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바람과 함께 베란다의 창문을 두드려댄다. 장마철이 시작되자 비가 시도 때도 없이 내린다. 아침부터 비가 내리면 마음은 빗물을 따라 서서히 감정을 드러낸다.
공동주택은 비설거지가 쉽다. 비가 바람에 들이치면 베란에 나가 창문만 닫으면 비설거지가 끝난다. 단독주택은 이것저것 보살펴야 할 것이 많은데 공동주택은 베란다 바깥문만 닫으면 그만이다.
비가 내리는 날은 생각과 사고도 정지된다. 비가 내리는 상황에서 무언가를 할 수도 없고 무언가를 하고 싶어도 비가 가로막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것도 그리 많지 않다.
세상이 빗물과 빗방울로 가득 차면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저 떨어지는 빗방울만 하염없이 바라보게 된다. 하늘은 검은 구름에 가려 우주라는 공간을 가로막고 시야도 빗물과 빗방울에 가려 멀리 바라볼 수 없다.
그렇게 공간과 시야가 막히면 사람의 사고도 빗속에 갇힌다. 공간과 시야가 닫힌 상황에서 채은옥의 '빗물'이란 노래가 흘러나오면 쓸쓸한 감정이 고개를 내민다.
조용히 비가 내리네 추억을 말해 주듯이
이렇게 비가 내리면 그날이 생각이 나네
옷깃을 세워 주면서 우산을 받쳐준 사람
오늘도 잊지 못하고 빗속을 혼자서 가네
어디에선가 나를 부르며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아
돌아보면은 아무도 없고 쓸쓸하게 내리는 빗물 빗물
(중 략) <채은옥 '빗물'>
이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누군가가 우산을 받쳐 들고 나를 향해 달려오는 것만 같고 그로 인해 마음은 가수의 목소리에 이끌려 빗물 속에 한없이 젖어들게 된다.
빗물은 사람의 마음을 쓸쓸하게 자극하는 눈물이다. 빗물과 함께 쓸쓸한 생각에 젖어 있다 보면 지나간 추억을 들추게 되고 그 추억을 통해 그 사람을 생각하고 우산을 받쳐 주던 사람을 생각나게 한다.
'빗물'이란 노랫가락에서 옷깃을 세워주고 우산을 받쳐주던 그 사람은 누구일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누군가에게 우산을 받쳐 준 적은 있었던가. 아니면 누군가 나를 위해 우산을 받쳐 준 적은 있었던가.
비가 내리는 날이면 우산을 받쳐주었거나 나를 위해 우산을 받쳐 준 사람이 생각난다. 특히 오늘처럼 아침부터 비가 내리는 날은 우산을 받쳐 주던 사람을 더욱 생각나게 한다.
사람의 마음은 빗물을 따라 추억이 흐르면 정처 없이 흘러가게 마련이다. 한 생각을 붙잡으면 다른 생각이 떠오르고 다른 생각이 떠오르면 또 다른 사연이 겹쳐지면서 생각이 충돌하기 시작한다.
내 뒤를 돌아보면 아무도 없고 쓸쓸하게 내리는 빗물을 바라보면 그 사람 생각이 난다지만 채은옥의 '빗물'은 한번 부르기 시작하면 노래의 끝을 어디서 맺을지 몰라 무의식적으로 반복해서 부르게 된다.
젊은 시절에는 노랫가락을 잊지 않고 잘도 불렀는데 나이가 들어 노래를 부르면 이 노래로 시작해서 다른 노래를 향해 가거나 가사를 뒤섞여 부르다 보면 나중에 무슨 노래를 부른 것인지도 모르게 된다.
애국가로 시작해서 유행가로 끝나는 것처럼 '빗물'이란 노래도 처음에는 잘 시작하다 다른 노래로 끝을 맺는 날이 많아졌다. 노래가 나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노래를 망친다는 생각이 든다.
그에 따라 어떤 노래나 내 마음대로 작사 작곡해서 부르게 된다. 나이로 인해 노래의 온전한 가사를 잊어버렸다. 노래방 화면이 없으면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바보가 되었지만 화면을 보지 않고 완창 하던 시절이 그립다.
그 시절에는 비가 하루종일 내려도 빗물과 관련한 노래를 연이어 부르며 빗속을 걸어 다녔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옛날이 되었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노래 한곡을 멋지게 완창 해서 부르고 싶다.
빗물을 따라 감정이 여기까지 밀려왔지만 앞으로 빗물이 생각을 어디로 데리고 갈 것인지 그에 대한 방향을 모르겠다. 내 마음도 내가 아니듯이 내 생각이 가는 방향도 가늠할 수 없는 날이다.
오늘은 다른 것 모두 접어두고 채은옥의 '빗물'이란 노래나 신나게 불러보고 싶다. '조용히 비가 내리네 추억을 말해 주듯이 이렇게 비가 내리면 그날이 생각이 나네'라는 노래가 마음의 빗줄기를 따라 둥실둥실 떠내려가는 조붓한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