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생명의 끈을 이어가려는 나뭇잎의 소망을 가차 없이 떨구는 계절이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검은 포도에 떨어진 노란 은행잎이 갈 곳을 모른 채 거리를 배회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은행나무에 매달려 있던 은행잎이 비바람에 떨어졌다. 청사에는 은행나무가 작은 숲을 이룬 아담한 가로수길이 조성되어 있다.
이 길은 출퇴근길에 짧은 순간이지만 화려함과 우아함을 맛보게 한다. 나뭇잎을 노랗게 물들인 은행나무 가로수길이 아름다워 청사에 근무하는 직원이나 주변에 사는 시민들이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찾아와 사진을 찍어가며 단풍을 즐긴다.
평일에 사무실에 근무하다가 이웃청사에 볼일이 있어 걸어가다 이 가로수길에 들어서면 노란 은행잎에 매료되어 거리를 서성이게 된다. 은행나무는 나뭇잎을 노랗게 물들이며 갈바람에 자신의 분홍 열매와 숨바꼭질하는 놀이에 빠져 시간이 가는 줄 모른다.
노란 은행잎은 엷은 분홍색의 작은 열매를 숨기기 위해 주변을 진노랑으로 물들이며 가을의 사라짐을 노래한다. 이 글도 은행나무 열매처럼 엷은 분홍색으로 위장하여 꼭꼭 숨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남들은 자신이 세상에 내어 놓은 글을 읽어 주기를 갈망한다지만 나는 반대다. 내 마음도 은행나무의 열매와 같아서다. 자신의 마음을 이 세상에 온전하게 드러내는 것은 어찌 보면 슬픈 일이다.
자신의 마음에 간직한 세계를 남들에게 침범당하는 것은 감정의 폭을 좁히는 일이자 자신을 구속하는 일이다.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나무에 기대어 책이나 읽으며 가는 세월을 노래하고 싶다.
이 세상을 여유롭게 살아가는 것이 그리 힘든 일일까. 청사의 가로수길을 거닐면서 청사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었나 하는 경이로움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내가 세상의 주변의 것에 너무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은행나무가 숲을 이룬 가로수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면 수많은 생각이 잉태한다. 은행나무가 가을이 되면 노랗게 물들인 은행잎을 바라볼 때마다 내 삶이 부끄러워진다. 나도 은행나무처럼 인생을 노랗게 물들이며 살아가지 못한 것에 마음의 생채기만 늘어간다.
은행나무에 매달려 노랗게 물들이는 은행잎은 거친 비바람에 맞서 생명을 지켜왔다. 우리는 그저 대수롭지 않은 마음으로 은행잎을 바라보지만, 은행나무는 생사를 건 치열한 싸움을 하면서 자리를 지켜낸 것이다.
내가 어떤 연유와 인연으로 이곳에 와서 근무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은행나무의 노란 전설을 이야기하게 되었을까? 가을이 사라지기 전에 은행나무에 깃든 노란 전설의 속사정이나 들여다봐야겠다.
그리고 내 삶의 안온한 뜰에도 샛노란 그리움의 씨앗을 심어 가을마다 노랗게 물들이며 풍성한 노래를 부르도록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