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햇볕이 따사롭다. 하늘이 맑고 화창한 날이면 사람의 외출을 유혹하고 자극한다. 세상은 이런저런 일로 어수선하고, 계절은 시간을 따라 무럭무럭 성장해 간다.
휴일에 아내와 등산 겸 산책을 위해 길을 나섰다. 우리 집 베란다에서 해가 뜨는 방향에 남한산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남한산은 능선이 가파르지 않아 산책하기에 좋은 곳이다.
아내를 차에 태우고 위례의 남한산 밑에 자리한 주차장에 도착했다. 차를 주차하고 트렁크에서 배낭을 꺼내 어깨에 둘러메고 등산용 지팡이를 손에 움켜쥐고 청량산 대원사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걸어가서 대원사를 지나가려는데 절에서 스님의 독경 소리가 낭랑하게 들려온다. 대원사를 지나 옥천 약수터로 올라가는 길은 두 갈래다.
하나는 계단을 밟고 가는 직선 길이고, 다른 하나는 에둘러 가는 곡선 길이다. 아내와 나는 직선인 계단 길을 택해서 올라갔다. 계단을 하나하나 밟으며 발걸음을 옮기는데 숨이 턱턱 막히고 등에서 땀까지 솟아난다.
약수터에 먼저 올라가서 숨을 고르며 아내가 오기를 기다렸다. 오늘은 남한산의 능선을 타지 않고 7부 능선길을 따라 올라가려고 한다. 며칠 전에 혼자 와서 걸어보았는데 사람이 많지 않고 호젓해서 좋았다.
아내와 약수터를 지나 한적한 숲 속에 들어서자 참나무에서 매미 우는 소리와 산 위쪽에서 능선을 타고 가는 사람들이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무가 울창한 산의 계곡을 하나하나 넘어갈 때마다 자라는 나무들이 다르다.
산의 계곡마다 참나무, 자작나무, 밤나무와 소나무가 등이 자란다. 숲길에는 태풍에 쓰러진 나무의 뿌리가 송두리째 드러난 모습이 처참해 보인다.
가을날 숲길에 들어서면 기분이 좋다. 고요한 숲을 천천히 거닐면 마치 조용한 산사에 들어간 것처럼 머리가 맑아진다. 숲길에서 등산을 마치고 내려오는 사람과 같은 방향으로 올라가는 사람을 종종 마주친다.
가을날 숲 아래로는 가을 햇빛을 받은 도시의 건물에서 은빛 물결이 넘실거린다. 건물에서 물결처럼 반짝이는 모습이 마치 연어의 은빛 비늘처럼 다가온다.
산속의 숲길을 따라 저벅대며 걸어가자 등에서 땀이 나면서 촉촉하게 젖어든다. 약수터에서 출발해서 한 시간 정도 걸어 올라왔더니 오늘의 목적지인 영춘산 입구다.
그곳 벤치에 앉아 아내와 쉬고 있는데 남한산의 능선과 7부 능선을 타고 올라오는 사람들이 물결을 이루며 지나간다. 벤치 옆 도로에는 아침부터 차들이 남한산을 향해 쉴 새 없이 올라간다.
아내와 땀을 식히며 배낭에서 물병을 꺼내어 물 한 모금씩 마셨다. 간단한 휴식을 취하고 벤치에서 일어나 다시 올라온 길 반대 방향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영춘산 입구에서 다시 약수터로 향해 가는데 숲길에는 여전히 매미와 풀벌레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가을날 숲 속을 거닐면 숲 속의 선선한 기운이 피부로 느껴지면서 기분은 배가 된다.
나는 앞에서 걷고 아내는 뒤에서 천천히 따라온다. 숲의 곳곳에는 태풍에 쓰러진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산의 비탈진 곳에서 나무가 생존하려면 뿌리를 튼실하게 키워야 한다.
나무가 비탈에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하면 태풍이나 비바람에 쓰러지고 만다. 어찌 보면 바람은 자연의 생존 능력을 키워주는 시어머니다.
숲길을 내려오다 살펴보니 이곳은 소나무보다 참나무가 많아 보인다. 참나무가 둥치를 미끈하게 쭉쭉 뻗은 모습이 우람하고 멋지다. 가을날 숲 속을 거닐면서 삶의 이치도 배운다.
특히 비탈에 선 나무를 바라보면 깨닫는 것이 많다. 그리고 나무 한 둥치에서 서너 개의 나뭇가지가 올라와 아름드리로 성장한 것을 보면 존경스럽다.
나무가 한 둥치로 자라기도 어려운데 서너 개의 둥치가 자라라면 비바람에도 버티고 양분을 서로 나누어 먹는 양보와 희생 없이는 성장하지 못한다.
숲길을 내려오며 여기저기 눈요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약수터에 다다랐다. 약수터 벤치에 앉아 어깨에 걸친 배낭을 내려 찹쌀떡과 식빵과 사과 한 조각씩을 꺼내어 아내와 함께 나누어 먹었다.
벤치에 앉아 요기를 마치고 올라올 때와 반대로 대원사에서 약수터로 에둘러 가는 곡선의 길을 택해서 내려갔다. 곡선 길로 내려가니 직선 길보다 걷기에 한결 수월하다.
곡선 길을 에돌아 내려와 대원사에 들어서기 전 샛길로 빠졌다. 샛길의 계단을 밟고 내려오자 눈앞에는 커다란 미루나무와 은사시나무 이파리가 바람에 펄럭이는 모습이 시야로 들어온다.
바람에 반짝이는 나뭇잎들을 바라보며 터벅터벅 내려오는데 풋살장에서 공을 차는 젊은이들의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젊은이들이 공을 차는 풋살장을 지나자 아까 출발했던 아스팔트 길이다.
아스팔트 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공원의 목백합 나무에서 말매미가 목청껏 울어댄다. 그리고 그 나무의 꼭대기에는 나뭇잎이 하나둘 시간을 타고 물들어 가는 모습이 바라보인다.
가을날이 따스한 햇볕과 매미 소리와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나뭇잎을 따라 영글어 간다. 오늘은 모처럼 아내와 남한산 숲길을 거닐면서 계절의 정취를 마음껏 맛본 즐겁고 유쾌한 날이다.