별다른 근심 없이 자신이 가는 길을 따라 등산만 잘하고 오지 않았을까.
그에 비해 나는 애간장 태우고 마음을 졸이며 아내를 찾아 산길을 이리저리 뛰어다닌 바쁜 하루였다. 우리 부부 중에 과연 누가 방향치일까.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누가 방향치에 가깝다는 것과 방향치를 벗어나려는 노력을 했느냐 등을 따져보면 대충 그에 대한 답은 나오지 않을까. 그에 대한 답은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생각과 판단에 맡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