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실려가는 삶

by 이상역

오늘도 어디선가 삶의 바람이 불어온다. 그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 알 수는 없지만 바람을 등지고 터벅터벅 길을 나선다. 내가 가야 할 목적지는 정하지 않았지만 그저 발길이 가는 대로 천천히 가볼 생각이다.


그렇게 목적 없이 걷다가 바람이 불어온 방향을 돌아보니 걸어온 흔적은 사라지고 텅 빈 공간만이 바라보인다. 바람은 휘모리장단으로 몰아치면 돌개바람이 되고 자진모리장단으로 불어오면 그냥 평범한 바람이다.


오늘도 부산한 마음을 뿌리치고 바람이 부는 대로 구름이 흘러가는 대로 길을 걷는다. 삶의 뜨거운 바람이 일지 않는 한적한 오솔길에 들어가서 조용한 산책이나 즐기고 싶다.


그 오솔길을 거닐면서 삶의 넋두리와 사연을 담은 트로트나 신명 나게 불러보고 싶다. 지금까지 바람과 함께 살아온 삶에서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일까.


궁벽한 외지에서 태어나 화려한 도시로 뛰쳐나온 삶에서 얻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하고 돌아보아도 팔 할은 바람이 아닐까. 나이는 어느덧 육십의 고개를 휘적휘적 넘어가고 육신은 하나둘 가뭇없는 길을 향해 간다.


몸은 마디마다 약해져만 가고 정신은 어제의 일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희미해져만 간다. 그런 몸과 마음과 정신을 오롯이 버티고 유지하기 위해 오늘도 삶의 바람을 찾아 길을 나선 것이다.


삶이란 그 어떤 지청구나 핑계도 받아들이지 않는 손님이 아닐까. 과거에 가난했으니 앞으로 잘 살겠다거나 남들보다 화려하게 살아보겠다는 마음다짐은 부메랑처럼 메아리로 되돌아온다.


삶은 지금이라는 순간의 바람을 타고 허허롭게 살아내는 자의 몫이란 생각이 든다. 오늘을 그리고 순간을 살아내지 못한 자에게 내일이란 없다. 현재라는 순간순간을 버티면서 스스로를 이겨내는 자만이 내일이란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


오늘은 바람처럼 조용하게 소리 없이 스스로에게 다가가 질박하게 한번 물어보고 싶다. 지금까지 무엇을 하면서 삶의 바람을 따라 살아왔느냐고.


그간 삶이 별거더냐 대수롭지 않은 유행가처럼 불러왔지만 정말로 삶은 별 볼일 없는 스쳐가는 바람과도 같다. 오늘도 삶의 바람을 따라 세상에 나왔으니 내일도 그 바람을 타고 삶이란 바다를 저어 가야만 한다.


이런 생활의 되풀이는 육신의 힘이 다하는 날까지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해야 한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마음속에 뜨겁게 잠재된 삶의 바람을 잠재우고 장작불처럼 타오르는 욕망의 바람을 찾아 떠나고 싶다.


삶의 거친 바람을 잠재우는 것은 바람 밖에 대안이 없다. 그리고 마음의 밑바닥에서 일어나는 뜨거운 바람을 잠재우기 위해 흩어진 바람을 모아 조용하게 삶의 노래를 읊조려 본다.


그 노래를 마음의 밖이 아닌 내면을 향해 소리내어 부르자 마음이 맑아지고 무언가 끊임없이 분출하는 느낌이 든다. 삶의 바다를 건너가기 위해서는 두 팔과 두 다리를 이용해서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더불어 마음과 정신을 가다듬고 앞을 보고 묵묵히 가야 한다. 그 걸음걸이에 바람이 간섭하면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워지고 서로 부딪치고 꼬이면 앞을 향해 전진할 수가 없다.


삶에서 제일 쉬운 것이 걷는 것이라지만 바람의 방향과 간섭으로 인해 그리 쉽지만은 않다. 사람살이에서 움직임의 기본이 걷는 것이라면 대기가 작동하는 행위의 기본은 바람이다.


삶에서 이들은 서로 공존공생하며 맞바람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따로국밥처럼 공존하지 못하면 바람에서 멀어져 세상을 겉돌게 된다. 오늘은 어느 방향에서 삶의 풍향계를 단 그윽한 바람이 불어올까. 그것이 자못 그립고 기다려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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