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이란 남에게 알리지 않고 은밀하게 숨기는 것이고, 비밀번호는 자신의 정보에 다른 사람이 접근할 수 없도록 미리 정해 두는 고유한 문자열이다.
물품을 교환하며 살던 시절에는 비밀번호가 없었지만, 정보화 사회가 발전할수록 관리해야 할 비밀번호가 많아졌다. 신용을 중시하는 사회로 발전할수록 비밀이 없어야 하는데 역설적으로 문명이 발전할수록 사람을 믿지 못해 감추어야 할 비밀번호가 많아진 셈이다.
요즈음 생활에서 관리해야 하는 비밀번호가 너무 많아졌다. 문화가 발전할수록 정보는 개방이 아닌 폐쇄적인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에 따라 개인정보 보호도 중요해지고, 이를 보호하기 위해 다른 사람이 함부로 접근할 수 없도록 비밀번호 관리도 한층 강화하는 추세다.
직장이나 가정에서 생활하려면 수많은 비밀번호를 관리하고 기억해야 한다. 게다가 비밀번호도 머릿속에 모두 기억할 수 없어 메모장에 별도로 적어서 관리해야 할 정도다.
게다가 비밀번호도 남들이 알지 못하도록 숫자와 영문자나 특수문자 등을 혼합해서 설정해야 한다. 나의 메모장에는 생활에 필요한 각종 비밀번호가 빼곡하게 적혀 있다.
그들은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이용하기 위해 접속할 때마다 수시로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한다. 며칠 전 아내가 예금이 만기가 되었으니 은행에 가서 적금을 찾아오란다.
가정사의 금전은 아내가 관리하고 있어 내 명의의 예금 통장 비밀번호도 알지 못한다. 은행에 가서 예금을 해약하기 위해 은행원이 통장의 비밀번호를 입력하라고 해서 아내가 가르쳐준 번호를 입력했다.
그러자 은행원은 비밀번호가 맞지 않다고 해서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비밀번호를 입력했지만 맞지를 않았다. 결국에 은행원은 통장을 새로 발급하고 비밀번호를 부여해서 예금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아파트나 사무실 출입이나 핸드폰이나 집에 있는 컴퓨터나 은행을 이용하려면 비밀번호를 알아야 한다. 비밀번호를 암기할 만큼 머리가 좋으면 괜찮지만 그다지 머리도 좋지 않아 외우는 비밀번호도 별로 없다.
주중에 세종 원룸에서 지내다 주말에 서울집에 올라가 아파트 동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려고 하면 가끔 생각이 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머릿속이 하얘지고 혼란스러워진다.
인터폰으로 가족을 호출해서 문을 열어 달라고 해도 되지만 잠시 현관 앞에서 생각을 되짚어 본다. 머릿속에 든 비밀번호를 이것저것 누르다가 아차! 하면서 비밀번호가 떠올라 한참 만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최근에 이런 유사한 현상이 잦아졌다. 아파트의 동 현관문 번호뿐만 아니라 누군가가 내게 같이 근무하는 국장이나 과장이나 장관이 누구냐고 물어오면 갑자기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면서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나이 듦에 따라 머리는 반대로 그것을 적당히 잊고 살아가라는 메시지인 것 같다. 사람의 머릿속에 든 기억의 회로는 종종 충돌을 일으킨다. 특히 과거의 일은 또렷해지고 과거에서 현재로 다가올수록 생각이 헷갈린다.
직장에 출근해서 제일 먼저 하는 일도 컴퓨터 부팅과 윈도즈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것이다. 컴퓨터의 부팅 비번과 윈도즈 비번을 입력하고 공인인증서 비번을 입력하면 직장에서 처리하는 업무가 가능해진다.
그리고 컴퓨터의 윈도즈 비번도 하루에 몇 번은 입력해야 작동하고 몇 개월마다 변경해야 한다. 컴퓨터뿐만 아니라 핸드폰이나 인터넷을 이용한 메일이나 상거래를 하려면 비밀번호를 알고 있어야 사용이 가능하다.
직장이나 사회생활을 정상적으로 하려면 수많은 비밀번호를 관리해야 한다. 비밀번호가 너무 많아 메모장에 기록해 두지 않으면 컴퓨터나 각종 기기나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조차 없다.
오늘날 일상생활에서 비밀번호 없이 이용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최근 현금을 갖고 다니지 않아도 생활에 불편함이 없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물건을 사는 시장 어디서나 현금을 내는 사람은 드물다.
지갑에는 신용카드 한 장만 넣고 다니면 불편함이 없는 시대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할 때도 카드만 있으면 탈 수 있고,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살 때도 카드 한 장이면 무엇이든 살 수가 있다.
그러다 신용카드를 분실하면 난리가 난다. 카드회사에 카드 정지를 요청하고 카드를 새로 발급받고 비밀번호를 설정하고 사용해야 한다. 카드 분실로 지갑에 신용카드가 없으면 당분간 아무것도 할 수는 시대다.
그런데 비밀번호 설정 기술도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지금까지 비밀번호는 숫자, 영문자 및 특수문자 등을 혼합하여 설정하는 것이 대세였다. 그러나 이제는 머릿속이나 메모장에 기록할 필요가 없는 사람의 신체 일부(눈동자, 지문, 음성 등)나 QR코드 등을 이용하는 신기술로 진화했다.
비밀번호를 사람의 신체까지 이용하는 기술로 발전한다면 사람의 몸도 상품처럼 취급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런 시대가 도래한다면 지금까지 사용하던 비밀번호 설정 방법은 모두 사라질 것이다.
문제는 비밀번호를 사람의 신체를 이용하는 기술로 발전해서 일상생활이 편리하고 윤택해지면 다행이지만, 현재보다 더 많은 불편함이 따른다면 그것은 기술발전이 아닌 기술퇴보를 불러올 것이다.
앞으로 지금보다 생활에 불편하지 않은 방법으로 비밀번호를 설정하고 관리하는 시대가 도래했으면 한다. 더불어 비밀번호를 설정하는 기술도 사람이 보다 인간적으로 존중을 받는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고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