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는 임대와 분양이 혼합되어 있다. 서울시가 택지를 개발하면서 장기임대 위주로 단지를 조성해서 분양받는 아파트와 혼합해서 지은 것이다.
택지 내 아파트 단지도 단지별로 임대아파트나 분양아파트만 짓거나 임대와 분양을 혼합해서 짓는 등 형태도 다양하다. 임대아파트도 분양을 받으면 거의 반평생을 살 수가 있다.
장기임대아파트는 대부분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생활수급자 등 서민들이 살고 있다. 요즈음 분양아파트 단지 옆에 임대아파트를 짓겠다고 하면 사람들은 결사적으로 반대한다.
혹여라도 자신의 아파트 값이 떨어지고 주거생활이 나빠진다며 반대하는 것이다. 나는 분양받은 사람의 아파트를 구입해서 이사를 와서 임대아파트를 짓는다고 반대할 시간이나 겨를도 없었다.
임대와 분양아파트가 섞여 공존하는 삶에는 장단점이 있다. 장점은 이런저런 사람이 어울려 살아가기 때문에 좋은 것 같고, 단점이라면 글쎄다 별로 피부로 와닿는 것은 없다.
단지 누군지는 몰라도 다른 단지에 사는 사람이 한밤중에 소리를 지르며 지나갈 때다. 소리를 지르는 시간은 일정하지 않은데 세상을 향한 목소리인지 자신의 신세타령인지는 모르겠지만 종종 듣게 된다.
아내는 그 사람이 지적장애인이라 소리를 지른다고 한다. 어느 단지 어느 동에 사는 사람인지는 모른다. 특이한 점은 비가 오는 날이나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인 날에는 그 사람의 목소리가 유독 크게 들린다는 것이다.
그 사람은 궂은날을 몸으로 아는 것인지 비가 내린다는 것을 마치 예보라도 하듯 소리를 지르며 지나간다. 한밤중에 그 사람이 소리를 지르며 지나가면 소리를 지르지 말라고 말리고 싶지만 그러지도 못하는 신세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 사람이 아파트 단지를 빨리 벗어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소리를 지르는 패턴은 비슷하다. 어떤 때는 술에 취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고, 어떤 때는 혼잣말로 중얼중얼 대며 지나간다.
아파트 단지에 사는 사람들의 대중 심리는 자신을 대신해서 누군가가 소리 지르는 사람에게 조용히 하라고 나서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일종의 관음이 아닌 관시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누군가 나를 대신해서 그 사람에게 조용히 해달고 해 줄 것을 서로가 침묵하며 기다린다. 그렇다고 전화기를 들고 경찰서에 신고하기도 그렇다. 경찰에 신고하면 잠도 달아나고 고연 시리 사건에 휘말리기 싫어서 그런 수고스러운 일은 만들지도 않는다.
가끔 잠이 일찍 드는 날은 그 사람의 소리를 듣고 잠을 깨곤 한다. 그런 날은 한동안 잠을 잘 수가 없다. 한밤중에 잠에서 깨었을 때는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까 하는 것에 온갖 신경을 쓴다.
선잠을 자다 그 사람의 소리를 들으면 자장가로 듣다가 잠을 청하면 된다. 그런데 그 사람 소리가 시끄럽다고 경찰에 신고하거나 조용히 하라고 큰 소리를 내면 잠이 달아나 거의 뜬 눈으로 날을 지새울 수 있다.
사람이 모여 사는 곳에는 늘 문제가 발생한다. 부자들이 모여 살아도 문제나 사건이 없을 수 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산다고 해서 문제나 사건이 안 일어날 수도 없다.
사람이 모여 사는 곳에는 필연적으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사람이 모여 사는 공동체 생활에서 문제가 발생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지극히 비정상적인 생활이다.
사람살이에서 문제는 발생하기 마련이고, 이를 어떻게 해결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관계의 친밀함이 탄생하고 소중한 인연과 만남이 이루어진다.
어젯밤에 아파트 단지 사잇길을 소리 지르며 지나간 사람을 한번 만나서 어떻게 매일같이 쉬지도 않고 비슷한 시간에 어김없이 소리를 지르며 걸어가는지 물어보고 싶다.
그 사람이 술에 취했다면 그런가 보다 하는데 술에 취하지 않은 사람이 밤마다 사람들이 잠자는 시간에 아파트 단지 사잇길에서 소리를 지르면 이상해보일 수밖에 없다.
오늘 저녁에는 잠도 자지 않고 밖에 나가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한번 슬쩍 곁눈으로 보아야겠다. 사람이 사는 모습은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그 속내를 파고들면 상상 이상의 문제가 드러난다.
겉과 속이 다른 것이 삶이다. 삶은 겉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깊고 그윽한 속을 들여다봐야 다다를 수 있다. 밤마다 소리를 지르며 지나가는 사람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듯이 사람마다 가슴에 많을 것을 품고 살아간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그런 것을 이해하는 나이는 삶을 어느 정도 살아보고 난 후에 깨닫는다. 오늘밤에는 그 사람이 아파트 단지 사잇길을 어떻게 지나갈까. 평소처럼 소리를 지를까 아니면 조용히 지나갈까 그 시간이 마냥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