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산책하기 위해 길을 나서자 안개가 주변을 포위하듯이 아파트 단지를 둘러쌓다. 길을 걸어가는데 안개가 시야를 가려 아파트 단지 앞 너머는 보이 지를 않는다.
마치 안개가 아파트 단지를 겹겹으로 둘러싸서 성 안에 갇혀 있는 것 같다. 안개가 가득한 성에서 성 밖으로 몸을 밀고 나가면 또 다른 성이 나타난다.
안개는 울타리도 없이 사람을 가두고 사고를 머물게 하는 신비로운 물방울이다. 안개에 둘러싸인 울타리를 벗어나면 다시 안개가 둘러싼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안개에 갇혀 걷다가 언덕 너머 다른 세상으로 나가면 이전과는 다른 세상이 열린다. 건물과 도로가 달라지고 사람과 주변 환경이 다른 세상이 무시로 여는 장치가 안개다.
세종은 금강이 흐르고 분지라서 그런지 안개가 자주 낀다. 안개가 잔뜩 낄 때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거리도 제한적이다. 안개 낀 공원을 한 바퀴 돌며 산책하는데 안개가 서서히 가슴에 스며들며 파문을 일으킨다.
안개 하면 제일 먼저 김승옥의 단편소설 '무진기행'이 떠오른다. '무진기행'을 읽으면서 가장 멋진 문장은 안개를 묘사한 문장이다.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恨)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 놓았다.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
'무진기행'의 짙은 안개처럼 세종에도 안개가 마치 적군들에게 둘러싸여 고립된 도시를 안개가 빙 둘러싸고 있다. 마치 사람을 삼켜버리는 흡혈귀처럼 안개는 산 사람을 빨아들이고 토해내는 것 같다.
'무진기행'을 읽고 한 때는 안개를 그리워하던 시절도 있었다. 문학은 참 좋은 것 같다. 세상의 현실을 뛰어 너머 상상의 세계로 안내하는 것이 문학이다.
우리나라에 무진이란 마을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김승옥은 무진이란 고향을 상상 속에 가두고 무진을 자신의 고향처럼 소설을 쓴 것이다. 나도 소설을 써보고 싶지만 글이 짧아 엄두를 내지 못한다.
세종에서 안개에 갇혀 산 지도 근 십여 년이 되어 간다. 세종도 나름 도시답게 볼거리를 조성하고 있다지만 '무진기행'의 무진처럼 안개가 명산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안개는 오전 한나절만 만날 수 있고 사람의 힘으로 풀어헤치지 못하고 바람이나 햇빛에 의존해야 한다. '무진기행'에서 김승옥 작가는 무진의 안개를 참 멋들어지게도 표현해 놓았다.
어느 작가도 흉내 낼 수 없는 무진의 안개를 시적으로 표현했다. 소설에서 안개와 관련한 글은 아무리 읽어도 질리지 않고 멋스럽게만 다가온다.
안개는 사람들에게 다른 세상을 엿보게 하거나 꿈꾸게 하는 촉매제다. 아침에 안개를 통해 '무진기행'을 생각하고 또 다른 세상을 그리워하는 마음도 품어 보았다.
미로의 안갯속에 갇히면 길을 잃는 것처럼 안개 너머 다른 세상으로 나가도 길을 잃는 건 마찬가지다. 안개는 사람의 시야를 가두기도 하지만 안갯속을 거닐면 거닐수록 똑같은 세상에 머물게 하는 감옥과도 같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에서 화자가 무진에 가서 과거의 자신을 발견하듯이 나도 세종에서 안갯속을 더듬으며 과거의 나를 만나 유년의 꿈을 되찾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