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빛 물들면

by 이상역

풍성한 한가위를 맞이하여 고향에 가서 차례도 지내고 성묘도 했다. 우리 곁에서 흘러가는 계절은 어김없이 때가 되면 순환한다. 그 순환은 거역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자연의 질서다.


추석에 고향에 가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산에 알밤을 주으러 가는 것이다. 고향의 산자락에는 어디쯤에 밤나무와 감나무가 자라고 있다는 것을 대충 알고 있다.


고향에 도착하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등산 겸 밤나무를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알밤을 줍는다. 고향의 밤나무는 매년 한가위에 찾아가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자신이 봄부터 정성 들여 키워온 자식들을 하나둘 출가시키는 마음으로 땅으로 떨궈낸다.


손에 들고 간 비닐봉지에 알밤을 가득 주워 들고 고향 집으로 내려오는 길이면 마음은 풍성하다. 겨울에 집에 연탄을 가득 채워 넣으면 마음이 든든해지듯이 비닐봉지에 밤알을 가득 채워 들고 내려오면 가을의 풍성함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고향의 산길과 들길을 터벅터벅 걸어 내려오면 주변의 풀과 계곡에서 자라는 나무의 나뭇잎이 변신을 서두르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가을은 태양빛도 계절의 기운을 이기지 못해 부드럽게 익어간다.


한 여름을 뜨겁게 달구던 태양빛도 가을이 되면 무더운 기운을 떨궈내고 따뜻한 기운으로 변한다. 푸르름이 짙었던 나뭇잎이 서서히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것을 보면 계절은 가을로 들어섰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고향의 밤나무를 찾아 이곳저곳 찾아다니며 밤알을 줍다 보면 마을 한 바퀴를 돌게 된다. 가을은 만물이 익어가는 계절이다. 사람도 가을이 되면 단풍처럼 마음이 엷고 붉게 익어간다.


고향에서 밤을 주으며 마을을 한 바퀴 돌면 고향에서 지냈던 수많은 전설과 사연들이 무시로 떠오른다. 고향은 알밤도 주을 수 있지만 곳곳에 서린 추억도 줍는다.


알밤은 달콤한 맛을 주지만 추억은 기쁨과 슬픔이란 감정의 미묘한 맛을 보게 한다. 그런 생각과 추억들이 서서히 머릿속으로 들어차면 마음은 어느덧 가을이 아닌 과거의 시간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고향이란 참 좋은 것 같다. 미끈하고 싱싱한 알밤의 맛깔스러운 맛도 주지만 옛 추억과 회상을 통해 나를 바라볼 수 있는 환희의 시간과 기쁨의 시간을 맛볼 수 있는 추억도 주어서다.


고향 땅에 서서 이리저리 둘러보면 삶이 오묘하고 복잡한 감정이 개입된다. 내가 살던 타향을 버리고 고향을 찾아오면 어느새 몸은 고향에서 겪었던 시간과 추억 속에 잠긴다.


사람의 몸은 과거의 기억과 몸속에 저장된 시간을 잊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 기억과 시간이 몸을 튼실하게 만들고 성장시켜 고향을 찾아오게 하고 고향에 찾아와 알밤을 줍고 추억의 시간 속으로 떠나게 한다.


매년 되풀이하지만 그 되풀이가 싫지 않고 점점 좋아진다. 왜 사람은 고향과 타향을 오고 가며 살아갈까. 무엇이 고향을 찾아오게 하고 무엇을 찾아 타향으로 떠나갈까.


고향에서 눅눅한 마음이 단풍처럼 물들어가면 기억과 추억도 서서히 익어간다. 내가 언제 이렇게 고향에서 행복한 시간을 누린 적이 있었던가.


과거의 어느 시절이 내게 가장 추억의 시간이었나.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할 수 없는 것과 기억할 수 있는 시간으로 나누어진다. 그 무엇을 기억하기 위해 찾아온 고향은 아니지만 자꾸만 시간에 대한 욕심이 짙어진다.


가을빛 물들면 내 마음도 고향의 알밤처럼 단단해진다. 겉은 단단하고 속은 부드러운 알밤처럼 내 마음도 알밤을 닮아 갔으면 한다.


내가 고향을 찾아와서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계절 따라 시간 따라 고향이 베풀어 주는 것을 하나둘 만나고 어쩌다 오늘처럼 알밤을 얻을 수 있으면 된다.


내가 원한다고 고향에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없고, 고향이 원한다고 내가 줄 수 있는 것도 없다. 고향에서 계절마다 흐드러진 꽃과 짙은 녹음과 물들어가는 단풍과 산자락을 덮은 흰 눈을 만날 수 있으면 된다.


내가 고향을 찾아오는 것은 무언가를 바라고 무엇을 찾기 위해 오는 것은 아니다. 고향의 하늘 아래서 한가위를 맞아 즐겁게 가족과 웃으며 과거의 한 시절과 잊어버린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시간이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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