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매미 울음소리

by 이상역

오늘 아침 출근길에 제천천 천변을 따라 걸어가는데 중간쯤에 이르러 말매미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올해 들어 처음 듣는 말매미 울음소리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중복이다. 초복이 엊그제 지나간 것 같은데 벌써 중복이다. 요즘 며칠 동안 장맛비로 인해 시간이 해안의 썰물처럼 한꺼번에 빠져나가듯이 뭉텅뭉텅 무리 지어 흘러갔다는 생각이 든다.


언론에선 장맛비로 각종 사고와 사건 보도로 어수선하고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의 극단적인 선택을 두고 매스컴마다 난리다.


교대를 졸업하고 교사 초임 발령을 받은 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분명 심상치 않은 원인이 있을 것이다. 교사의 죽음으로 인해 남은 가족과 우리 사회에 고통과 회한과 숙제를 남겼다.


생을 마감한 교사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고통에 대한 원인을 세상에 드러내어 밝혔으면 문제 해결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을 텐데. 혼자서 끙끙 앓다가 끌어안고 갔으니 교사가 왜 죽음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었나 하는 것을 추측할 수밖에 없다.


가족과 사회에 말하지 못할 정도고 그리고 오죽이나 답답하고 앞이 보이지 않았으면 생명을 담보로 했을까. 수많은 생각과 억측이 오고 가지만 그에 대한 답은 오직 죽은 자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천변의 말매미 울음소리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우성처럼 들려오는 것 같다. 말매미도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생명의 대를 잇기 위해 암컷을 향해 구애의 목소리를 드높인다.


사람이 목숨을 강제로 끊는 것은 다르게 보면 자신의 죽음을 정당화하려는 또 다른 의사표현이다. 젊은 교사의 죽음으로 전국의 교사들이 학부모의 갑질 근절과 교권 보호를 법적으로 보장해 달라고 외치고 있다.


학부모의 간섭으로 인해 교사들이 수업이나 학생지도를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란다. 언제부터 교사의 교권이 침해받아 온 것일까. 아마도 그 배경에는 권위주의 문화도 한몫했다는 생각이 든다.


권위주의는 자신의 영역을 신성불가침으로 여긴다. 유럽에서 신권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다 인간의 이성이 대두되면서 무너졌고, 우리나라 정치 독재도 견고한 탑을 쌓다가 국민의 저항에 무너졌다.


교권도 이전에는 절대권력이나 마찬가지였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엄한 말처럼 교사는 우러러보고 존경하는 대상이었다. 그러다 학생의 학습권과 학부모의 참여권이 커지면서 서서히 무너지지 않았을까.


신권과 교권이 무너진 것은 반대로 상대방의 권리가 성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가 발전하고 민주주의가 발달하면서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사라지고 반대로 사람의 인권과 권리가 높아진 결과다.


지금의 시점에서 분명한 것은 교사들이 주장하는 교권의 보호를 어떻게 법에서 규정하고 다룰 것인가다. 법률에 교권 보호를 규정하기 위해서는 최일선에 근무하는 교사들의 목소리를 새겨 들어야 한다.


이제라도 교사들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여 교육의 백 년 대개를 바로 세워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교육은 인간이 갖추어야 할 덕목을 가르치는 중요한 일이다.


교권 보호는 우리 사회에 던져진 화두나 마찬가지다. 교권 보호는 학부모뿐만 아니라 정치권, 사회 및 학교와 교육청 등 모두가 참여하고 관심을 기울여야만 한다.


교권 보호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일방적인 주장보다 사회 공론화 과정을 거쳐 보호의 틀을 마련할 수 있는 근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누구도 교권에 침해할 수 없도록 법적으로 제도화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언젠가부터 사회적 문제가 대두되었을 때 그 문제를 언론이나 사회에서 다루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슬그머니 언제 그런 말이 대두되었느냐 하는 식으로 슬그머니 사라지곤 했다.


이번에는 절대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한 교사의 죽음으로 교권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죽음에 이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현재 일어나는 사회적 정치적 행정적인 문제도 교권과 마찬가지로 사회 발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과도기적 현상이다. 한 나라가 선진국에 다가갈수록 사회적 정치적 행정적 문제는 드러나게 마련이다.


국가가 발전하면 결국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바꾸고 시대에 맞는 제도로 개선해야 한다. 나라의 덩치와 머리가 커졌는데도 불구하고 지난 시절에 즐겨 부르던 유행가를 부르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시대적 흐름과 기술과 환경이 변화 되었으면 이념이나 윤리나 도덕도 그에 걸맞은 수준으로 변화시켜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일이 생길 때마다 지나간 기준이나 제도를 끌어와 적용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번 기회에 교육사회에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는 교권 보호 등에 대한 기준과 제도를 바르게 정비해야 한다. 이는 교육계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사회나 정치나 행정도 마찬가지다.


내가 자라던 시절의 제도나 규칙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제도다. 아이가 성장했으면 성장한 기준에 맞추어 제도도 변해야 한다. 더불어 교권도 시대적 변화에 맞게 개정해서 교사의 가르치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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